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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Dec 25. 2022

크리스마스의 기적

귤이 있어 행복한 크리스마스

(c)엉뚱복실





예전에는 내 생일인 크리스마스마다 특별한 순간을 기대했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사람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바라면서 말이다. 그 기대가 채워진 적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때는 아니지만 지금은 맞다고 답할 것이다.


금요일 아침. 눈을 뜨니 갑자기 천장이 뱅글뱅글 소용돌이가 치듯 보였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어지럼증. 운동을 가려고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휘청거렸고, 괜찮겠지 속단하며 운동을 가서는 어지러움에 아찔해져 도중에 중단하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단순한 체기려니 아빠가 사혈기로 손가락 열 군데에 피를 따주셨다. 저녁에는 발가락 열 군데에 셀프 사혈을 했다. 자려고 누웠더니 뱅그르르 어지럼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해짐을 감지했다.


계획에 없던 어지럼증에 집에서 귤을 까먹으며 평범하게 보내려던 크리스마스 계획조차 아득히 먼 일이 된 듯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고, 듣고 싶은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새삼 누리던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픔을 겪고 나면 보지 못했던 걸 보게 된다.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에서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했던가. 가족과 친구에게 생일을 축하받고 서로의 성탄과 행복과 건강을 빌어주며 추억을 나누는 일. 평범이라는 이름 속에 감춰졌던 무수한 순간들이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쳐온 보물 같은 소중한 기적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병원은 돌아오는 평일에 가기로 하고 급한 대로 어지럼증의 원인이 이석증에 가깝다는 엄마의 판단이 있었다. 즉시 재활운동에 돌입했다. 엄마가 이석증 경험이 있던 터라 많은 도움을 주셨고 금요일 저녁부터 크리스마스인 오늘까지 꾸준히다. 운동 효과인지 한결 나아져 부모님과 친오빠와 새언니를 만나러 가고, 엄마가 해주시는 생일상도 맛있게 먹고, 부모님과 성탄미사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귤을 까먹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작가님의 책이 떠오른다. 매 순간. 기적처럼 살아옴에 감사하고 살아갈 기적에 감사해야겠다는 상념이 든다. 기억할 수 있는 한, 매 순간이 축복임을 기억하고 마음속에 감사와 감동과 사랑만을 간직하며 충만하게 살아가고 싶어졌다.

 

어지럼증이 완전히 해소가 된 건 아니지만 따뜻한 이불속에서 귤을 까먹으며 부모님과 하하호호 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소중하고 감사하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기대가 실망으로 남았던 기억 속에는 평범이라는 이름의 무수한 특별한 순간이 빛나고 있었다. 밝은 곳에서 더 밝은 것들을 찾아 헤매다 보니 곁에 있던 소중함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밤하늘의 별처럼 밝을 때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어둠 속에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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