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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08. 2023

글을 읽을 때 우리 눈은 무슨 일을 할까요?

Eye Movement in Reading.

 

‘글을 읽는다(read)’는 표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로 ‘소리 내어 읽기(read aloud)’ 혹은 ’음독(音讀)‘이란 의미가 있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아이들이 많이 하는 읽기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눈으로 읽기(read silently)’ 혹은 ’묵독(默讀)‘입니다. 이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는다고 할 때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묵독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읽기를 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소리 내어 ‘읽기’를 하였습니다. 책은 귀하고 비쌌고 문자는 소수 고위층의 전유물이었음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잘들 아시겠지만,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이렇게 읊는 게 아주 일반적인 읽기였습니다. 500여 년 전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개발하고 책을 보급하며 대중의 문해력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겨우 묵독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종이책 혹은 모니터나 스크린을 통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건 획기적인 문명 발달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인간의 눈은 사실 읽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목의 성대와 입과 혀 모양은 인간이 말할 때 미묘한 변화까지 발음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능하거든요. 음성언어(spoken language)는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고 인간이 진화를 겪을 때 필요한 기능으로 여겨졌을진대, 문자언어(written language)는 인간의 진화에 반영되기에는 너무 짧은 역사를 가졌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유창하게 글을 읽는다는 건 뭐 거의 기적 같은 일인 겁니다. 아. 물론 인간의 조음기관(articulator) 발달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긴 합니다. 우선 이런 형태로 진화를 해서 현재와 같은 정밀한 발음이 가능해진 건지, 이런 정밀한 발음을 하기 위해서 진화한 건지에 대해서요.


지금부터는 글을 읽을 때 우리 눈이 어떤 분투를 하는지 짧고 얕게 살펴보겠다. 백여 년 전까지 시각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눈으로 사물을 볼 때, 눈동자가 사방으로 움직이는 동안 끊임없이 시각정보가 입력된다 믿어왔습니다. 읽기를 연구하는 학자들 역시 당연히 이런 관점에서 눈이 부드럽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나타나는 단어들의 정보를 흡수하고 문장을 이해한다 여겼습니다. 그러나 1879년 Javal이란 프랑스 학자가 인간이 글을 읽으며 눈동자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점프하고 멈추고 다시 점프하고 멈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눈동자가 멈춘 그 짧은 순간에 인간은 정보를 흡수하고 짧게 움직이는 동안에는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렸죠. 그리고 그는 이 짧은 움직임을 saccade라 이름 지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옆에 누군가 있으면 책을 하나 꺼내 읽어보라고 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그녀가 책을 읽을 때 아주 가까이서 눈을 관찰해 보세요. 눈동자가 부드럽게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에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멈췄다 이동했다를 반복하는 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뇌의 인지체계가 이런 안구의 흔들림과 멈춤이 주는 격렬함을 상쇄, 또는 소거하기 때문에 우리는 눈이 부드럽게 움직인다고 인지하는 것일 뿐이죠.

 

글을 읽을 때 미세한 안구의 움직임을 세 가지로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고정(fixation): 눈동자가 멈추고 시각정보가 입력됩니다.
전방단속운동(forward saccade): 우리말과 영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기 때문에 눈동자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이동합니다. 그러나 페이지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한 문장을 내려와 다시 가장 왼쪽으로 눈동자가 움직이겠죠? 아참. 아랍어와 같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언어는 반대로 눈이 이동합니다.
후방단속운동(backward saccade):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의 이동을 말합니다. 보통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는 글을 잘 이해 못 하는 경우 뒤로 돌아가 다시 읽습니다. 두 번째는 전방단속운동에 실수가 있어 아주 조금-1, 2단어 정도- 뒤로 가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 경우를 다른 말로 회귀(regression)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즉, 서툴게 묘사하자면 우리 눈은 단어와 단어 사이를 멈추고 점프하고 멈추고 점프하며 의미를 이해하고 글을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혹은 자주 거꾸로 이동하기도 하고요. 영어 단어를 기준으로 하면 한번 눈동자가 고정되었을 때 대략 왼쪽으로 3~4개의 알파벳, 오른쪽으로 7~8개의 알파벳 정도를 정확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흐릿하게 그 주변 알파벳의 실루엣을 볼 수 있어서, 특히 읽기에 유창한 사람들은 단어와 단어 사이를 좀 더 길게 건너뛰며 더 빨리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이런 사람들은 단어를 읽으며 다음에 올만한 단어나 내용을 좀 더 정확히 예측하고 추론할 수도 있습니다.


영어교육학을 전공하신 분들에게 아주 익숙하겠지만 과거에 글을 읽는 방법에 관해 대립하는 두 가지 가설이 있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상향식 이해(bottom-up processing)로 철자-형태소-단어-구-문장 순서로 하나씩 하나씩 글을 읽고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라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대표적으로 Simple View of Reading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철자-단어를 이해하는 decoding과 말 이해(listening comprehension)만 있으면 글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 읽기 방식은 하향식 이해(top-down processing) 혹은, 스키마(schema) 이론이라고 불리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머릿속에 스키마라 불리는 어떤 주제에 관한 사람의 지식 체계, 혹은 틀이 있고 사람들은 글을 읽으며 자신의 장기 기억 속에 있던 이 스키마를 꺼내 들고 글을 이해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이런 스키마가 더 풍부하고 정교한 이가 글을 더 잘 이해한다고 합니다. 두 대립하는 이론에 관해선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룰 계획임으로 여기선 이 정도로 마치고자 합니다.


여하튼, 글을 읽을 때 사람의 눈이 움직이는 방식을 보자면 두 읽기 이론 중 어떤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나요? 1980년대 이후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게 된 주장은 인간의 글 읽기의 처음 과정은 철자-단어-문장 이런 식의 순수한 상향식 방식입니다. 다만, 이런 문자와 단어들이 우리 머릿속에 입력이 되자마자 머릿속에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과 결합하며 글을 더 깊이, 혹은 풍성하게 이해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위에서 간단히 설명한 두 이론이 어느 정도 타협을 이룬 듯합니다.


물론, 사진처럼 현상을 기억(photographic memory)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눈을 대각선으로 훑으며 글을 읽는 속독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은 이들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혹은 훈련으로 이런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는 글은 아닙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들께 과학적으로 증명된 가장 일반적이자 설득력 있는 읽기는 단어와 단어를 눈으로 꼼꼼하게 찍어나가면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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