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말아야 하는 것을 잃지 않는
나이가 들수록 지켜야 할 것들이 명확해진다.
좋았던 것들은 지켜내야 할 것들에 밀려나고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워간다.
화훼장식기능사를 준비하고 있는 요즘. 내일 있을 화훼장식기능사 수업에 필요한 꽃을 사기 위해 아빠와 함께 새벽 꽃시장에 나섰다. 심야 운전에 겁이 많아진 나는 아빠가 모는 차를 타고 오랜만에 야심한 도로를 달려본다. 고개를 창밖으로 돌려 야경에 눈길이 멈춰 서고, 생각도 멈춰 섰다. "잃고자 하면 얻을 것이다"는 마인드로 살았던 시절. 무서울 것 없이 한 마리의 불나방처럼 밤낮을 돌아다녔던 20대, 30대 초반의 풋풋한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만난 그도. 창밖에 보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그와 함께 바라봤던 야경이 오버랩됐다. 야경이 예쁘다며 읊조렸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때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 하필 그를 만났던 시절에 좋아했던 음악이 나오는 건 뭐람. 그를 생각나게 하는 모든 걸 모조리 등장시킬 모양인지.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한강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가 저 불빛을 좋아했었지.' '그는 잘 지낼까.' 그와 같이 꽃을 사러가는 상상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내, 내가 좋아했던 야경의 불빛이 암흑 속 도시 만이 아닌, 내 마음속 어둠도 비춰줬었다는 걸 깨달으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고개를 반대로 돌려 나 때문에 잠도 못 주무시고 새벽 꽃시장 나들이에 함께 해주는 아빠를 바라봤다. 청춘시절에 보았던 슈퍼맨 같던 아빠가 아닌 이제는 내가 지켜드려야 할 작아진 아빠가 보인다. '아빠 저녁에는 뭐 드셨어?' '김치전골에 계란말이도 나와?' 주무실 시간에 하는 운전이라 아빠가 졸리실까봐 계속 말을 걸어본다. 내가 좋아했던 것을 회상하느라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어딘가로 밀어 넣는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덜컥 겁이 많아진다. 잃을지도 모를까봐. 간절하게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켜낼 건 지켜내며 살아가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