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음식의 내수화.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감자를 깎고 있었고 가스레인지 위 큰 솥엔 무언가 끓고 있었다. 류수영 배우가 만들었던 레시피를 따라 감자탕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오. 아이가 태어나고 감자탕을 먹으러 갈 기회가 없었다. 뼈해장국을 좋아하던 아내와 나는 식당에서 아이를 챙기며 뼈를 뜯을 자신이 없었다. 장모님께서 한 두 번 감자탕을 보내주셔서 맛본 게 다였는데.
벌써 1시간 가까이 뼈를 삶았지만 아직도 할 게 많다고 하였다. 감자를 깎고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씻는 등 아내는 바빴다. 나는 그 사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이와 놀았다. 뼈를 다 끓이고 건져 올렸다. 아이가 먹을 국물을 위해 육수를 조금 덜어 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된장과 고추장, 그 외 이것저것을 양념과 채소, 감자를 넣어 다시 팔팔 끓였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백숙이라던가 돈가스 등은 많이 해주셨지만 감자탕을 해주신 적이 없었다. 감자탕, 혹은 뼈해장국은 대학생이 된 후에 식당에서 먹은 기억 밖엔 없었다. 아내는 어릴 때, 장모님께서 감자탕을 자주 해주셨다고 한다. 식당에서 파는 맛과는 좀 다르지만 나도 장모님의 감자탕을 좋아했다.
우리는 자주 요리를 해 먹지는 않는다. 가끔 아내가 밑반찬 하는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본가와 처가에서 반찬을 받아온다. 나는 라면과 볶음밥 전담에 정말 간혹 오코노미야키나 김치전을 만든다. 아. 딱 한 번 멘보샤를 도전해 보았으나 식빵을 검게 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외에 된장찌개나 소고기 뭇국, 미역국 등 국과 찌개는 아내가 많이 한다. 아. 임신 중일 때 미역국은 내가 거의 끓이긴 했구나.
장모님께서는 집에선 좀처럼 요리하지 않는 음식들을 해주셨다고 하였다. 유전인지, 아내도 때때로 그런 요리들에 도전을 하고 있다. 신혼 때 처음으로 짜글이라는 것을 먹어봤다. 아내가 어디선가 보고 처음으로 만들어 주었다. 고기 대신에 스팸으로 만들었지만 밥에 비벼 먹으면 한 끼 뚝딱 해결되었다. 지코바 치킨을 먹고 내가 맛있다고 하자 아내는 또 어디선가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 주었다. 닭다리 순살을 사서 끓인 후에 설탕으로 카라멜라이징(?) 같은 작업을 하고 양념을 비볐는데 배달해서 먹은 그 맛이 났다. 아니, 나는 소스가 많은 걸 좋아해서 사 먹을 때보다 더 만족했다. 아내는 이를 ‘집코바’라 명명하고 요즘도 가끔 해주고 있다. 언젠가 처가에서 먹다 남은 회를 가지고 집에서 초밥을 만들기도 하였다. 초밥용으로 썬 회가 아니라 식감은 좀 달랐지만 꽤 먹음직스러웠다. 남은 탕수육으로 사천탕수육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의 이유식과 유아식을 만들면서 아내가 평소보다 요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듯하다.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을 찾는다. 차돌박이 된장찌개 밀키트를 아이가 잘 먹어 직접 만들어 먹였다. 노브랜드에서 산 팬케이크에 플레인 요거트와 과일을 아이 생일 케익으로 만들었다. 식빵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토핑 하여 에어프라이어로 구워 피자를 만들기도 하였다.
작년 여름에 친구네 가족과 광릉 불고기를 맛보았다. 나중엔 우리끼리 또 먹으러 갔는데 아이가 너무 맛있게 잘 먹었었다. 그게 자극이 돼서인지 아내는 간장불고기에 도전하였다. 꽤나 맛있어서 아이도 나도 잘 먹고 있다. 나는 프라이팬에 눌러붙은 양념까지 긁어먹는다. 지금도 돼지 뒷다리살인지 앞다리살인지를 사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다.
아. 그래서 감자탕은 어떻게 되었냐 하면. 고기를 두 번에 나눠서 열심히 뜯었고, 또 한 번은 국밥처럼 시원하게 밥을 말아먹었으며, 한 번은 프라이팬에 김치를 쫑쫑 썰고 김을 뿌려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마지막 남은 국물로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그제 나는 아내에게 조만간 또 감자탕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