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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Mar 03. 2021

지금이순간, 카르페디엠

아빠와 노는 지금 이 순간



둘이 개구리중사케로로 마냥 단단히 무장하고, 길을 나섰다. 동네 성내천 길을 따라 2,200m를 걸어 올림픽공원에 갔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동네로 돌아오는 코스다. 오랜만이다. 아빠와 단둘. 서로 보폭을 맞추며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말없이 걷기도 한다. 내 이야기의 90%는 길에서 마주친 동물들 얘기다. 아빠 저 오리는 청둥오리일까? 저 두루미 봐봐봐. 오리 옆에 가만히 있어. 까치가 새집에 있는 건 태어나서 처음봐. 저거 봐봐. 이런식. 마치 왜병에 걸린 미운 5살짜리가 호기심 천국 모드가 되어 아빠한테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모양새다. 어느덧 아빠가 서서히 앞장을 서신다. 내가 TMT였나.


한참을 걷다 가만.


아빠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빠의 어깨.

아빠의 발걸음.

뒤돌아 보는 아빠의 얼굴.

하얗게 김서린 아빠의 안경.

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아빠의 두 눈.

춥지 않냐며, 힘들지 않냐며,

목마르지 않냐며 건네는 아빠의 목소리.


아빠의 새하얘진 모습에 

내 마음도 새하얗게 멍해졌다.


강물처럼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에 너무나 애석해지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이루어 지지 않을 소원인 걸 알면서도 소원을 빌어 본다. 힘든 시기 일수록,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김서린 안경이 선명해 지듯 명확해진다. 세월은 참 정직하다. 거스를 수 없는 정직한 세월 앞에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고 소원을 빌어 본다.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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