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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Feb 16. 2021

부정으로부터 단단하고 담담하게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서

(c)엉뚱복실

'부정적'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위인 세 사람이 있다. (옛)직장상사, 대학 동창, 아는 동생. 사고방식 자체가 부정적이라 모든 꼬아서 생각하고 매사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다.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나는 그들과 같이 있을 때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던 거 같다.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만의 부정적 방식으로 받아들였고 소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이 딱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지구를 구하러 온 히어로 마냥 칠흑 같은 어둠에 긍정의 흰색 빛을 칠해주자는 사명감을 갖기도 했다.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을 거야. 부정 안에서 긍정을 끌어내 보자. 헛수고였다. 그들을 만나고 나면 이유도 모른 채 기분만 상하거나 기가 빠진 듯한 상태가 되었던 것. 아, 이래서 부정적인 사람과는 거리를 두라고 하는구나 혹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했었다. 지금도 가만히 앉아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뒷골이 당기고 당이 당긴다. 생각만으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부정의 강력함.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와 30대 초반의 나는. 날 사랑해주지 않았다. 부정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뒀었고, 부정을 긍정하며 친구가 됐었다. 우울한 음악, 우울한 영화, 우울한 사람과 어울리며 점점 염세주의자가 되어갔고 쇼펜하우어를 찬양하며 부정이 주는 묘한 기운에 취해 살아갔다.(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는 사실 행복을 인생의 가장 큰 목적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커트 코베인과 히스 레저의 허무와 염세적인 모습들이 천국의 천사처럼 보였고 그들의 음악과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그 기운이 꽤 멋져 보였다.


고등학생 때까지 난 꽤 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사람이었다. 수업시간에 웃느라 교실에서 쫓겨나기 일 수였고, 길 가다가도 하나에 꽂히면 주저앉아가며 웃었던 사람이다. 가만히 있는 옆사람도 같이 웃게 만들었고 시도 때도 없이 '너 자꾸 왜 웃어'를 들을 정도로 쓸데없는 것에 목숨 걸고 웃었던 그 시절. 웃음에도 한계량이 있는 걸까. 내가 평생 웃을 웃음을 그때 모두 써버렸던 건지, 나이가 들수록 웃음은 사라져 갔다.   


인생은 결국 누구를 만나느냐다.


나의 웃음을 되찾고 싶었다. 부정과의 조우. 부정의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했다. 어느새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자책하고,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뇌 회로는 부정적 사례를 찾지 않으면 나를 가만두지 않을 작정인지 부정이 뜸해지면 또 다른 부정을 찾게 했다. 부정적인 일이 흔한 일이기를 바라면서. 찾고 또 찾고. 심지어 창조까지. 내 안의 부정이 나를 잠식시키도록 방치한 채.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고 
긍정적 에너지를 뺐었던  
주변에 도사리는 부정적 위인들이 아니라 
부정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지배하도록 내버려  
바로  자신이었다.



더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나를 살려야 했다. 나를 지켜야 했다. 권용석 정신과 의사는 그의 저서에서 " 관계를 통해 내가 무언가를 계속 잃어 간다면 적절한 선에서 끝냄으로써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부정적 감정,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있다면 그 안에서 긍정을 찾는 대신 거리를 둬야 하는 것이었다. 부정에게는 긍정도 부정이 된다.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는 또 다른 부정적 감정과 기억을 떠안길 뿐이다.


 세상의 부당하고 부정적인 일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되 부정적인 에너지가
날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
그런 단단함.
(이석원, 2인조)


주로 나의 발견은 타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부정적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다. 그럴 때마다 무작정 부정을 부정하고 회피할 것이냐. 삼십육년을 나와 지내면서 이제와 터득한 나름의 해결책. 부정으로부터 단단하고 담담하게 있는 . 세상에 이유 없는 이유가 없듯, 모든 부정에도 이유가 있다. 나의 부정도 그렇고, 타인의 부정도 그렇고. 어딜 가든 부정은 만연해 있을 것이고, 거리를 둘 수 없다면 부정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되 부정적인 에너지가 날 지배하지 않도록 단단해지는 것이다. 담담하게 나를 지켜내는 것.


다른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살아가다 보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혜안을 얻게 되지 않을까. 부정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예비책으로 차근차근. 조금씩.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 보자. 하하하



-----출처-----

*생각이 많아서 찾아왔습니다.권용석,박미정.웨일북

**오마이뉴스.등록 2015.07.02 수정 2020.12.25

누가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라 하였나 [김성호의 독서만세 62]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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