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훼장식기능사, 바리스타 2급, 바리스타 1급 합격하기까지
하고픈거 다해보기도 어느덧 1년째.
11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시작한 하고픈거 다해보기 프로젝트. 다양한 상황에 나를 내던져 보면 진정으로 내가 잘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라는 생각에 시작했다. 목표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발적이고 독립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내 쓸모를
남이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가 스스로 알아가고 만들어 가자
-하고픈거 다해보기 모토-
_첫 시작은 바리스타
반신반의로 시작했다. 커피를 배우는 것이 지금까지 쌓아온 내 경력에 도움이 될지, 앞으로 돈벌이가 될 수 있을지. 혹자는 코딩의 유망성을 주창하며 코딩의 길로 인도하려 했지만 코딩을 하는 나 보다, 커피를 만드는 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조직사회에서는 내 생각보다 남의 생각(상사, 거래처, 고객, 동료, 데이터 등)을 따라야 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내 인생만큼은 내 생각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남들 마음에 드는 내가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나로 살아가자 자기 암시를 걸었다.
내 생각을 무시하지 말자
내 마음을 외면하지 말자
내 마음이 원하는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자
_꽃 같은 변수
뜻이 있으면 길이 있었다.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포털 HRD-net 홈페이지에서 어렵지 않게 집 근처에 있는 바리스타 학원을 찾을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학원의 컨셉이었다. 꽃과 커피의 감성 콜라보. 꽃과 커피가 함께하는 커리큘럼은 업계 전문가들이 고심 끝에 만든(수요가 많은 것들끼리 묶은) 것임에 분명했다. 다른 학원과 비교해보니 꽃과 커피를 동시에 가르치는 학원은 유일했다. 무엇보다 (꽃에 둘러싸여) 커피도 만들고 꽃도 만드는 내 모습이 싫지 않았다. 내게 꽃이라는 변수라니. 지금까지 겪었던 변수라고는 당황하거나 실망하는 것들이 다반사였지만, 꽃과 커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듯 응당 끄덕끄덕 조합이었다. 성공할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새로운 변수를 통해 어떤 새로운 배움을 얻을지, 앞으로 일어나는 변수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동안은 벗어나려고만 했지만), 그 변수를 통해 내 안에서 피어날 꽃 같은 변수를 사랑할 수 있을지였다.
뜻하지 않은 변수가 좋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좋은 변수라 생각한 것이 나쁜 변수가 되기도 했고
나쁜 변수라 생각한 것이 좋은 변수가 되기도 했다
좋은 변수든 나쁜 변수든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조금씩 나를 발전시켜 보자
_나를 바꾸는 284시간
첫 맛보기용 수업으로 시작한 '바리스타 2급+플로리스트 3급'부터 '카페데코+핸드드립', '바리스타 1급+라떼아트 베이직',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반'까지 차례로 4개의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시간을 모두 합하면 284시간. 하고싶은 것을 하는 삶과 해야 하는 것을 하는 삶은 확실히 달랐다. 마음가짐부터 의식의 흐름, 생각, 감정,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그 중심에는 나의 자발적 태도가 있었다. 즐거운 감정과 잘해보고 싶은 열의는 알아서 뒤따랐다. 수업 단계가 업그레이드될수록 욕심도 실력도 업그레이드되어갔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이전에 알던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_커피도 정이 필요해
커피를 배우면서 느낀 점이 있다. 정량, 정시, 정온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정량의 재료, 정시의 커피 추출, 정온의 커피와 우유 거품이어야 풍미 있는 양질의 커피 음료가 만들어진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거나 한눈을 팔면 커피의 맛이 변해버린다. 커피를 만드는 시간 동안은 정성을 다해 오직 커피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초를 세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손이 데어도 뜨거움에 익숙해져야 하며, 수시로 생기는 설거지거리를 빨리 정리해야 하는 민첩함과 부지런함이 있어야 한다. 조급하고, 느리고 게으른 내가 커피를 잘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조금씩 차근차근 정을 들여 바꿔가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에서 저자 와타나베 쇼이치가 말했다. 목수가 끌로 나무를 다듬는 이 단순한 작업에 혼신을 바치고, 기량을 연마하고, 삶의 이상을 찾는다면 마침내 선의 수행과 다름없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은 늙어도 얼굴이 아름답다.
[바리스타 시험 연습]
_내가 만든 로제타는 다중이
난관에 봉착했다. 진보된 카푸치노를 완성해야 하는 바리스타 1급에는 라떼아트가 있었다. 라떼아트의 기본은 로제타. 내가 들었던 수업에서는 로제타를 마스터해야 삼단 튤립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내가 만든 로제타는 다중이가 아닌가. 나뭇잎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나 때로는 요상한 네모잎, 때로는 홍당무, 때로는 도대체 얜 뭐지 등으로 등장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를 만났던 것이다. 한때 여러 가지 내 모습 중에 하나라도 실패하면 내 전체를 바꾸려 했었다. 그런 진따 같은 나에게 로제타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홍당무로 나오든 네모잎으로 나오든 커피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훗. 맞어. 수많은 '나' 중에서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인생에 어떤 풍파를 겪었든, 그래서 내가 변했든 다시 내가 되는 것이다. 철두철미한 자격증 세계에서는 로제타를 네모잎으로 완성하면 실격될 수 있지만 인간 실격은 아니다. 또 다른 내가 되어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_라떼도 알고 보니 좋은 놈이었어
라떼의 목표는 아트가 되는 것. 라떼는 위대했다. 아트가 되기까지 버텨낸 수많은 변수들. 뜨거운 커피에 제 한 몸 내던질 과감함의 양. 좌우 흔들림에 힘을 빼고 온전히 내맡기는 기술.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속도. 포기하지 않고 한 곳만 향하는 방향. 실패. 비난. 모함. 조롱. 버려짐. 이런 것들을 견뎌내며 살아낸 모든 순간이 라떼에게는 아트였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이유와 방식으로 모든 순간을 살아갔던 라떼. 그 순간에 그렇게 해야 했던 라떼. 그것이 최선이었을 라떼. 알고 보면 세상에 나쁜 라떼는 없다. 그저 각자의 라떼에 각자의 아트가 있을 뿐. 과연 나의 라떼는 어떤 아트가 되어가고 있을까. 라떼는 말이야를 회상할 때 즈음. 가장 나다운 라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기를.
[화훼장식기능사 실기시험 전날 마지막 연습]
_아름다움은 아름다움에서 피어나지 않고
화훼장식기능사 수업 초반에는 시험 볼 생각 없이 일단 한번 해보지 뭐 식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필기시험 일정이 다가오자 일단 한번 봐보지 뭐였다. 그러다 실기시험 일정이 다가오자 이왕 하는 거 한번 붙어볼까 가 됐다. 그렇게 지난 4개월은 37년 역사 이래 가장 영혼이 탈탈 털린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필기는 기출문제만 여러번 풀어보면 얼추 합격 커트라인을 넘길 수 있었지만 실기는 달랐다. 2시간 안에 3가지 과제(구조물 꽃다발+코사지, 서양꽃꽂이, 동양꽃꽂이)를 만들어야 했고 손이 미친 듯이 빨라야 했다. 시간 내에 완성하려면 무슨 꽃을 어디에 어떻게 꽂아야 하는지 머릿속에 모든 시뮬레이션이 정확히 그려져 있어야 했다. 시험문제가 무작위로 출제되기 때문에 12가지 화형을 모두 외워야 했지만 나는 손도 느리고 암기에 잼병이었다. 게다가 시험 보러 갈 때는 꽃시장에 가서 꽃재료를 직접 사서 가야 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시험 보는 몇백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꽃사수 대작전을 벌여야 했다. 이미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더불어 꽃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다시 보였다. 꽃이 아름답다고 하는 일도 아름답고 우아할 거라 속단한 내가 어리석었다. 꽃에 진심인 사람들의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해보니 내 편협한 시야와 사고방식을 실감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고됨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에서 피어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겼다.
_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만난 좋은 인연
학원에서 만난 60대 초반의 짝꿍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 나이가 되니까 인생을 준비하며 살지 못한 게 후회돼요. 내가 다시 30, 40대로 돌아간다면 배우고 싶은 거 도전해서 꾸준히 갈고닦아 20년 후를 준비했을 거예요. 지금부터 20년 후를 생각하며 살아요. 나이 들면 정말 무료해. 1만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어. 난 그 시기를 놓쳤지만, 자기는 늦지 않았어. 자신감을 갖고 해봐요. 뭐든 잘할 거야. 꽃 수업 첫째날 한 수강생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나이가 되고나니 가슴뛰는 일이 없어요. 하지만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내이름은 김삼순의 명대사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던 내게 꽤 큰 충격이었다. 가슴뛰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건, 하루라도 의미있게 살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끊임없이 내적 성장을 하고자 하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보면 멋있고 존경스럽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꾸준히 배우면서 기왕에 주어진 삶을 의미있게 살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만나는 좋은 인연이 참 고마웠다.
_내가 선택한 길을 가다 확신이 들지 않을 때
1년간 하고픈거 다해보기를 하는 동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독백을 자주 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을 가다가 확신이 들지 않은 순간이다. 그 순간은 주로 엉성하고 실수투성이인 내 모습에 자신감이 없어질 때. 이 시간이 흑역사로 남게 될까 두려울 때. 작아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때였다. 하지만 그 감정을 잊고 싶지 않다. 소심한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순간들이니까.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나를 만들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된다. 더 이상 이전에 알던 내가 아니며,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닌 것이다. 하고픈거 다해보기 프로젝트는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간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값진 도전이라 생각한다. 길지 않지만 지난 1년 간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내가 선택한 길을 가다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찾아와도 잘 하고 있고, 잘 가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버팀목이 생긴 것 같다. 마음을 다하면 다할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하고픈거 다해보며 마음을 열고 앞으로 나가보자.
파이팅!
-바리스타 자격증 정보 : 바리스타 자격증은 국가공인 자격증이 없고 민간자격증만 있다. 종류는 국제자격증(SCA)과 국내 자격증이 있는데 둘 중에 하나만 있어도 업계에서 일하는데 크게 문제없다 한다. 국내 자격증으로 한국커피협회가 주관하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가장 대표적이다. 국내에 커피 협회만 해도 약 170개가 있는데 그중 가장 공신력 있는 커피협회다. 바리스타 자격증 급수는 2급 다음에 1급. 2급 필기와 실기를 차례로 합격해야 1급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난 코로나19 여파로 2급과 1급 둘 다 필기시험은 보지 않고 특별전형으로 실기만 봤다.
*출처: 지적으로 나이드는 법, 와타나베 쇼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