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라는 이름의 생존게임

feat. 천사와 악마

by 시쓰는국어쌤


수련회라는 이름의 생존게임

"저는 여러분이 하기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낮 땡볕에서 단체 토끼뜀을 하고 일어설 때의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어질어질함을, 그럼에도 쉬지 않고 쏘아대던 태양의 작렬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명당 10초간의 물 사용 시간.

세수하면서 동시에 수돗물을 두 손으로 받아 벌컥벌컥 들이켜 보기는 처음이었고,

물에서 수돗물 약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처음이었다.


새벽까지 안 잔다는 이유로 학년 전체가 강당으로 불려가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기합을 받은 일도. 이렇듯 어릴 때 우리가 경험했던 수련회는 단순한 체험이나 활동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교류, 성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나 자신을 만날 기회였다.


이 모든게 중1때의 일이었다.



이런 것들을 지금 한다면?

아마도 뉴스에 대서특보 될 것이다.

수련회라는 명목으로 과도하게 학생들의 신체와 정신을 억압한다는 내용으로 여러 언론사에서 기사를 쓸 것이고 사람들은 댓글을 달겠지.


그래서 요즘의 수련회는 안녕할까?





충격적인 형광 사각

단체로 우르르 타이트한 형광색 숏팬츠를 입고 내려오는 중학생 남자 아이들.

'쟤네들 안 추운가?'

속으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숏팬츠가 아닌 속옷이었다는걸 알고 놀람을 감출 수 없었던

이전, 대안교육기관 근무 시절이 생각난다.

대안교육기관에서 근무하며 근처 중학교의 대안교실 프로그램 운영을 함께 했었다.

대안교실에는 수업에 들어가도 잠만 자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10명 내외로 있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대안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모두 남학생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있는 교실은 모습도 남달랐다.

교실이긴 한데 책상이 딱 열개남짓 되었고 나머지 빈 공간에는 매트가 있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매트를 펼치고 잠을 자거나 했다.

그래도 혼을 내거나 하진 않았다.

그 아이들을 위한 목표는 '학교에 적응하는것, 작은 의미라도 찾는 것'이었으니까.


아무튼,

그 아이들을 데리고 횡성으로 작은 수학여행을 갔었다.

사륜 바이크도 타고 서바이벌 사격도 했다. 저녁에는 근처 마트에서 사온 재료를 다듬고 손질해 부대찌개를 끓여 먹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요리를 도와준다거나, 나르는 것을 도와준다거나, 분위기를 즐겁게 한다거나 각각의 인간적인 면모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부대찌개

저녁 시간이 되자,

우리는 마트에서 사온 재료를 꺼내며 부대찌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아이들이 하나둘씩 일손을 돕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나의 큰 솥에 모든 재료를 넣고, 각자 맡은 역할을 나누며 작은 협동이 시작된 거다.

“선생님, 제가 스X(햄) 자를게요!”

한 아이가 햄을 자르며 신나게 말했다. 햄이 사각형으로 그럴듯하게 잘려 나가자, 다른 아이는 고기를 준비하기 위해 손질을 시작했다. 차례차례 고기와 햄을 넣고, 채소도 썰어넣으면서 부대찌개는 조금씩 그 모습을 갖춰갔다.


아이들은 재료를 넣을 때마다 서로 "이거 더 넣을까요?" "좀 더 넣으면 맛있겠죠?"라고 물어보며 의견을 나눴다. 부대찌개가 끓기 시작할 무렵,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대찌개가 끓기 전에, 그동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요리도 할 수 있다면 도전해볼래?”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라면 같은 것도 해볼 수 있어요?”

"그럼. 오늘은 마음껏 해보자."


아이들이 각자 요리를 준비하면서, 점점 더 웃음소리가 커졌다. 부대찌개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다. 매일 바쁘게 수업과 학교생활에 쫓기던 아이들이, 요리라는 작은 일에 집중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은 내가 알던 그 아이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만든 부대찌개가 완성되었을 때, 제법 그럴듯했다. 아무리 자잘한 실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함께 만든 음식에 담긴 마음이 더욱 깊게 느껴졌다.


부대찌개 사진.jpg


햄, 소시지, 김치, 라면, 떡, 두부, 대파.
각자 다른 맛을 가진 재료들이 한 솥 안에 모여 보글보글 끓어 깊은 맛을 내는 부대찌개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른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우러지고 있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은 우리에게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를 품으며, 빈틈을 메워 하나로 끓어오르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고운 성의에 눈 딱 감고 받아 먹은 부대찌개

그렇게 부대찌개가 완성되었을 때, 한 아이가 내게 부대찌개의 햄과 떡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주려고 했다.

“선생님, 저녁 준비하시느라 제대로 못드셨을텐데 이거 드세요.”

햄과 떡을 숟가락에 떠서 내게 건네며 고운 눈빛을 보냈다. 사실 나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햄을 먹을 수 없지만, 그 고운 성의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딱 감고 그 숟가락을 받아 먹었다.

아이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들에겐 아마 내가 그저 ‘선생님’일 뿐이었지만, 그 작은 배려는 나를 진심으로 감동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교사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그들과 연결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아이들이 주는 작은 선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따뜻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부대찌개를 함께 만든 후, 아이들은 내게 “선생님, 맛있죠?”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의 기쁨은 그들이 만든 음식의 맛을 넘어,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나누며 만들어낸 그 시간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너 커서 뭐 될거야?

그날 밤,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의 말 속에서 나는 그들이 살아온 16년,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었다.


“근데요 선생님, 진짜 저희 진로 같은 거 잘 모르겠어요. 뭐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그냥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어요. 뭔가 하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냥 답답해요, 머릿속이.”


한 아이가 의자에 기대 앉은 채로 슬쩍 말을 꺼냈다. 그 애는 평소에도 친구들이랑 농구하고 게임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지만, 진로나 미래 얘기만 나오면 늘 “아직 몰라요” 하고 대답하곤 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속으론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맞아요. 저도요. 고등학교 가면 뭐 해야 되냐고 물어보면... 그냥 ‘몰라요’밖에 생각이 안 나요. 엄마는 맨날 ‘너 뭐 할 거야, 어떻게 살 건데’ 이러시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또 다른 아이가 책상에 턱 괴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는요... 꿈 같은 거 진짜 없어요. 부모님은 그냥 내가 나중에 잘 될 거래요. 근데... 뭐 해야 잘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좀 자유롭게 살고 싶긴 한데, 그런 게 되는 건지... 뭔가 하고 싶은 거 찾는 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생각해도 잘 모르겠고요.”


“나도 처음에는 고민했어. 어릴 때는 내가 무엇을 잘할지 몰랐거든. 고등학교 때는 막연히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그게 진짜 직업이 될 수 있을지는 몰랐어.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시집도 많이 빌려 읽고 필사도 하고, 친구들하고 독서 토론 모임을 만들어 활동도 했지. 대학교에 가서는 좀더 본격적으로 시에 관심을 갖고 신춘문예에 관심을 갖고 문예지 같은 데에 내가 직접 쓴 글을 투고하고 조금씩 인정 받으면서 내가 비교적 글로 표현하는 걸 잘한다는 걸 알게 됐어. 그렇게 조금씩 내가 잘하는 걸 찾아가면서, 결국 교육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거야.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를 경험을 통해 알아가는 거야. 꼭 처음부터 뭘 할지 알아야 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여러 가지를 직접 해보면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즐겁고, 어떤 일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지를 느껴보는 게 더 중요해. 그리고 가끔은 실패하거나, 생각보다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도 다 도움이 돼. 그걸 통해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선명하게 알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고민은 단순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싶은 방식, 그들이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한 불안이 담겨 있었다.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이렇게 막막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에 그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진로를 찾는 길은 결코 직선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 완전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막막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고민과 불안은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는 과정의 일환일 것이다.

때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그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이 아이들과 함께한 작은 수학여행에서, 그들은 내가 몰랐던 많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대찌개를 준비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들의 진지함과 순수함에 감동을 받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공부'와 '배움'이라는 틀 안에서만 아이을 재단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느낀 깊은 철학과 생각들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고,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더 수련회를 기대했다.

수련회를 가면 아이들의 생각지 못한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향기'는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작은 배려나, 예상치 못한 성숙한 모습으로 걸어와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주었다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도 피곤하지만 그래도 그런건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고 아이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될 것이니까.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체험학습 인솔 교사 '실형' 구형

속초로 현장 체험학습을 간 도중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와 관련해, 인솔 교사에게 실형 판결이 내려졌다.

‘실형’이라는 소식을 듣고, 교사들은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무너져내렸다.

이전에 있던 학교에서,
정말 무난하고 얌전하던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을 시절에 간 수학여행에서도,
이동 중 계단에서 미끄러져 허리에 타박상을 입거나
돌에 앉아 있던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발톱에 할퀴어 손에 피가 나는 등의 작은 사고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도 사고는 생겼다.
그런데 위험한 행동에 서슴지 않고 도전하는 성향의 이 중학생들을 데리고 나간다면…?

당연히 다양한 사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을 다녀오도록 했는데
정말 운이 안 좋게,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는 일이 생긴다면.
그래서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교사인 나는,
뉴스에 나온 그 경우와 다르지 않게 처벌받는 것이다



교사도 할 수 없는게 많다

결국 교장, 교감 선생님, 학년부장 선생님, 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각 반 회장, 부회장 아이들을 불러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솔직 담백하게, 조금은 무겁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의 실망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장기자랑도 준비하고, 그날 입을 옷까지 생각하며 설렜을 텐데.

미안했다.
힘이 없어 미안했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이런 걸까.


그런데 그 ‘힘’이라는 걸,
교사들이 원하면 정말 가질 수 있는 걸까?
대체 그 방법이라는 게 있기나 할까?


재작년 여름,
전국의 교사들이 땡볕 아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도로 한복판에 모여
그렇게 외쳤어도

교육 현장은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언제쯤 우리는 다시

수련회를 갈 수 있을까?

학교를 벗어나 인간대 인간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그 날이

추억에만 묻히는 것 같아 아쉽다.


얘들아, 수련회를 못가게 되서 아쉽겠지만

사실 너네들보다 선생님이 더 아쉬웠어.

수련회를 가기 전에 짐을 싸는 설렘

버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의 푸르름이 주는 설렘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실때 심장이 간질거리는 설렘

다른 공간에서 눈빛을 마주치고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설렘

그런 것들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나 언젠가는 꼭 우리가 같이

그런 설렘을 느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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