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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05. 2023

73'Berlinale : 2

*관람한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De Facto>, <Műanyag égbolt(White Plastik Sky)>


영화제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축제의 장에 모인 이들이 모든 것을 공평하게 즐길 수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있다.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상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원으로 상영이 진행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당연하겠지만) 보고 싶을 영화를 고르고 예매를 해야 한다. 


(나와 같은) 영화팬들에게는 영화제 시작 전 어떤 영화를 볼지 미리 고르는 게 아주 중요하다.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축제 시작 전에 조금씩 홈페이지에 영화들에 대한 정보가 올라왔다. 그래서 나는 시작 삼 주 전쯤 그것들을 훑어보며 1차 리스트를 작성하였고, 개막 일주일 전쯤 모든 영화에 대한 정보가 올라왔을 때 다시 한번 검토하면서 영화제일정동안 보고 싶은 리스트를 완성했다. 도시의 축제이기에, 영화제 개막이 얼마 안 남았을 때에는 내가 다니던 독일문화원(Goethe Institut)은 물론, 베를린 곳곳에 영화제 정보가 담긴 꽤나 두꺼운 팸플릿(독어+영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늘 그렇듯) 주최 측의 감사인사와 심사위원단 소개, 그리고 모든 영화의 소개가 담긴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작년 전주에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약 영화제 시작 이 주~한 달 전부터 예매가 풀렸던 것 같다. 나는 조금은 늦게 예매를 하는 바람에 내가 처음에 보고 싶었던 영화들로 라인업을 짜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베를린영화제는 영화제 시작 전 모든 영화의 예매를 여는 방식이 아니라, 상영 3일 전부터 예매를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예컨대 2월 18일 날 상영되는 영화라면, 15일 날 오전 10시에 그것이 열리는 식으로. 


어떻게 보면 전자의 경우보다 좀 더 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학교 때 경험했던 수강신청 지옥을 느낄 수 있었다. 경쟁작이나 기대작의 경우에는 10분도 안되어 매진됐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에 하루에 경쟁작을 두 편을 잡아놨다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건 다 내 욕심이었다. 모두가 같이 즐기는 영화제에 나 혼자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는 없니까. 오히려 이런 점에서 우연성에 의한 재미가 탄생한다. 원래는 후순위에 위치하거나 우연히 표가 남아 예매하면서 내가 처음에 작성했던 리스트에 없던 영화를 보게 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편했던 것은 홈페이지 내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Favorite로 정해놓으면 자동으로 스케쥴러로 이동이 됐고, 이것을 구글/아이폰 캘린더로 공유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따로 핸드폰에 저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내가 예매한 영화들을 핸드폰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핸드폰의 기능이겠지만, 나중에 표를 구매하고 메일을 열람하면 자동으로 확정된 일정으로 추가되는 것도 굿!)


그래서 나의 첫 번째 영화는...



1. <De Facto> / Selma Doborac / Forum / 오스트리아, 독일 2023

(2월 18일 13:30 Kino Arsenal 1)

사진출처 : 베를린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첫 영화는 Potsdamplatz 근처의 Sonycenter 지하에 있는 Kino Arsenal에서 보게 됐다. 영화의 거리에 극장이 몰려있었던 전주와는 달리, 베를린은 수도답게 도시 곳곳의 영화관에서 상영이 진행됐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시간표상에서 보고 싶은 두 영화가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데 극장 사이가 멀면 예매를 포기해야 했다. 어쨌듯 이 극장은 Deutsche Kinematik이라는, 독일 영화관련 된 박물관과 같은 건물을 공유하고 있으며 평소에도 독립영화나 오래된 영화들을 상영해 주는 것 같았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는 Forum/Forum Expanded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주로 (혹은 이것만) 상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줄을 선 뒤에 첫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는 어느 시골의 한 파빌리온에서 두 남자가 번갈아가면서 굉장히 장문의 텍스트를 말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한 명의 남자는 가해자의 입장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마치 변호하는 것처럼 서술하고, 또 다른 남자는 마치 재판관처럼 그것에 대해 평하고 철학적인 텍스트까지 가져오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두 주인공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철저하게 고정적이 한 화면에서 한 명이 10분에서 20분 정도의 아주 긴 텍스트를 읽는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됐다. 그래서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어원어에 영어자막이 주어졌지만, 대사가 너무 빨랐고 텍스트도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영화에서 나오는 느낌은 좋았다. 상영 뒤에 있었던 감독/배우들과의 인터뷰를 들으니 조금이나마 감독이 왜 이 영화를, 그리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것을 찍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 베를린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기본적인 구성은 젊은 남자가 역할하는 가해자 또는 범인(Täter)과 이를 대하는 남자인데, 이 둘의 언어는 다르다. 전자가 높인 말인 Siezen을 사용하는 반면, 후자는 반말인 Duzen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독이 밝히길 둘 사이의 위치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러니까, 과거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반인류적인 사건들에 대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그것을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들려주는 것. 이것은 고전적인(Classic) 방법이 아니었지만 (이 부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하여 다큐멘터리 서사가 주인공들에게 흡수되며 다큐적 꿈(Traum)으로 격상되는. 그러나 언제까지나 영화 속에 나오는 텍스트들은 감독이 몇 년간 조사한 실제 과거의 사건의 재판기록에서 가져왔던 만큼 실제를(De Facto) 다루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Faktum(사실)들에 대한 고백으로 인하여 영화가 끝나고 어떠한 작용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감독은 말했다. 


여담으로,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영화 관련 책을 파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홍상수 영화에 대한 책이 있어서 구입했다. 이 책은 며칠 뒤 만난 친구(어학원에서 알게 된 멕시코인, 홍상수 팬)에게 빌려줬다. 


2. <Műanyag égbolt (White Plastik Sky)> / Tibor Bánóczki, Sarolta Szabó / Encounters / 헝가리, 슬로바키아 2023

(2월 18일 21:30 Cubix 9)


사진출처 : 베를린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두 번째 영화는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향한 알렉산더 플라츠에 있는 Cubix라는 대형 영화관에서 보았다. 경쟁부문인 Encounters에 포함된 헝가리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근미래를 다룬 SF애니메이션이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따로 애니메이션 부문을 나누지 않고 경쟁작에 포함시켜서, 이전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황금곰 상을 받은 적도 있었고, 이번에도 메인경쟁인 Wettbewerb에 중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 편씩 포함되기도 했다. 


영화이야기에 앞서서, Cubix는 관이 무려 9개나 되는 (독일 기준) 4층 짜리 매우 큰 영화관이었고, 관마다 크기도 컸다. 무엇보다도 신기했던 것은 리클라이머로 된 좌석이 있었다는 것.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상영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서 거의 누운 자세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허리는 푹신한 것보단 딱딱한 게 좋았고 결국 영화가 끝날 때쯤엔 오히려 허리가 더 아파져서 이후 Cubix에서 영화를 볼 땐 그냥 일반좌석에 앉았다...



영화에 대한 평 : 신선한 소재였지만 그에 비해 서사는 지루했던 것 같다. 어떠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미래 도시에서, 주인공의 특별한 사연이 생긴다. 조력자가 도와주고 새로운 희망을 품지만 이는 거짓이었고, 결국 대체재의 발견 (원래의 시스템을 이용하는)으로 결말이 이루어졌다. 

2123년의 부다페스트가 배경인 이 영화는, 인류를 제외한 모든 동식물종이 전멸하는 바람에, 사람이 50세가 되면 인체공장(?)으로 보내져서 식물화를 통해 양분을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도시 외곽에 '클럽 49'라는 클럽이 있기도 했고, 사람들은 되도록 빨리 아기를 가지고 싶어 한다. (늦게 낳으면 그만큼 같이 보낼 시간이 적기 때문) 사람이 나무로 된다는 설정은 마치 동충하초를 떠올리기도 해서 재밌었다. 나뭇잎에 그들의 지문이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결국 두 주인공은 스스로 나무가 되는 결론을 택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들이 희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서의 두 번째 삶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방법이 그 둘에서만 시작되고(실현이 잘 되는지는 알 수 없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퍼지는 것은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본 뒤 우연히 나무의 나이에 대한 기사도 접할 수 있었는데, 나무는 보통 백 년은 거뜬히 살고 세계 곳곳에는 천 년 이상된 것도 많다고 한다. 최고령은 8만 년 된 것도 있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입장에서) 50년이 넘은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그냥 적당히 흡수하기 때문에 벌목하여 사용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감독이 이것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설정과 정 반대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나만의 영화제 첫째 날은 이렇게 끝났다. (그 당시에는) 앞으로의 일정이 얼마나 힘들지 예상하지 못했다. ENDE


*앞으로도 영화제 리뷰가 계속될 예정입니다. 글마다 영화 3~4개를 다루고 싶은데, 할 말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조절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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