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밤에 쓰고 싶었지만, 밤 열한시에 들어왔고 다음날 다섯시반에 일어났어야 했기 때문에 며칠이 지나서 쓰는 도큐멘타 2일차 이야기.
도큐멘타 시작은 열 시, 내가 일어난 건 여덟 시였다. 전날 저녁으로 먹은 헝가리식 슈니첼이 아직 뱃속에 많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아침을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짐을 싸서 에어비앤비를 나왔다. 호스트는 주말인지 늦게까지 자는 것 같아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트램을 타고 루루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잠에서 깰 겸 아메리카노 한 잔과 치즈케잌 하나를 시켜서 먹었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첫 날에 너무 긴 길을 보고 놀라 못갔었던...
1) Fridericianum
아마도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있었던 곳이 아닐까 싶다. (한국식으로)1층부터 5층까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전시장을 돌아다니다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 명 봤다. 하지만 말을 걸진 않았다. 1층은 카셀에 있는 물건들을 사용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것들 (문장을 쓴다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놓을 수 있는)이 있어서 사람들이 재밌어했다. 바닥에 새 형상의 조각이 있고, 그 밑에 사람들이 문장을 휘갈겨 놓은 전시에서 ‚케밥은 다시 3유로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2층에는 페미니즘이나 LGBTQ+와 같은 소수자에 관련된 작품들이 자리를 추로 차지했다. 그리고 여러가지 개념을 원형으로 배치한 것이나, 생활의 물건들을 이용하여 장소를 구성하는 것들도 있었다. 현대미술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문해력에도 가끔은 한계를 느끼게 되는데, 이 날은 그것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 한글없이 영어나 독일어로, 한국어로 봐도 어려울수도 있는 개념일텐데, 텍스트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처음부터 힘이 빠졌던 것 같다. 그래도 제일 좋았던 것을 꼽아보자면 영상 작품이었는데, 이라크의 사람들이 정부에 대항하여 펼쳤던 (그리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정치적 운동에 대한 것이었다.
2) Stadtmuseum Kassel
카셀 중앙역으로 가는 중에 있는 도시박물관도 한 층에 하나씩 총 4명의 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하나는 영상 / 하나는 설치 / 하나는 사진과 텍스트 그리고 하나는 1)에서 봤었던 프로젝트 팀의 워크샵 내지 아뜰리에가 있었다. 여기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처음 본 영상. 호주 근처의 미크로 네시아에 사는 예술가이자 헤비메탈 가수인 어떤 남자 작가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그 섬의 원주민인데, 호주 정부와 경찰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그들을 내쫓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그의 동생은 진압에 사망까지 했다는 것. 나는 이번 도큐멘타의 좋은 점이 중심에서 빗겨나와서 이렇게 우리가 잘 모르는 변방에서의 이야기들, 주목을 받지 못해 부조리와 불합리를 당하고 있는,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2층에서는 낚시대를 형상화 한 것 같은 작동하는 기계가 있었는데, 일정 시간마다 바닥을 때리는 것이었고, 나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다.
3) WH22
WH22는 도로/주소의 이름을 줄인 것이다. 이곳은 허름한 건물로 이루어진 작은 구역인데, 예술 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냄새가 한 껏 났다. 나는 여기에서 동아리 친구와 30분 정도 통화를 했다. 독일와서 통화를 처음 하는 친구라서 반가웠다. 그는 서울에서 살다가 얼마전 남양주로 이사를 갔는데, 서울까지 통근을 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보였다. 나름 자기 자신이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는 있는데, 환경이 어렵다. 다들 퇴사를 하고 돈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곳은 영 맘에 드는 것이 없어서 할말이 없다. 외부에 있던 태국식으로 꾸며진 정원을 거닐면서, 상쾌함을 느꼈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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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기 전에 간단히 배를 채우기 위해 케밥집에 들렸다. 양고기가 들어간 것을 시켰는데, 나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뒤가 터져서 소스가 니트에 묻었다... 허겁지겁 휴지로 닦았지만 얼룩이 조금 남은 것 같다. 그냥 천천히 먹고 나올 걸.
4) Hübner-Areal
도큐멘타는 4가지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지금까지 나는 Mitte(중심)에 있는 것만 보았다. 이곳은 보라색으로 표현된 곳이고, Bettenhausen이라고 명칭이 붙었다. 나는 이곳 중 가장 큰 Hübner-Areal로 향했다. 이곳은 이전에 회사 창고로 보이는 곳을 개조한 것 같았고, 높이도 높고 안의 면적도 넉넉한 탓에 시야가 탁 트였다. 아프리카 문화를 표현한 것 같은 여러 조각/인형과 덴마크의 난민 문제를 다룬 작품 등 수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입구에는 카셀에 사는 사람들이 직접 장을 열어 물건을 파는 것도 있었다. 눈에 띄는 니트가 있었지만 내가 입기에는 너무 작은 것 같았다.
5) Bootsverleih Ahoi
보라존과 이별을 고하고 초록존(Fulda : 풀다 강 근처의 전시)으로 향했다. 원래 지인을 통해 알게된 또 다른 지인 (빈에서 예술공부 중!)과 네 시 반에 만나기로 했지만, 그가 다른 갤러리를 들렸다가 온다고 해서 여섯시쯤 이곳, 보트를 빌려 탈 수 있는 장소에서 만났다. 연락처는 진작에 받아서 가끔씩 연락을 했지만 실물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이름만 알던 인터넷 친구를 실제로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는 독일어 자격증이 있지만 공부를 하고 있는 빈에서는 영어를 더 자주 그리고 편하게 쓴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는 영어 설명을 읽었다. 이곳에서는 Dream Station이라는 꿈을 주제로 한 작품을 보았는데, station이 진행 되면서 계속 해서 다른 듣기 텍스트가 나왔다. 어디 누워서 모든 것을 다 들으면서 잤으면 하는 생각이었지만 오늘 전시가 종료되는 8시까지 최대한 많이 돌아야 해서 나왔다.
6) Walter-Lübcke-Brücke & Rondell
풀다 강에 지어진 다리와 건너편에 있는 인공 돌 구조물에서의 전시. Rondell에서 이루어진, 캄캄한 건물 속으로 들어가서 풀피리 소리와 풀 그림자를 배경으로 몇 분을 조용히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공간이 도시에 있을 수 있지? 그리고 여기서 펼쳐지는 작은 콘서트가 너무나 좋았다.
7) Hiroshima-Ufer
이곳에 왜 히로시마 라는 일본지명이 붙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처음에 이번 도큐멘타의 작품인 줄 알았던 거대한 파랑색 곡괭이가 사실은 원래 있던 미술품이라는 것에 놀랐다. 실제로는 어떤 배의 일부분이 뒤집어져서 땅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Citzenship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 배는 풀다강을 다니면서 거기에 설치된 풍력발전으로 에너지를 생산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동을 멈춘 뒤 배의 가장 중앙 부분을 거꾸로 설치하고, 중앙에 배가 다닐 때의 영상 역시 거꾸로 달았다. 무슨 의미가 있을 지는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 (사진 못찍음..)
8) Karlsweise
풀다 강 바로 옆의 공원에 설치된 세 개의 영상 작품. 첫 번째는 가자마자 끝나버려서 이해를 잘 하지 못했다. 다만, 주변이 모두 부서진 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나무에 관련된, 나무를 위한 (어쩌면 나를 위한?) 전시라고 생각이 됐다.
제일 좋았던 두 번째 것은, 영상 작업이 펼쳐진 텐트가 온갖 쓰레기의 묶음 (플라스틱/헌옷)등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상의 내용인 즉슨, 아프리카에서 돈을 주고 서양의 헌옷을 사온 다는 것. 어찌보면 쓰레기를 돈 주고 사오는 것인데, 미국와 유럽의 상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렇게 돈을 주고 헌옷을 사와도 그 중의 40%는 못 쓰는 것이라 버리게 된다고 하는데... 다시금 세상의 불공평과 부조리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중국에 있는 댐에 대한 것. 자세한 것은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해 알 수 없었지만,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자행되는 무지성 댐 공사를 저격하는 것 처럼 보였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지어진 댐 들고 있다고 듣기도 했고, 댐은 만드는 것은 사실 물의 흐름을 억지로 인간이 바꾸는 것이라 정밀하고 세심하게 구상하지 않는다면 자연에게 1차로 좋지 않고, 2차로는 원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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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일 간의 도큐멘타 관람이 끝났다. 모든 전시를 다 보진 못했지만, 2일 간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고 생각한다. 8시에 관람이 끝나고는 지인과 함께 전날에 본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모로코 음식 점에 가서 전통음식을 먹으며 맥주 두 잔을 마셨다. 밥을 먹는 동안 도큐멘타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오래간만에 한국어로 건설적인 대화를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좋아졌다. 한국을 떠나올 때 시집을 챙겨왔었고 그에게도 한 권을 줬는데 (기대이상으로) 감사해줘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각자 숙소로 가는 길에 말을 놓기로 했고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볼 날을 기원하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