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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22. 2023

까먹는 자신에게 관대하라.

영어 단어 암기의 마음가짐.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거의 모두 사람들은 단어 암기에 대한 고민은 한두 번씩 해 봤을 것입니다. 아픈 손을 털면서 모르는 단어로 빈 종이를 빡빡하게 채우고, 단어와 뜻이 적힌 긴 리스트를 보고 또 보았지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잘 넘어가지도 않는 얇은 종이 사전을 ‘샤락, 샤락’ 넘기며 단어를 찾기도 하고 어떤 때엔 글에 모르는 단어가 많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하나도 안 된 적도 있을 거예요. 한숨 푹푹 쉬면서요. 외워도 외워도 모르는 단어는 끝이 없고, 특히 분명 봤던 단어인데 뜻이 생각 안 날 때는 정말 화가 나서 다 때려치우고 싶었을 겁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라 왜 연구를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연구에서 드러난 외국어 학습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독립변수는 '어휘'와 '문법'입니다-여기서 말하는 '문법'이란 '명사,' 'to부정사,’ ‘가정법’ 같은 용어나 공식 같은 것을 잘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머릿속에 영어 문법과 구조에 관한 암묵적인 지식(tacit knowledge, 혹은 implicit knowledge)을 뜻합니다-. 영어교육학에서 배경지식이라던가 추론능력(inferencing), 사회문화적 환경, 동기, 협동학습 같은 요소가 외국어 학습에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누가 뭐래도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영어 단어를 공부해야 할까요? 우선 단어를 학습하는 방식은 명백한 학습(explicit learning)과 암시적 학습(implicit learning)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명백한 학습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휘 자체에 초점을 맞춘 학습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어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써보기도 하고, 발음하기도 하고, 강의도 듣고, 예문도 읽고 등등. 반면에 암시적 학습은 글을 읽거나 대화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어휘의 뜻이나 쓰임에 대해 알게 되는 학습법입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명백한 학습이 훨씬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암시적 학습은 단어가 어떤 다른 단어와 함께 쓰이는지, 문장에서 어느 위치에 쓰이는지, 어떤 뉘앙스로 쓰이는지 등 맥락과 쓰임을 배울 수 있게 하므로 역시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분명한 점은 어떤 방식으로 어휘를 학습하든지 간에 우리는 몰랐던 단어에 대해 깨달아야(noticing 혹은 awareness)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휘 자체에 대한 공부도 하여 머릿속에 단어 수(lexicon)를 늘리면서 동시에 책을 읽거나 대화를 들으며 암시적으로도 학습을 해나가야 합니다. 네. 맞습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어휘가 늡니다.


위에서 언급한 단어의 맥락이란 측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단어 지식은 폭(breadth)과 깊이(depth)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폭이란 순수하게 한 개인이 알고 있는 단어의 개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폭이 넓으면 당연히 좋겠죠? 한 개인이 듣거나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수동적 어휘(passive vocabulary)는 그/그녀가 직접 말하거나 쓰면서 사용할 수 있는 능동적 어휘(active vocabulary)보다 항상 큽니다. 그러므로 수동적 어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공부한 어휘를 사용하면서 능동적 어휘의 범위도 키워야 합니다.


깊이란 우리가 어떤 단어를 얼마큼 깊이 알고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즉, 어휘의 질적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우리가 look이란 단어를 안다고 한다면, 그 뜻과 철자, 발음을 아는 것이 가장 기본이겠죠? 그러나 이 외에도 look이 ‘동사,‘ 그중에서도 자동사(intransitive verb)이며 문맥에 따라 ‘보다’라는 뜻일 수도 있고 ‘보이다’일 수도 있고, 때로는 take a look around 같은 표현에선 ‘명사‘로도 쓰인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구동사(phrasal verb)로써 뒤에 at, after, into, out, up to, down on 등과 함께 쓰일 때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헥헥. 힘듭니다. 또, look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see나 watch, view, stare, gaze, glimpse, glare 등등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알면 더 좋겠죠? 이 외에도 어원이나 접사와 파생어 같은 이야기까지 확장하게 되면, 네. 끝이 없겠죠.


왜 이렇게 부담되는 이야기를 하며 사람 기를 죽이냐고 여기실 수도 있지만 사실 어휘 학습과 관련된 이론적은 건 영어교육을 전공한 저 같은 사람에게 중요할 따름이지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저만큼이나 오래 영어 단어를 암기해 오신 여러분들도 분명히, 혹은 어렴풋이 알고 계시는 점이 아마 더욱 중요할 듯합니다. 바로 마음가짐, 태도의 문제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암시적 학습법과 관련하여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인용이 아니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독서를 하며 한 단어를 암기하려면 평균 6번에서 7번 그 단어를 만나야 한다.“ 즉, 우리는 계속 그 단어를 학습하고 잊고 학습하고 잊고를 6~7번 반복해야 그 단어를 알게 된다는 겁니다. 저 역시 한때는 저의 멍청한 머리를 욕하며 꿀밤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잊어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진 기억(picture memory)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나 암기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아닌 한, 우리는 단어를 까먹고 또 까먹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그럴 때마다 좌절을 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어는 더욱 멀어지고, 이런 악순환은 반복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까먹는 자신에 관대하라.

 이 말은 영어 단어 암기를 힘겨워하는 여러분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달려 들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새로운 단어를 환영하며 맞이하세요. 때로 분명 공부했는데 뜻이 기억 안나는 단어를 보면 ‘어, 넌 분명 만났던 녀석인데?’라며 가볍게 반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언젠간 그 단어도 마음의 문을 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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