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2년 차 신참 교사의 자작곡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 교직 2년 차가 되었을 때 원치 않게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첫 해에 1학년 담임을 했던 나는 중3 아이들의 고등학교 입시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휩싸였다. 특히 그전 해 학생들이 워낙 험해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너무 경험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나쁜 학교가 떠넘긴 과도한 업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1년 농사를 망쳤고 담임 업무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만난 35명의 아이들은 천사 같았고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 내가 교직을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거 같다. 함께 근무했던 친한 분의 말인데, 교직 인생에 최소 한 번은 자신과 케미가 잘 맞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고 그 기억이 이 일을 버텨나가게 해 준다고 하였다. 아마 이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당시 조종례 시간에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하게 지냈다. 남자애들과는 농담 따먹기도 많이 하고 여자애들의 불평을 들어주기도 하였다. 몇몇 사고를 치는 아이들에게, 딱 한 번 있었던 학교폭력 때, 그리고 한 번 아이들의 다툼을 중재하며 가끔 화를 냈을 몇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큰 소리를 지른 기억이 없다. 아. 졸업하기 직전 깜짝 파티를 준비하며 내게 회장과 부회장이 싸운다고 하여 급하게 뒷문을 박차고 들어간 적은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케이크를 들고 파티를 열어주어 당황하고 민망했다.
기타와 드럼 연주를 좋아했고, 한동안 깔짝깔짝 미디 프로그램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다음 해 2월 졸업식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는지 노래까지 만들어 버렸다.
넥스트 3집에 있는 ‘Mama’란 곡처럼 처음엔 잔잔하게 읊듯이 노래하다 마지막에 기타 솔로를 집어넣어 감정을 폭파시키고 페이드아웃으로 여운을 남기는 구성으로 하였다. 하필 또 그때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기타 솔로를 만들면서는 이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는 건가 걱정스러웠다.
가사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서 따왔다. 그가 쓴 ‘Sixty Nine’을 소설로도, 영화로도 정말 재미있게 보고 읽었다. 특히, 와닿았던 건 소설 속 문구가 아니라 지은이의 말에 있는 유명한 그 말이었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그 해 수업을 할 때 내가 자주 쓰던 말이 ‘Anyway‘였다고 한다. 반 아이들이 말해줘 알게 되었는데, 체육대회 때 반티 앞에 그 문구를 넣었다. 두 표현을 영어로 만드니 그럴싸했다. “Anyway the only way to revenge is to live a happier life than them.“ 참고로 문법상 마지막 대명사는 them보다 they do 정도가 더 정확하긴 하지만 뭐 them이 더 어울린다.
작은 방구석에서 기타를 띵가띵가 치며 만든 곡이었다. 마지막 기타솔로와 배킹을 빼곤 전부 가상악기이다. 노래는… 아이폰으로 녹음한 것에 리버브나 딜레이 같은 효과를 좀 넣은 것이다. 가내수공업에 잡음 많은 아마추어 곡이지만 그래도 소중한 곡이다. 아쉽게도 그 해 졸업생들에게 들려주진 못했다. 다른 반 졸업생 중에 기타를 전공하던 녀석과 졸업 후에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어 이 곡을 들려주었고 그놈이 유튜브에 올렸다.
https://youtu.be/7oNb7-Lev4Q?si=oAuCpK5iSQz0rNAH
Verse 1
지친 어깨 위에 걸린 가방과
같은 무게의 인생을 진 너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그들의 강요에 숨죽인 채
고작 이 년 차 신참 교사를
밝은 미소로 맞이한 너
일 년 전 만난 너희들을
이젠 떠나보내야 하네
Verse 2
검은 반티와 응원의 체육대회
강렬한 햇살의 수련회와
졸업식 전날 깜짝 파티
너무 사랑스러웠던 모습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조종례
이제는 다시 못 올 추억들
1년 간 함께 했던 우리
이젠 이별해야만 하네
Anyway the only way to revenge is to live a happier life than them.
바로 떠오르지 않지만 당시 아이들 명렬표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기억이란 신기하다.
조용히 만화를 잘 그리고 공부를 상당히 잘했던 희동이.
졸업 후에 한두 번 찾아왔고 아이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웠던 보라.
무뚝뚝하고 둔하지만 오케스트라에서 트롬본을 잘 불었던 성훈이.
사고 많이 치고 졸업 후에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다 마주쳐 자기 허벅지 문신을 자랑하던 민순이.
거의 교과서 급 필기로 결국 전국구 자사고 진학한 준현이.
둥글둥글 큰 키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가진 착한 진원이.
희동이와 친하게 조용히, 그러나 뭔가 가끔 히죽히죽 웃었던 은지.
통통하고 목소리가 컸으며 리더십 있었던 정현이.
화장을 두텁게 하고 투덜이였지만 직접 만든 쿠션을 선물했든 인혜.
조그만 모습과 달리 꽤나 성깔이 있었던 윤미.
역시 꽤 성깔이 있는 인상이지만 속은 여렸던 미경이.
어우 사고뭉치에 학교 겁나 안 나왔지만 엄마와의 힘든 사이가 걱정이었던 서윤이.
남자처럼 숏컷에 항상 바지를 입고 시니컬함과 헐렁함을 동시에 지녔던 아현이.
약간 주걱턱에 발음이 독특했지만 공부에 욕심이 많았던 수현이.
중2 때 딴 학교와 패싸움을 한 전적이 있어 걱정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순했던 민승이.
성격 좋고 잘 생기고 인기 많았던 까무잡잡한 회장 호석이.
성실하고 조용히 공부 열심히 하고 나중에 나와 대학 동문이 된 부회장 우정이.
이모? 고모?와 함께 살며 약간 우울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밝게 잘 지냈던 영주.
졸업 후 1년도 안 지나 길가 분식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내가 못 알아봐 미안했던 우영이.
샌님같이 생겼지만 착하고 디자인을 좋아했던 우찬이.
예쁘고 키가 컸는데 본인은 키 큰 게 콤플렉스라 항상 구부정하게 다녔던 소이.
공부는 그렇게 잘하지 않았지만 학년 말에 분투해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한 혜지.
조그맣고 동그란 까무잡잡한 개구쟁이였던 호민이.
뭔가 헐랭이었는데 알고 보니 축구를 꽤 달했던 서형이.
휠체어를 타고 다녔지만 항상 긍정적이었고, 어머니께서 수학여행 3일을 함께 해주셔서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든 서영이.
우정이 호석이 등과 친하며 뭔가 공대오빠 느낌을 가졌던 준영이.
장난꾸러기였지만 졸업 후에도 꽤 오랫동안 매년 안부연락을 해줬던 장수.
귀엽게 생겼고 목소리도 변성기가 안 와 아직 아기 같았던 무석이.
자신이 스스로 종교를 정해 그곳에 뜻을 두고 진학을 결정했던 현광이.
조용하고 약간 다크 했던 인택이.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녔고 재밌었던 규민이.
블러핑이 꽤 심했지만 성격 좋고 분위기를 주도했던 석원이.
미경이 윤미와 친했고 호들갑이 좀 심했던 연주.
마음의 문을 잘 열지 못했지만 학업에 욕심이 많았던 혜림이.(뻐킹 자사고 h고)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어와 일본어를 잘했던 착한 연아.
때로는 내가 그 노래 가사에 나오는 그들(them) 중 하나가 된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만큼 나이를 먹었다. 이제는 그때만큼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지도 않고, 개인적으로도 학생들과의 관계보다는 좀 더 다른 것을 고민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혼자 이 노래를 들르며 그때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