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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Sep 08. 2023

아빠가 사라졌다 (6)


이 글은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관련 공문을 읽으며 밥을 다 먹고 식탁을 정리했다. 아빠가 사라진 일로 부산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사건 자체의 자극적임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사안 자료를 보통 때 보다 꼼꼼히 읽으며 되새겨 보았다.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방금 먹은 밥과 스크램블드 에그, 반찬이 위에서 이상하게 뒤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피해를 본 체육교사와 강사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함. 그 학급의 다른 학생들이 느낀 공포와 정신적 피해를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력함. 학생이 칼을 들고 위협했다는 진술을 들었음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간단히 경고만 하고 가버린 경찰에 대한 분노 같은 감정이. 특히나 학생의 반사회적이고 공감능력이 결여된 행동이 두려웠고 동시에 가여웠다. 자신이 가한 가해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 없는 듯한 태도. 오히려 어린 학생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자신을 제압한 교감과 부장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교활함. 그러면서도 수많은 증거와 상황이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는 역학을 판단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순수함 같은.


교권보호위원회 회의록은 회의 중에 오갔던 대화 전부를 전사하지 않고 간단하게 개조식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다만 교무부장이 이야기했던, 학생이 아버지를 폭행했다는 내용은 회의록 양식의 건조함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 더 풍성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지도부 교사가 실제 일어난 경악스러운 일을 목격하며 받은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일 테니. 위원회 회의 중에 한 위원이 학생의 아버지에게 장합석이 반성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이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앞에 있는 책상을 두 손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아버지에게 큰소리로 욕을 하며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두 팔로 머리를 감쌌고 장합석의 구타는 두, 세 번 더 이어졌다.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생활지도부장과 생활지도부 교사가 일어나 학생을 제지하고 나서야 소란은 겨우 정리되었다. 장합석이 아버지의 그 대답에 반응한 이유는 누구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아마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아 그런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 결과 통보서에서 장합석은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고 동시에 심리치료를 권한다는 점이 추가되어 있었다.


학교교권보호위원회 결과 통보서

본 위원회는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 제6조에 의거,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 조치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학교교권보호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사항을 성실히 이행해 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1. 일시 : 20XX. 08. 22. 월 15:00

2. 장소 : 우리 학교 본관 1층 운영위원회실

3. 참석자

- 피해교원 : 조00(체육교사), 최00(창체강사) 병가로 불참

- 가해자 : 장합석(학생)/장현진(학부모)

- 위원 : 10명 중 9명 참석

4. 조치결과

가. 피해교원 : 사안 발생 직후 교권보호업무 담당자(교감)와 면담, 조퇴 및 병원 진료

사안 발생 익일부터 병가 처리 및 심신 회복을 위한 치료 실시

나. 가해자 : 사건 발생 직후 격리 및 학부모 인계

긴급등교중지 조치

교원지위법 개정(안) 제18조 1항 6호 강제전학 처분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 권고

20XX년 8월 23일

00중학교 교권보호위원회 위원장(인)


너무 몰입해서 읽고 있었나 보다. 그녀는 현관문 벨소리에 말 그대로 화들짝 놀라버렸다. 벨소리가 그치고 문 밖에서


[택배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종이 상자를 바닥에 ‘툭’ 놓고 ‘쓱’ 살짝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엄마나 아빠가 뭔가 주문했나 보다. 놀랐던 심장의 고동소리가 잦아들자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 옆에는 꽤 큰 종이 상자 하나와 그보다 작은 상자 한 개가 쌓여 있었다. 배송장에는 아빠의 이름과 그녀의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상자를 들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보통 아빠는 택배 주문을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야채나 식품을 주문할 때 아빠 이름으로 배달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녀의 가족은 아빠 이름의 택배는 바로 뜯어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특히 냉동식품의 경우에는 빨리 냉동실에 옮겨야 해서 더욱 그러했고. 그녀는 별생각 없이 커터칼을 가져와 테이프를 자르고 가장 큰 상자를 열었다. 어? 식품이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은 물건들이었다. 밝은 갈색의 등산화와 깔창 한 세트. 그것이 등산화가 아니라 무거운 물건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앞코에 철이 박혀 있는 안전화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 한 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투박한 검은 더플백도 있었다. 작은 상자에는 형광빛 녹색으로 세 줄이 쳐져있는 각반. 붉게 코팅된 목장갑 여러 묶음, 방진마스크 두 개, 팔토시 같은 것들이 있었다. 대략 공사판 인부들이 쓰는 물건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엄마가 도대체 이런 걸 왜 주문한 거지? 아니면 정말 아빠가 주문한 것인가? 그녀는 혹시 몰라 다시 아빠 노트북에서 PC버전 SNS를 실행하고 카드 결제 내역이 있는 채팅방을 열었다. 온라인 구매 사이트에서 한 78,300원의 결제 내역. 그제 저녁. 그녀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어 아빠가 주문한 인터넷 구매 사이트를 검색했다. 다행히 아빠의 아이디로 자동로그인이 되어 있었다. 주문 내역 창으로 들어가 이틀 전에 같은 금액의 구매 정보를 확인하였다. 배송지는 그녀의 집. 아빠가 이런 물건을 왜 주문한 거지? 아빠가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나?


그녀는 스마트폰에서 엄마 번호를 검색하고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몇 번의 통화음이 울린 후에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어. 아직 아빠 학교니?]

“아니, 집에 와서 밥 먹었어. 교무부장님이 태워주셨거든.”

[그래, 잘했다. 아직 아빠 연락은 없네. 혹시 뭐 알아봤니?]

“엄마, 진순 아저씨 기억나?”

[아빠 친한 친구잖아. 왜?]

“아니, 아빠 노트북으로 SNS 대화 훑어봤거든. 어제 동창회 진순 아저씨랑 같이 갔나 봐.”

[아, 그래? 혹시 그분 번호 아니? 전화 한 번 해봐야겠다.]

“내가 문자 보냈어. 아직 답장은 없고.”

[다행이네. 뭔가 큰일이 있나 걱정했는데.]

“아, 그리고 방금 아빠 택배 왔는데 좀 이상해.”

[그래? 뭐가 왔는데?]

“등산화, 각반, 마스크 뭐 이런 거 샀어. 그제 주문 했는데 혹시 아빠한테 무슨 얘기 못 들었어?”

[흐음. 들은 얘기는 없는데.]


엄마도 모르는 뭔가가 있나 보다. 아직 진순 아저씨에게도 연락이 없다. 아빠는 여전히 연락이 안 닿는다. 아빠 노트북을 더 훑어봐야 했지만 직접 움직여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주 할머니 댁에 뭔가 있지 않을까?


“큰아빠한테는 뭐 다른 연락 없었어?”

[응. 네가 한 번 연락해볼래?]

“알았어. 어제 아빠가 미주가서 무슨 앨범 찾았다고 했지?”

[중학교 졸업앨범 이던가?]

“응. 나 솔직히 지금 미주 한 번 가볼까 고민 중이야.”

[거길 왜 가. 큰아빠랑 통화하면 되지.]

“아냐. 아빠 동창회가 거기 중학교에서 있었으니까 학교도 직접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초대장에 동창회장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그래. 그러면 조심해서 다녀와.]

“응. KTX 타면 금방이야. 미주역에 큰아빠 나와 달라고 부탁할게.”

[그래. 엄마는 외할머니랑 더 있다가 저녁쯤에 집에 갈 거야. 혹시 아빠 연락받거나 하면 바로 알려줘.]

“응. 조심히 올라와.”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그녀는 큰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으로 설정해서 거친 전화 연결음이 ‘뚜루루루’ 꽤 크게 들렸다. 기차표 예매 앱을 실행하여 미주행 기차표 시간표를 알아보는 중에 큰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그래. 하림이가?]

“큰아빠, 안녕하세요.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해요.”

[괘안아. 아빠 땜에 그러는거가? 아직 연락 없나?]

“네. 아빠가 어제 미주가서 동창회 갔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 그 초대장 보고 갔나보네?]

“네. 친구분이랑 간 거 같아요. 저 그래서 오늘 미주 가려고 해요.”


그녀는 큰아빠와 통화하면서 KTX 기차표를 예매했다. 집에서 서울역까지는 대략 40분 정도. 시계는 11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넉넉잡아 12시 좀 이후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12시 22분 기차표 자리가 있어 큰아빠와 통화를 하면서 바로 예매를 했다.


[말라 오는데. 내가 한 번 알아볼게, 그냥 서울에 있어라.]

“아, 벌써 표 예매 했어요. 직접 가는 게 마음이 좀 편할 거 같아요.”

[별일 없을 긴데. 그래도 분명히 오겠제? 우리 조카 고집 있으니까. 몇 시 기찬데? 큰아빠가 마중 나갈게.]

"고마워요, 큰아빠. 여기서 12시 20분쯤 타면 미주역에 2시쯤 도착해요.”


엄마도, 큰아빠도 그녀가 미주를 내려간다는 이야기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보통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단언할 때에는 마음을 쉽사리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완강한 태도와 말투를 엄마도, 큰아빠도 잘 알고 있었다.


큰 짐은 필요치 않았다. 그녀는 대학 때 매고 다녔던 백팩을 찾았다. 노트북을 담을 수 있고, 그러고도 꽤나 공간이 있는 가방이었다. 아빠의 노트북을 켠 상태로 접어 가방에 넣었다. 세면도구, 여분의 속옷과 양말, 간단한 화장품, 지갑, 스마트폰 충전기 등을 챙겼다. 웬만하면 오늘 올라올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미주 할머니 댁에서 묵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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