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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Feb 14. 2022

탈(脫)진실의 포퓰리즘 시대?

독일문화원 제 44차 학술간담회 Note (2017년 2월)

조금은 오래전인 2017년 2월 22일 독일문화원에서 진행된 학술간담회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얼마전 유투브에서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능력주의, 정치, 교육에 대한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통찰이 느껴진 영상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이 간담회에 나온 김누리교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과거에 '탈진실'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던 간담회 내용이 좋았었고, 이때도 김누리교수의 말에 깊이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침 예전에 간담회 내용을 정리해놨던 것도 있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올립니다. 


독일문화원 제 44차 학술간담회 Note

<“탈(脫)진실의 포퓰리즘 시대?”>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  올라 두세가르드

1. 기저발언


탈(脫)진실은 독일에서 올해의 단어(postfaktisch)로 선정이 됐다. 또한 옥스퍼드 사전은 post-truth를 올해의 단어로 지정했다. 한편, ‘포퓰리즘’을 표방하는 정당/단체 들은 ‘거짓뉴스(fake news)’를 이용해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실제로 미국 트럼프당선, 영국의 브렉시트를 통해 실제로 선거전에서 그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 왔는가?

이는 미디어가 SNS로 변화하면서 이러난 현상이다. Social network는 쌍방향으로 대화를 하지만 한편으로 고객(client)과 매니저(provider)와의 귀속관계이기도 하다. 현 상황에서, 일부는 Social Capital의 붕괴가 됐다고도 말한다. 앞으로 행동주의 사회과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2. 기저발언 II


탈진실이 그 어느때보다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이에 굉장히 취약하다. 우리는 비대칭 정보만을 듣고 있으며 이는 post-truth를 저항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거짓이 침투해왔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내부 면역체계가 부실하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은 합리적인 토론문화가 전혀 형성되지 않아있다. 합리적인 토론을 해야 할 정치집단이 오히려 난투장으로 되어있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토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예능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시사적으로서 진실을 다루어야 하는가? ‘진실성을 판단’하는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독일)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물론이고 교육계도 2017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탈-진실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3. 강연 : Havertz 교수(계명대)


1) 포퓰리즘/포퓰리스트


포퓰리즘은 루머나 거짓뉴스를 사용한다. Fact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fact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fact를 그저 의견중의 하나로 추락시킨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정적政敵에게 치명타를 입힌다. 포퓰리스트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유럽의 사례를 본다면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독일의 대안당이 이 범주 안에 있다. 이들을 좀 더 세분화한다면 우-포퓰리즘이라 할 수 있다.


-> 포퓰리즘은 정의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단어다. 명확한 개념이 있다기보다는 애매한 경계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일종의 신드롬이다. 우파와 연계될 수도 있으며 좌파와도 연계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던 간에, 포퓰리즘적 탈진실이 일어나면서 사실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시대의 종말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처음 포퓰리즘적 탈진실을 보며 ‘금방 식는 것이겠지.’라고 했지만 외려 현실에 강하게 나타났다.


미국의 정치학자 칼 모드의 ‘포퓰리즘’의 최소정의는 이렇다.

⓵ 포퓰리스트는 진정한 민족(공동체)를 위한다고 ‘주장’한다.

⓶ 진정한 민족을 지향하며 부패를 척결한다고 한다. 이는 엘리트집단을 부정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엘리트집단이란 착취자들이다.

⓷ 보편적인 국민의지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국민주권을 위해 단결이 가능하다고 하며, 국민주권이 적법한 정치원천이라고 한다.)


독일 대안당은 국가권력이 국민주권에서 나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일은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 이며 기본법에는 이러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포퓰리스트는 국민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투표를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목표는 목표의 관철이다. 유럽 여러 나라의 난민문제나 Brexit가 이에 대한 결과다.


또한 포퓰리스트들은 거대한 체제-민주주의나 사회주의-가 내용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고 한다. 포퓰리즘은 이 둘과 모두 어울릴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포퓰리즘을 카멜레온, 이라고도 부른다.


우파-포퓰리즘은 국수주의와 결합한다. 이들의 힘은 그들과 같은 노선을 타지 않는(윤리/민족/종교) 이질적 대상에게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의 적’으로 만든다. 현재의 이런 위기는 현대와와 대표성 그리고 정체성의 대한 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2009~2009년의 세계적 경제위기와 유로 존의 해체, 이를 통해 급부상된 신자유주의의 승리(Globalization)이 불안성과 불확실성을 키움으로써 이런 포퓰리즘이 대두하게 되었다.


빈부격차는 계속 심화되고 도시만 세계화가 미루어진다. 포퓰리스트는 이 상황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다.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인척 한다. 하지만 그들의 민주주의 개념은 빈약하다. 다수의 월권을 이용하면서 자유주의를 비호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반대를 한다. 포퓰리즘과 사민주의는 Fact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즉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정체성간의 대립은 이데올로기간의 대립과 동치 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적인 것으로 바라보면, 진실은 사람을 억제시킨다.(정신병원) 진실을 해체하고 진실을 특수화 시킨다. 여기서 “상대주의적 진실”이 나온다. 이것은 사실과 진실로 나뉜다. 워싱던의 로비스트와 씽크탱크는 사회구조의 진화를 저하시키기 위해 연구결과를 부정하고 보건정책을 왜곡한다. 또한 전문가를 통해 Fake News를 확산한다.(FOX channel)


정치적 process에서 보면, 이들은 반대를 제시함으로써 진실이 의견으로 전락하는 전법을 구사한다. 학술적인 견해까지 신빙성을 떨어뜨리며 신뢰를 저하시킨다. 그리고 fact에 반하는 의견을 spread한다. ex) 티파티의 기후변화 반대의견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이다.


이런 도덕성의 저하와 로비스트들의 활동은 트럼프의 당선이후 트럼프式 포퓰리즘으로 나타난다.


거짓뉴스는 의도적이며 전세계에 혼란을 준다. 독일에서는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날에 도르트문트에서 아랍인에 의해 교회가 방화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었다. 언론은 작은 사건이라도 이를 자극적으로 만들어 퍼뜨린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상관없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진지하게 ‘매우 위험’하다. 이런 뉴스를 확산시키는 자들의 생각은 이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노선을 타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을 이용하여 그 생각을 더 굳건히 받아들이게 하는 것.


독일 사민당(SPD;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은 이러한 ‘거짓뉴스’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입법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진실을 가름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있다. 일관적 반대는 오히려 민주주의적 판단과 위배된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보건데, 비판적 관찰자는 진실 파악이 더 어렵다. 그리고 국가는 무엇을 진실로 판단할 것인가? 권력이 중요하게 적용될 때 그것을 악용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의 시대는 언제였는가? 아쉽게도 그러한 시대는 없었다. 진실은 언제나 쟁취되어왔다. 하지만 현대, Internet과 SNS은 그 판도를 바꿨다. 정보들은 가감 없이 유포되며 필터기능은 실효성을 잃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과거에는 ‘내가 아는 사실을 이웃도 같은 경로로 들었다.’였겠지만 현대에는 자신만의 각자 자신들만의 소식통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르게 생각한다면, ‘내 입맛에만 맞는 진실만 받아드린다.’가 될 수 있다.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진실은 차단하고 소위 ‘끼리끼리’있는 겉으로 보기에 ‘민주주의적 town hall’이 생성된다. 하지만 이런 town hall들은 포퓰리스트들에겐 아주 좋은 ‘전초기지’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비판이 없는 SNS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fact는 그 공간에서 흔들리기 시작하고 실효성을 가지지 못한다. 이성에 기반을 둔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미국은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mainstream reality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기사도 나왔다. 이런 ‘극우’성향을 가진 트럼프는 진정성을 무시한다. 트럼프는 유명 토크쇼에 나왔고, ‘나홀로집에’에서도 호텔 지배인으로도 나왔다. 대중문화에 있던 사람이 정치권력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이것을 새로운 리얼 버라이어티로 볼 수 있는가? 사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것을 보류하는 이들이 트럼프의 주요 지지자들이다. 민주주의에 기반 된 사회는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작금의 상황을 이렇게 비유하기도 한다. ‘백악관은 잠시 못된 광대에게 맡겨졌을 뿐이다. 잠깐의 휴지기를 가지고 다시 이성과 민주주의로 백악관을 되찾아야 될 것이다.’


이런 ‘극우 포퓰리즘’이 위험한 이유는 이들은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를 파괴하며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Fact가 무너짐을 뜻한다. post-truth의 세계에서는 지배자의 입맛에 맞게 역사가 바꾸어진다.


탈진실이 독점하면 비로소 포퓰리스트가 승리한다. 그들의 의견만 관찰되면 되는 세상. 이는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단일한 의지만이 있을 뿐이며, 다른 것과 상충될 수 없다. 2014년, 독일에서 올해 최악의 단어로 gut Mensch(좋은 사람)이 뽑혔다. 포퓰리스트들은 이러한 문구를 사용하며 엘리트를 비난하며, 정치와 언론 또한 비난하고 자기합리화를 시킨다. 이들은 ‘거짓말쟁이를 거짓정보로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특히나 민족과 정치를 강요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일어나는 것일까? 애초에 그들은 서민참여에는 관심이 없다.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대표를 비난 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유일한 관심은 그 자리를 자신들이 차지하는 것이다. 표퓰리스트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그들의 아젠다를 확인해보는 방법이 있다. 그들의 행동이 반-민주주의, 혹은 반-다원주의 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포퓰리스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는 개체로서 민주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한다. 거짓뉴스에 휘둘리지 않고, 달변에도 속아서는 안 된다.


4. 대담 : Havertz 교수(계명대, 이하 H) 김누리 교수(중앙대, 이하 K), Pollmann(사회자, 독일고등교육진흥원 소장, 이하 P)


H) 세계화가 되며 세계대전이후 경쟁에서 협력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지금 다시 회귀로의 움직임(보호주의)가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권의 American First도 그렇고, Brexit를 위시한 EU의 형태 축소. 이는 평화를 위협하는 전조이다.


K) 탈진실에 대해 공감. 국회 청문회를 보며 뻔뻔한 거짓말을 보았다. 크게 세 가지 질문과 두 가지의 코멘트가 있다.


※ 질문


⓵ 탈-진실, 즉 거짓이 늘었다고 해서 시대가 변화한 것인가? 이것이 사회가 아니라 시대(era)까지 발전 가능한 현상인가?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명화/매체/배경/사상적)으로 접근한 것이 좋았다. 그리고 탈-진실은 역사적 시점 어디에서나 있지 않았는가?(마키아렐리-히틀러-트럼프/한반도; 김일성, 박정희-박근혜)


⓶ 트럼프 현상을 탈진실로 일반화 할 수 있는가? 상당부분은 미국적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아도르노는 미국으로 미주하고 두 가지 충격을 말했다. 1) 다른 유럽국가보다 반유대주의가 약했던 독일이 오히려 히틀러 이후에 선동에 열광한 것. 2) 미국에서 새로운 인간 종을 보았다.(사유하지 않은 인종/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즉, 우민화.

무사유사회는 성찰이 부족하다. 현재 미국상황이 그렇다. 미국의 정치구조는 기만적 정치구조, 소비지상주의, 생태의식부제로 나타나며 이것은 유럽과는 다르지 않나? 트럼프 현상은 미국 헤게모니의 궁극적인 몰락이다. 레이건 이후 붕괴해온(자유수호/광범위한 동의에서 동의에 의한 지배로 점차) 것이 W.부쉬에 와서 소멸되었고 트럼프에서 그 극단을 찍었다. 오바마는 일종의 응급처방이었다.


⓷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정치의 위기(전통적 정치의 몰락 -> 우익 포퓰리즘)


1) 세계화의 덫 – 민주주의의 위기(극우주의 확산/군부 파시즘의 재등장) 엘리트의 붕괴


2) 몹쓸, 아름다운 규범 – 포퓰리즘의 확산 이유 : 근대 세계의 출발이 잘못됐다. (인권선언/독립선언) Alle Mensch를 지향하는 규범적 근대정신을 이으려는 것이 현재정치의 나약함을 공격하고 이가 우익 포퓰리즘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 답변


H) 탈진실은 질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미디어의 변화로 인해). 트럼프는 이제 트위터를 이용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건다.” 이는 미국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Emergency Alert. 그는 이것을 이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것은 언제쯤이 될까? 트럼프는 ‘나’와 ‘바깥’을 구분 못하는 사람이다. 시대로 돌아와 이야기를 해본다면, 전통적 미디어가 기여를 하지 못하고 양적인 변화가 이러난 것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말 할 수 있다. 과거에 거짓을 진실로 바꾸려 했다면 현재는 거짓을 말함으로써 진실을 그저 하나의 의견으로 격하시킨다.


P) 뉴스필터링은 부패될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있다. 스스로 어떻게 거짓뉴스를 가려낼 수 있는가?


H) 아직은 뉴스가 균형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FOX channel, Facebook은 다양한 견해가 없다. 여기서는 거짓뉴스가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보이고 있고,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건 우경향/좌경향된 커뮤니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주의적 성향으로 갈 확률이 크다.)


P)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H) 모든 포퓰리즘 리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카리스마 형이다. 호감을 주고, 여유를 보이고, 직접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분명 특정정치를 가리키고 있다. 그의 표정에는 가려진.


K) 한국 사민주의에 대해.

난민문제나 극우당의 출현은 신자유주의에 대처를 실패한 결과물이다. 독일은 다행히 노동자들이 좌파당으로 흡수되었고 RFD(독일 대안당)로 흡수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유례없는 극단적인 레드 complex를 가지고 있다. 한국는 ‘사회 없는 사회’다. “사회(Sozial / Social)”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한다. 정치구도는 포퓰리즘 정당구조이다. 이들의 작동 원리는 ‘일상적인 거짓’이다. 정치의 본질 자체가 진도와 보수의 대결이 아닌 포퓰리즘 그 자체인 것이다. 보수는 역사/민족/공동체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자신들을 ‘보수’라고 자청하는 이들은 역사를 두려워하며 민족을 경시하고 사회적가치를 두려워한다. 이들은 수구일 뿐이다. 독일어에 ‘수구’에 해당하는 말이 없었다. 수구들은 개인의 이해만 생각하고 항상 이기적이고 기회주의로 움직인다. 해방이후 진정한 민주주의자인 김구선생이 암살된 이후로 한국에는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거의 없다.


P) 포퓰리즘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대안 fact는 fact가 아니지 않은가?


H) 계몽이 해답이다. 계몽했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교육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적 운동을 촉진하고 공론의 장을 만들자. 반-포퓰리즘 운동들 함으로써 탈진실 시대의 종말을 맞자. 진실에 초점을 맞추자.(그러나 한편으로 회의적이기도 하다.) 포퓰리스트들은 유용한 것만 진실로 퍼뜨린다. 나머지는 fake라 믿는다. 비판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


K) 19세기로의 회귀? 우린 21세기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은 그들의 정책을 보면 오히려 다른 국가의 보수에 가깝다. 한국은 그래서 수구와 보수가 권력을 나눠먹는 과도지배체제이다. 역시 우리도 교육을 통해 계몽해야 한다.

촛불집회는 두 가지를 뜻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 취약하다. 한편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도 위대하다. 정치교육을 하지 않으면 이용당한다. 독일은 68혁명 이후 정치교육을 통해 선동자를 판별하는 능력을 기르고 저항권을 교육시켰다. 초등학교때부터 불의에 맞서는 방법과 기술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모순의 교육 또한 이루어진다.


P) 포퓰리즘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전통적 언어/새로운 언어


K) 한국사회의 계몽이 중요하다.(초등학교때부터 정치교육)

정치구도가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것으로 재편되어야한다.(정치언어의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포퓰리즘을 저지하기가 어렵다. 진실은 단순화되고, 상대방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과 노선이 다른 이들을 애초에 대화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뒤 진행되었던 간담호 이후, 다행이도(?) 그는 4년 후에 재선에 실패합니다. 미국은 그 사이 많이 망가졌고, 어쩌면 이전의 모습을 다시 찾지 못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한국도 시간이 흘러 다음달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한국사회가 선진국으로서 성공적인 첫 발걸음을 내딛는 기회가 될지, 아니면 다시 한발짝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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