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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11. 2023

아내가 만든 감자탕.

식당 음식의 내수화.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감자를 깎고 있었고 가스레인지 위 큰 솥엔 무언가 끓고 있었다. 류수영 배우가 만들었던 레시피를 따라 감자탕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오. 아이가 태어나고 감자탕을 먹으러 갈 기회가 없었다. 뼈해장국을 좋아하던 아내와 나는 식당에서 아이를 챙기며 뼈를 뜯을 자신이 없었다. 장모님께서 한 두 번 감자탕을 보내주셔서 맛본 게 다였는데.


벌써 1시간 가까이 뼈를 삶았지만 아직도 할 게 많다고 하였다. 감자를 깎고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씻는 등 아내는 바빴다. 나는 그 사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이와 놀았다. 뼈를 다 끓이고 건져 올렸다. 아이가 먹을 국물을 위해 육수를 조금 덜어 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된장과 고추장, 그 외 이것저것을 양념과 채소, 감자를 넣어 다시 팔팔 끓였다.


등뼈를 건져 나중에 먹을 때 국물에 넣어 끓이면 고기가 흐물거리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백숙이라던가 돈가스 등은 많이 해주셨지만 감자탕을 해주신 적이 없었다. 감자탕, 혹은 뼈해장국은 대학생이 된 후에 식당에서 먹은 기억 밖엔 없었다. 아내는 어릴 때, 장모님께서 감자탕을 자주 해주셨다고 한다. 식당에서 파는 맛과는 좀 다르지만 나도 장모님의 감자탕을 좋아했다.


우리는 자주 요리를 해 먹지는 않는다. 가끔 아내가 밑반찬 하는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본가와 처가에서 반찬을 받아온다. 나는 라면과 볶음밥 전담에 정말 간혹 오코노미야키나 김치전을 만든다. 아. 딱 한 번 멘보샤를 도전해 보았으나 식빵을 검게 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외에 된장찌개나 소고기 뭇국, 미역국 등 국과 찌개는 아내가 많이 한다. 아. 임신 중일 때 미역국은 내가 거의 끓이긴 했구나.

장모님께서는 집에선 좀처럼 요리하지 않는 음식들을 해주셨다고 하였다. 유전인지, 아내도 때때로 그런 요리들에 도전을 하고 있다. 신혼 때 처음으로 짜글이라는 것을 먹어봤다. 아내가 어디선가 보고 처음으로 만들어 주었다. 고기 대신에 스팸으로 만들었지만 밥에 비벼 먹으면 한 끼 뚝딱 해결되었다. 지코바 치킨을 먹고 내가 맛있다고 하자 아내는 또 어디선가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 주었다. 닭다리 순살을 사서 끓인 후에 설탕으로 카라멜라이징(?) 같은 작업을 하고 양념을 비볐는데 배달해서 먹은 그 맛이 났다. 아니, 나는 소스가 많은 걸 좋아해서 사 먹을 때보다 더 만족했다. 아내는 이를 ‘집코바’라 명명하고 요즘도 가끔 해주고 있다. 언젠가 처가에서 먹다 남은 회를 가지고 집에서 초밥을 만들기도 하였다. 초밥용으로 썬 회가 아니라 식감은 좀 달랐지만 꽤 먹음직스러웠다. 남은 탕수육으로 사천탕수육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음식 경험이 미천해 짜글이는 결혼 후 처음 먹어보았다. 초밥은 두툼한 회로 색다른 맛이었다.


아이의 이유식과 유아식을 만들면서 아내가 평소보다 요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듯하다.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을 찾는다. 차돌박이 된장찌개 밀키트를 아이가 잘 먹어 직접 만들어 먹였다. 노브랜드에서 산 팬케이크에 플레인 요거트와 과일을 아이 생일 케익으로 만들었다. 식빵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토핑 하여 에어프라이어로 구워 피자를 만들기도 하였다.


아이와 함께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작년 여름에 친구네 가족과 광릉 불고기를 맛보았다. 나중엔 우리끼리 또 먹으러 갔는데 아이가 너무 맛있게 잘 먹었었다. 그게 자극이 돼서인지 아내는 간장불고기에 도전하였다. 꽤나 맛있어서 아이도 나도 잘 먹고 있다. 나는 프라이팬에 눌러붙은 양념까지 긁어먹는다. 지금도 돼지 뒷다리살인지 앞다리살인지를 사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다.


아. 그래서 감자탕은 어떻게 되었냐 하면. 고기를 두 번에 나눠서 열심히 뜯었고, 또 한 번은 국밥처럼 시원하게 밥을 말아먹었으며, 한 번은 프라이팬에 김치를 쫑쫑 썰고 김을 뿌려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마지막 남은 국물로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그제 나는 아내에게 조만간 또 감자탕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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