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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08. 2023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교내논술한마당.


올해 새 중학교로 옮기고 나는 2학년부 기획 업무를 맡았다. 학교마다 업무분장이 다르겠지만 보통 1학년은 자유학년(기)제, 3학년은 고입과 졸업이라는 덩치 큰 업무를 가지고 있어 만만한 2학년부가 인문, 통일, 인성, 역사, 독도 교육 같이 정규 교과는 아니나 중요하다 생각되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일부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1학기 때 방황과 외로움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올 한 해 나는 상당히 운이 좋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부장도 안 하고,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업무를 맡았으며, 출석부가 굉장히 깨끗한 반의 순한 아이들을 맡았으니 말이다.


지난 월요일 우리 부서에서 주관한 교내논술한마당은 참여율이 저조했다. 생활기록부에 교내 대회도 기록할 수 없도록 지침이 깐깐하게 바뀌어 아이들이 참여할 강한 유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욕을 갖고 지원한 학생이 대략 스무 명 정도. 나는 계획서를 작성하고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시상용 상품권과 간식을 준비했다. 논제는 부장님께서 정하셨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쓰기 힘든 상당히 난해한 주제였다. 그래도 이번 월요일에 모인 약 스무 명의 아이들은 70분 동안 B4용지를 가득 채워주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수상작을 평가하기 위해 국어 선생님들과 업무담당자인 나는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 보았다. 신선한 면도, 식상한 면도, 잘 읽히기도, 논리의 비약이 있기도 하였다. 그래도 나의 중학교 시절과 비교하면 모두 훌륭하게 쓴 듯했다.


누구는 ‘선의’를,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외모’를, 누구는 ’지구‘를, 누구는 ’상상‘을, 누구는 ’친구‘를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적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순간 혼란에 휩싸였다. 중학생이 쓴 글도 어떤 게 정말 잘 쓴 글인지, 어떤 게 그러지 못한 글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떤 기준을 가져다 글을 평가하여 점수화하는 건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충분한 길이로 썼는가, 논리적으로 글은 흐르는가, 서론-본론-결론의 형태를 잘 갖추었는가, 적절한 근거를 들었는가, 주장은 참신한가 등의 기준을 가지고 글의 면면을 뜯어보면 어느 정도 평가는 가능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지, 얼마나 매혹적으로 글을 썼는지는 전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 감이 안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 그런 이유로 내가 매혹적인 글을 쓰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이들의 글을 읽다 내게 이 논제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쓸지 궁금해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을 제외하고 자기주장을 펴는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었다. 대학 입시를 하며 두 대학에서 각각 2000자, 1200자 논술 시험을 본 적이 있으나 도대체 무슨 글을 지껄였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물론 영어로 썼지만 대학 때 몇 번 들은 쓰기 수업에서도 그다지 잘 썼다는 평을 받은 적이 없다. 운이 좋았지만 아마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지 않았을까. 임용이 3차로 진행되던 시절 2차 시험에서 몇 천 자 짜리 영어 논술을 썼는데, 아직 소장하고 있는 초안을 읽어보면 개판이다. 글을 잘 쓰지 못하거니와 이런 형식을 갖춘 주장하는 글은 더 서툴다.


부끄럽지만…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가진 삶은 힘겹다. SNS나 셀프브랜딩 같이 자신을 꾸미고 상품화하여 남에게 공유하고 공감받고자 하는 행위가 넘쳐나는 시기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독특한 세계관을 좇는, 자신의 취향과 주관이 중요한 시기에 모든 이가 납득할만한 진정한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떠듦 역시 크게 봐선 집단을 이루고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인간의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문명 역시 진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체성, 의식, 사회성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진화는 태양이 내뿜는 빛에너지로부터 생명을 잉태한 지구에서 비롯되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약 130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우주의 역사를 생각할 수 있다.

즉,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우주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있는 우주의 검고 고고한 공간과 수놓아진 별무리들은 아름답다. 또한, 우주의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우리 은하, 그 한 귀퉁이에 있는 태양계, 태양계의 조그만 세 번째 행성, 지구. 우리가 두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지구의 대자연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거대한 산맥과 협곡, 높은 하늘과 푸른 대양. 고작 수만 년 발전을 이룩해 온 인류가 가늠할 수 없는 수억 년의 기록이 작은 모래알 하나하나에, 작은 곤충 하나하나에도 촘촘히 박혀 있다. 이를 어찌 아름답지 않다 할 수 있을까.

또한, 우주는 수학적으로도 아름답다고 한다-단정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수학에 잼병이기 때문이다-. 뉴턴의 물리법칙, 아인슈타인의 E =mc2. 닐스 보어 등의 양자역학의 수식들은 이 우주의 거시와 미시 세계를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다. 입자이자 파동인 빛의 속도는 불변하므로 결국 상대적인 건 시간이라는 인간의 통념을 깨는 물리 법칙. 질량과 빛으로 설명하는 중력.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프랙털(fractal) 등등.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우주의 물리 법칙은 단순하고 명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의 존재가 우주를 아름답게 만든다. 미국 생태 문학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거부한다. 인간은 신이 부여한 이성을 가진 존재이므로 자연 위에 군림한다는 주장을 반대한다. 오히려 이성을 가지고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쓸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대자연이, 즉 우주가 아름답다고 상상하고 말할 수 있는 인간 역시 우주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을 품은 우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칼세이건은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찍어보자는 의견을 내었다고 한다. 탐사에 큰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결국 보이저 1호는 가장 철학적인 사진을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창백한 푸른 별(Pale Blue Dot). 우리가 속한 지구, 우주의 압도적인 거대함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채 서로를 비교하고 질투하고 다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서 바라보면 이 또한 나비의 날갯짓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출처: https://science.nasa.gov/resource/voyager-1s-pale-blue-dot/


에이씨. 역시 나는 주장하는 글 같은 건 쓰지 말아야겠다.



덧.

이와는 별도로 칼 세이건의 말은 내게 큰 울림을 준다.

출처: https://youtu.be/c83V1ilN2NQ?si=U5jk28AdsRV6Hv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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