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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Aug 30. 2023

아빠가 사라졌다 (1)

소설


이 글은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아빠가 사라졌다.


아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전날 아침에도 언제나처럼 그녀에게


'시내에서 너무 속도를 내지 마라',

'차선 변경 할 땐 깜빡이 켜고, 사이드미러 보고, 살짝 가속해라,'

'운전 중에 핸드폰 보지 마라, '


따위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본인은 딸을 걱정하는 사려 깊음을 듬뿍 실은 목소리라 여겼으리라. 그 진한 설득력이 딸의 안전을 담보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수십 번, 수백 번 듣는다면 누구나 잔소리로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당부에 '네'라고 꼬박꼬박 대답하였다. 아빠는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본인의 주장이나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못할 땐 종종 본인이 무시당한다 여겼다. 그래서 쉽게 화내고 오래 삐쳤다. 그녀는 아빠 마음을 상하게 하길 원치 않았다.


어쨌든 아빠는 전날 아침까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저녁에 아빠는


[오늘 못 들어가.]


라는 문자를 그녀에게 보냈다. 그리고 정말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기는 밤새 꺼져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아빠는 아무 이유 없이 외박을 한 적이 없었다. 출장이나 본가의 일로 외박을 할 때엔 항상 가족에게 미리 알렸고 미안해했다. 특히 문자를 보낼 때는 직접 대화하지 않아 생길지도 모르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좀 더 다정하려 했다. 때로는 이모티콘을 보내기도 하고, 마침표 대신 물결표시나 세미콜론 등의 표현도 사용했다. 그런 아빠가 아무 이유도 붙이지 않고 집에 못 들어온다는 건조한 문자를 보내다니. 그녀는 마른 귤껍질처럼 딱딱하고 거친 불안감이 가슴속에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근심걱정이 많은 아빠를 닮아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을 청했다.


아빠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러신 걸 거야. 나와 엄마를 두고 떠나지는 않을 거야. 내일 아침이면 돌아올 거야. 외동으로 자랐지만 서툰 부모에게 위로를 청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녀가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었다. '괜찮다'는 정답을 내놓은 후에 주어진 정보를 엮어 풀이를 만들고 그걸 믿어버렸다. 그게 아무리 말도 안 되고 비논리적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해서. 그렇지 않으면 항상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차올라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찰랑였고 그녀는 그 기분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스마트폰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그녀와 엄마가 보낸 SNS문자도 답하지 않았다. 마른 귤껍질 같던 불안감은 먹다 버린 끈적한 참외조각처럼 커졌다.


괜히 호들갑 떤다거나 과잉불안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빠에 대한 걱정이 컸다. 가족이란 그런 존재라고 그녀는 생각했고 엄마에게 실종신고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엄마가 경찰에 전화를 하는 동안 그녀는 물끄러미 아빠의 방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기침대에서 나와 퀸사이즈 안방 침대에서 잠을 자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빠는 그녀와 엄마에게 안방을 양보하였다. 그리고 아빠의 책, 엄마의 업라이트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어린 시절 그녀의 옷과 물건, 김치냉장고 등이 쌓여있는, 당시에는 거의 창고로 쓰이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집으로, 그리고 지금 집에 정착하면서도 그 작은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던 패턴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가 중학생이 되어 자신의 방을 갖게 된 지금 집에서도 아빠의 방은 그때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싱글사이즈 침대가 추가되었을 뿐.


6평 남짓한 직사각형의 방문은 현관 바로 옆에 있었다. 방의 네 면 중에 아파트 복도 쪽 벽에는 꽤 큰 창문이 있었다. 다행히도 볕이 잘 들어왔지만 아빠는 청소할 때를 제외하곤 그 창문을 거의 열지 않았다. 창문 맞은편 벽에는 3열 5층짜리 책장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곳에는 집안의 거의 모든 책들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었다. 아빠가 결혼 전부터 모았다가 처분하지 못한 책과 엄마가 공부하던 음악전공서적과 공무원시험책, 유아기부터 그녀가 보던 다양한 그림책, 학창 시절 문제집과 세계문학전집이나 다 쓴 노트 같은. 엄마를 제외하고 그녀와 아빠는 따로 일기를 쓰지 않지만 책장에 있는 책들은 일기처럼 그 가족의 생활과 취향, 역사 혹은 문화를 비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책장 위에는 두루마리 휴지 박스와 안 쓰는 가방, 안 입는 옷가지들이 담긴 봉지 등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방문 옆에는 꽤나 큰 김치냉장고가 있었고 주로 옷걸이로 쓰이는 낡은 조립식 철봉이 맞은편 책장에 앙상한 그림자를 만들며 서 있었다. 벽과 철봉 사이에는 다리가 접히는 짙은 갈색의 좌식 상도 하나 세워져 있었다. 방의 가장 구석에는 이불이 정리되지 않은 싱글사이즈 침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교복을 입은 이후에 언제 이 방을 들여다봤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언제나 아빠가 있었다. 아니면 적어도 아빠가 여기서 우리와 함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빠가 없다는 점, 우리와 함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점이 그때의 그 방과 오늘의 그 방이 다른 지점이었다. 난이도가 높은 틀린 그림 찾기처럼 그 방에서 사라진 아빠는 그녀로서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퀴즈였다. 그녀가 아는 한 아빠는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연락이 되지 않는 그 순간에도 그 믿음은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아빠 방을 보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아빠를 알고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전부일까?


그녀는 아빠가 서른을 지날 때 태어났고 그 후 지금까지 28년간 함께 살고 있었다. 조각조각 남겨진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빠는 천장만큼 높은 거인이었다. 세계가 넓어지고 그녀가 현실을 좀 더 선명히 볼 수 있게 되면서 퇴근 후 아빠의 축 처진 어깨나 숨죽인 한숨 같은 것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빠가 오랫동안 몸 담고 있던 교직에 뛰어들면서 이해의 정도는 더 짙어졌다. 아빠 역시 나약한 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러나 인간의 공감은 결코 넘을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 피부로 둘러싸인 물리적 경계와 각자 다르게 축적된 총체적 경험이 만드는 심리적 경계는 타인을 결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도록 높은 벽을 세운다. 설령 오랫동안 함께한 사이거나 피를 나눈 가족 간에도. 그녀는 누군가를 위로할 때 “이해한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그러나 그 말을 내뱉을 때는 언제나 옆구리 즈음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희미하게 느꼈다. 한 개인은 결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아니, ‘이해한다(comprehend)’는 행위는 애초에 제대로 정의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옆구리에 있던 그 위화감은 아빠 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의 등을 타고 올라 어깨를 두드리며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정말 아빠는 우리를 떠나지 않을까?


“성인 실종은 강제수사 못한다는데. 위치추적 이런 것도 쉽지 않은 거 같고. 어떡해야 되냐, 하림아?”


통화를 마친 엄마가 폰을 식탁에 탁 내려놓고 말했다. 엄마는 남들이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는 엄마의 불안을, 얼굴에 옅게 드리운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감정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의 가벼운 표정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다. 정말 내가 엄마도 잘 알고 있는 걸까?


“우선은… 아빠 학교에 연락해봐야 되지 않을까? 혹시 미주 할머니댁에 가신 건 아닐까?”

“그래. 내가 우선 미주 큰아빠한테 연락해 볼 테니까 넌 학교에 한 번 연락해 봐.”

“아, 오늘 토요일이라서 학교는 연락 안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빠 학교 교무부장님한테 연락해 볼게.”


엄마는 큰아빠, 즉 아빠의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현재 아빠가 교감으로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교무부장에게 연락했다. 그녀의 진로는 재즈피아노를 전공한 엄마와 영어교사 출신인 아빠 양쪽의 영향이 적절히 뒤섞여 음악교사로 결정되었다. 4년 전 운 좋게 두 번의 시도 만에 임용시험을 통과한 후 아빠와 같은 지원청 내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지금 아빠 학교의 교무부장과는 처음 2년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었다. 그 인연으로 교무부장이 아빠 학교로 옮긴 후에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교무부장은 주말 아침이었지만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아. 부장님 안녕하세요. 저 명하림이에요. 주말 아침부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어. 그래. 오랜만이야, 하림샘. 괜찮아,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아. 혹시 어제 아빠 퇴근하실 때 어디 간다는 말씀 없으셨나요?”

[어제? 어제는 교감 선생님 종일 연가 쓰셨는데? 학교 안 나오셨어.]

“네? 연가 쓰셨다고요?”

[얘기 안 하셨구나.  이상하네. 고향에 간다고 하신 거 같은데?]

“고향요?”

[응. 고향에 가야 될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제.]


그녀는 꽤나 당황해서 잠깐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따로 말씀 안 하셔서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장님. 제가 나중에 또 연락드릴게요.”

[혹시 집에 안 들어오신 거니?]

“아. 네. 아직 연락이 안 돼서요.”

[흐음… 그럴 양반이 아닌데…]

“감사합니다, 부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좀 더 있으면 연락 주시겠죠.”

[응. 그래. 또 연락해.]


겨우겨우 짐짓 별일 아닌 척 그녀는 교무부장과 통화를 마쳤다. 아빠는 집에 알리지 않고 연가를 썼다. 어제저녁에 못 들어온다는 짧은 문자만 남기고. 참외조각 같던 불안감은 이제는 속을 다 파먹어 날파리가 꼬이는 퍼런 수박껍질만큼 커졌다. 마침 큰아빠와 통화를 끝낸 엄마가 안방에서 나왔다.


“어제 연가 썼대. 고향 간다고 하고.”

“안 그래도 큰아빠가 어제 미주 집에 왔다고 그러시네. 이상하게 평일 아침 일찍 와서 중학교 졸업앨범을 찾았다는데. 그리고 좀 있다 그냥 점심 먹고 갔대.”

“아. 그럼 거기서 주무신 거네. 핸드폰은 왜 꺼놨대?”

“아니, 아니. 어제 점심 먹고 집에 좀 있다 바로 올라갔대.”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다 해파리 촉수를 스친 것처럼 순간 말을 멈췄다. 아빠는 도대체 왜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차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할머니댁에 갔다가 점심만 먹고 올라왔을까? 왜 그런 기이한 행동을 한 걸까? 돌이켜보면 어제 아침 아빠는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했었다. 그럼 그 길로 바로 미주로 갔었구나. 그녀와는 다르게 아빠는 운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도로 위에서 다른 차와의 관계 맺음을. 추월, 차선변경, 신호대기. 정체 중인 도로 위에서 운전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출근시간 만원 지하철에서 승객이 받는 스트레스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연구가 있다고 아빠는 자주 강조했다. 그런 아빠가 그렇게 일찍 집을 나가서 그렇게 먼 거리를 운전해서 가고 잠깐 머물다 다시 운전해서 떠났다니.


“큰아빠한테 아빠 미주 왜 가셨는지 물어봤어?”

“그냥. 큰아빠도 이상해서 캐물었는데. 뭐 바람 쐬러 왔다고 그랬다네? 제대로 대답을 안 하더래.”

“아. 아빠 왜 그래, 연락도 안되고. 진짜 이상해. 뭔 바람 쐬어야, 말도 없이.”


넘실넘실 아슬아슬하게 고여있던 불안, 걱정, 짜증 같은 부정적 감정이 어느새 흘러넘쳤다. 그녀는 엄마에게 투덜 댔다. 엄마는 항상 묵묵히 그녀의 투덜거림을 받아 주었다. 본인도 흔들리고 초조할 텐데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 어찌 보면 세상에 초연한 듯했고, 다르게 보면 낙담한 듯도 했다. 엄마는 ‘그냥’이라는 대답을 자주 했다. 외할머니와 무슨 통화를 했는지, 스마트폰으로 뭘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질문이 싫다거나 질문자가 싫다거나 대화를 하기 싫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귀찮음이나 무례함 또한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라는 추상적 매체를 이용해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때 오는 필연적인 거리감을 거부하는 몸부림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때때로 엄마 주위의 공기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듯했다. 그래도 서툴지만 엄마는 그녀를 묵묵히 위로해 주었고 그녀는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엄마는 시흥 갔다 올게. 아빠한테 계속 연락해봐야겠다. 넌 오늘은 집에 있어.”


시흥에 있는 요양원에는 외할머니가 계셨다. 최근 몇 년간 거의 매주 토요일은 부모님과 시흥을 갔었다. 외할머니는 몸이 불편했지만 언제나 그녀를 반기셨다.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안쓰러움이었는지 엄마는 더 열심히 외할머니를 찾았고 자주 연락했다.


“응. 차 가져갈 거지? 운전 천천히 조심히 해.”

“밥 잘 챙겨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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