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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예찬 Feb 16. 2024

09. 외국인 친구들과 베를린 여행

어라, 근데 우리 모두 외국인이네

주말 동안 다 함께 베를린으로 2박 3일간 여행을 다녀오는 일정이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평소 쉽게 마주칠 일이 없던 타 과목 수강생들과도 새롭게 어울리는 기회가 되어 뜻깊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 출신지는 전부 다르지만, 우리 모두 독일에서는 ‘외국인’이었다.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평소에 같이 어울리던 독일 친구들은 베를린 여행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기네 나라 수도인데, 굳이 여행 가이드를 따라나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대신, 떠나기 전날 밤 함께 맥주를 마시며 베를린에 관한 흉흉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상상하기 어려운 범죄 이야기부터, 본인과 지인의 경험담까지…


흔히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베를리너’의 모습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고작 스테레오타입일 뿐이지만, 아니 땐 굴뚝에 과연 연기가 나겠는가. 독일 사람들이 베를린의 치안을 어떤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하며 내가 베를린을 그 정도로만 느꼈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의 이야기에 공감한 부분도 상당히 있었지만(이것에 대해서는 추후 더 길게 써 볼 예정), 베를린은 정말 ‘멋이 있는’ 도시였다. 유럽 내 다른 대도시들과 구분되는 베를린만의 분위기가 뚜렷하게 느껴졌고, 요즘까지도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내 나이 또래 외국 친구들과 함께 여행해 본 일이 (당시까지는) 내게 흔치 않은 경험이어서 더욱 새롭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혼자였다면 같은 장소이더라도 여행의 모습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캠퍼스를 떠나 금세 아우토반에 진입했고, 나는 음악을 들으며 베를린 관광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과 홀로코스트 추모 공간 등 역사 관련 유적 이외에도 훨씬 다양한 분야의 구경거리가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깨달았다.


테크노와 레이브부터 시작해, 평소 좋아하던 카페와 패션 브랜드 등,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문화들이 이곳에서 발상했거나,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렇게 장장 5시간 정도를 달려 하늘이 어둑 해질 즈음 베를린 외곽에 접어들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저녁 자유 일정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인솔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뭉치던, 중고등학교 현장체험학습 때의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꼈다.


수줍었지만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갈 친구들을 모아 보기로 했다. 미리 찾아본 식당, ‘버거마이스터’의 햄버거가 무척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고맙게도 3명의 친구가 내 계획에 함께해 주었다. 칠레에서 온 아구스틴과 영국에서 온 소냐, 슬로바키아에서 온 크리스티나.


군데군데 가로등이 꺼진 어두운 밤거리를 걸으니 혼자가 아니라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금 스산한 것만 빼면, 건물 벽면에 그려진 재치 있는 그라피티를 구경하는 것은 꽤나 재밌었다.


‘버거마이스터’는 지하철 밑 교통섬 같은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의자도 없이 서서 먹어야 하는데도 맛집 아니랄까 봐 줄이 꽤 길었다. 그리고 역시, 그 정도의 불편은 흔쾌히 감수할 만한 맛이었다.


빈자리가 나지 않아 망설이던 우리에게 흔쾌히 자리를 내어 준 두 명의 젊은 남자들과 자연스럽게 말문을 텄다. 루마니아에서 왔다는 그들도 우리처럼 독일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이었다. 그날 저녁, 딱히 일정이 없다던 그들도 우리와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가까운 슈퍼를 찾아 술을 하나씩 사들고, 무작정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지나, 오버바움 다리를 건너, 슈프레 강가까지….


그렇게 자정 무렵까지 놀다 호스텔에 돌아왔다. 이튿날아침 일찍부터 투어가 시작되어 더 늦게까지 놀지 못한 게 아쉽지만, 보람찬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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