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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Aug 31. 2023

아빠가 사라졌다 (2)


이 글은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엄마는 금방 나갔다. 집은 조용했다. 아니다. 꽤나 많은 소리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부엌 냉장고와 아빠 방에 있는 김치 냉장고는 주기적으로 ‘고오오’ 하는 소리를 내며 냉매를 기화했다. 거실과 안방에 있는 시계는 ‘쩍, 쩍, 쩍’ 바쁘게 초침을 채찍질하였다. 간혹 윗집에서는 변기 물 내리는 ‘우롸롸롸’ 소리와 ‘드등’하는 문 닫는 소리가. 그런 소음들이 뒤섞여 그녀를 복잡하게 했다. 밥은 먹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금요일에 종일 연가를 썼다는 말은 그 전날 이미 계획했다는 이야기다.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그렇다면 사라질 계획은 언제부터였을까? 순간 그녀는 아빠가 학교 교육행정시스템에 올린 연가 사유가 궁금해졌다. 분명 교무부장은 아빠 나이스 인증서 비밀번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바로 교무부장 연락처를 검색했다.


“아. 부장님. 자꾸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야. 혹시 교감샘 연락 왔니?]

“아. 아직 연락이 없어서요. 혹시 죄송하지만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혹시 학교 한 번 가보고 싶어서 그래?]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눈치 빠른 교무부장은 전화기 건너 그녀의 목소리가 입은 걱정과 불안을 손쉽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녀가 무엇을 부탁할지도 맞췄다.


“아. 그래도 되나요? 학교에 아빠 컴퓨터 좀 보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나도 그 생각했어. 어차피 나 오늘 보고할 게 있어서 학교에 가야 하거든. 나도 바로 출발할게.]

“정말 감사합니다, 부장님.”

[지금이… 8시 반이니까… 한 9시 반쯤 교문 앞에서 보자.]

“네. 좀 있다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빠 학교 책상에는 뭔가 흔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꽤나 논리적인 풀이로 ‘괜찮다’고 답한 듯하다. 그녀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집에서 아빠 학교에 가려면 두 하천을 건너야 했고 거리는 대략 5킬로미터 정도로 가까웠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꽤나 불편했다. 그녀는 출장차 아빠 학교에 여러 번 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험난한 코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파트 단지 옆 큰 도로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간다. 운이 좋으면 전철역 바로 앞 정류장에 서는 버스를 탈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버스에서 내려 역사까지 상당히 걸어야 한다. 놀라운 점은 이때부터다. 그 전철역은 도로 위에 약 4층 높이로 얹혀 있어 플랫폼까지 가려면 10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겨우 몸을 실은 전철은 지하로 깊숙이 내려간다. 두 역을 지나 전철, 아니 지하철에서 내리면 이번엔 지상으로 5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고작 두 정거장 가는 전철/지하철을 타고 내리기 위해 상당한 높이를 등반해야 한다. 마을버스를 타러 나가는 출구에는 다행히도 자비로운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마을버스로 두 정류장을 지나고 내리면 약 500미터 정도를 더 걸어가야 아빠의 학교가 나온다. 만약 이 학교에 배정받았다면 새벽 고행으로 이미 열반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녀는 지금 이런 농담을 음미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에게


[나 아빠 학교 가. 뭐 알아볼 게 있어.]


라고 문자를 보내고 지체 없이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간단히 행선지를 확인하고 택시기사는 말없이 차를 몰았다. 토요일 오전 시내로 향하는 도로는 한산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부산했다. 이미 한여름은 지났지만 아직 아침 햇살은 두텁게 도시에 내리쬐었다.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수는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지, 유전자에 새겨진 울창한 숲의 기억을 잊지 못한 것인지 녹색의 잎을 도로에 더욱 짙게 드리웠다. 달리는 택시의 창을 통해 때로는 빨리, 때로는 느리게 스쳐가는 거리와 건물과 사람들은 변속하는 시간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망막에 불투명한 무언가 씌워진 것처럼 창밖 풍경은 뿌옇고 흐릿했다. 참기 힘든 답답함에 그녀는 창문을 살짝 내리고 바람을 들였다. 차의 엔진음, 사람들의 목소리, 횡단보도 신호등의 ‘뚜루루루, 뚜루루루’ 파란불이 깜박이는 선명한 소리가 바람과 함께 갑자기 들어왔다. 연가 사유가 뭘까? 미주는 왜 갔다 온 걸까? 그녀는 생각했다. 살아있는 소리와 가로수의 그림자가 가벼운 손길로 그녀를 쓰다듬었고 작은 위로가 되었다. 곧 무언가 알 수 있을 거야. 괜찮을 거야.


택시가 학교 교문 앞에 도착할 때 교무부장의 차가 교문의 자바라대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녀는 택시에서 내려 교문을 지나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탈칵’ 차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교무부장이 주차한 차에서 내렸다.


“부장님. 주말에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야. 딱 맞춰 왔네, 하림샘.”

“아빠가 어제저녁부터 연락이 안 되어서요. 아빠 컴퓨터 좀 보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 걱정되겠다. 내가 교감샘 컴퓨터 비번 아니까 볼 수 있겠지. 교무실로 가서 얘기합시다.”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 억양이 섞인 교무부장의 말에 그녀는 조금 안심했다. 교무부장은 아빠의 고향인 미주와 가까운 부산 출신이었다.


교문에 서서 보면 중앙에는 체육관 옆면 벽이 있었다. 교문 왼쪽에는 작은 교직원용 주차장이 있었다. 교문 오른쪽은 순서대로 체육관과 별관, 본관 건물이 디귿자로 서 있었고 입구는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체육관은 붉은 벽돌색, 별관은 아래에서 그러데이션 되어 위로 짙어지는 파스텔 톤의 에메랄드빛 녹색, 본관도 그러데이션 된 보랏빛의 파란색. 아무런 맥락도, 의미도 없는 색의 조합이었다. 그 중간에는 하늘 위에서 보면 찌그러진 네모 모양의 흙운동장이 있었다. 건물이 없는 운동장의 나머지 한 면은 본관 정문으로 연결되는 보도블록 길이 있었다. 아빠가 근무하는 중학교는 뭔가 일그러져 있다고 그 보도블록 길을 걸어가며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교무부장을 따라 중앙 현관 계단을 올랐다. 학교 안은 고요했다. 복도 양쪽으로는 각각 학교 밖과 교실로 향해 창문이 길게 뚫려있었다. 바깥쪽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은 복도 반대쪽 구석까지 노랗게 빛의 공간을 만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무질서하게 부유하는 작은 먼지가 꼭 우주에 떠 있는 별들 같기도 했다. 학교 뒤편 하천의 뭉툭한 비린내, 학생들의 땀냄새, 화장실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 같은 것들이 뒤섞여 흐릿하지만 독특한 학교만의 냄새를 만들어 내었다. 복도 창문으로 드는 햇빛과 특유의 뿌연 냄새 같은 내밀한 것들은 학생이 없는 주말이었기에 도드라졌으리라. 학생이 있을 때의 학교와 학생이 없을 때의 학교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이는 그 소음과 침묵이 가져오는 큰 낙차로 인한 것. 그녀는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 초임 때였을 것이다. 공강시간 고요한 교무실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 쉬는 시간 종을 시작으로 저 멀리서부터 아주 작게 시작하여 점점 커지는 학생들의 북적거림에 몸서리쳤다. 악상 기호 크레셴도의 좋은 예시. 그 소리는 마치 저 멀리 해변의 끝에서 하얀 선으로 보이던 파도가 점점 가까이로 ‘쏴아아’ 밀려 들어와 마침내 덮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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