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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16. 2023

처음으로 직접 숯에 불을 피우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한 첫 글램핑.


지난번 아는 형님 부자, 친구 부부와 함께 한 캠핑의 기억​ 때문인가. 집순이, 집돌이인 아내와 나는 웬일인지 캠핑을 해보고 싶어졌다. 아마 아이와 함께 함이 제일 큰 이유이지 않았을까. 10월 초부터 아내는 포천과 연천 등지에 있는 캠핑장을 여기저기 물색했고 곧 평이 나쁘지 않은 괜찮은 장소를 발견했다. 사실 캠핑 장비라고는 지난번 캠핑을 위해 당근 한 의자 두 개 밖에 없었으므로 우린 당연히 글램핑을 선택했다. 글램핑이라니. 전기 합선에 의한 글램핑장 화재, 이런 뉴스만 접했었는데. 그래도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나쁘지 않을 듯했다. 냉장고와 싱크대, 가스레인지도 있고 무엇보다 개별 화장실이 텐트에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목요일 저녁에 물과 음료, 어묵탕을 할 냉동 어묵을 샀다. 금요일에 나는 조퇴를 달고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그때까지 캠핑과 육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다. 소 갈빗살과 돼지 가브리살, 삼겹살을 적당히 샀고, 각종 채소와 마늘, 소금과 후추 같은 향신료, 쌈장과 심지어 부추무침도 준비하였다. 햇반과 일회용 그릇, 숟가락, 나무젓가락 등도 챙겼다. 아이가 먹을 음식과 과자, 혹시 추울지 몰라 아내와 나, 아이의 여벌옷과 잠옷, 세면도구, 체온계와 해열제 등등도 꼼꼼히 넣었다. 큰 쇼핑백 하나와 어깨걸이 가방 두 개가 나왔다. 으, 게으른 스스로를 탓하며 아내에게 굽신거려야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왔고, 우리는 지체 없이 출발하였다. 의정부를 지나 연천을 스쳐 포천에 다다랐다. 왕복 2차선 꼬불길을 천천히 돌아 돌아 마침내 예약한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30분이 넘었다. 일몰 시간은 이미 가파르게 짧아져 우리가 텐트 옆에 차를 주차했을 때 즈음엔 이미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이었지만 연휴기간이 아닌지라 캠핑장은 붐비지 않았다. 두 세 가족이 함께 온 팀이 대략 둘, 우리같이 홀로 온 팀이 둘 정도 있었다. 가족 단위 팀의 어린아이들이 캠핑장 중간에 있는 트램펄린에서 재잘재잘 놀고 있었다. 안개가 낀 것 같은 어스름한 저녁은 캠핑장의 조명과 옆 계곡의 물소리, 아이들의 즐거운 재잘거림과 합쳐져 나름 운치를 자아냈다. 이 또한 사람으로 부대끼지 않는 한적함 때문일지 모른다.



텐트 바로 앞에 작은 나무가 한 그루 있어 그 아래 테이블을 세팅하면 그럴듯할 것 같았다. 텐트 앞 발코니에 있던 4인용 접이식 테이블과 캠핑용 의자 등을 꺼내 나무 옆에 내려놓았다. 텐트와 바비큐용 화로, 싱크대와 분리수거 등에 대한 안내를 받고 서둘러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항상 아버지나 고모부, 선배나 친구들, 혹은 펜션 사장님이 숯을 피워주는 것만 보았지 내가 직접 피워본 경험이 없었다.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비루한 경험치에 앉아서 한탄만 하기에는 눈앞에 닥친 일이 있었다. 면 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안내문에 적힌 대로 번개탄을 중앙에 놓고 주위에 숯을 둘렀다. 부탄가스로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빙 두른 숯을 그 위에 조심스레 쌓았다. 잘 붙어야 할 텐데. 조마조마 해 하며 내가 불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아내는 아이를 챙기고 밑반찬과 접시, 수저를 세팅하고 햇반을 돌려오고 어묵탕을 끓였다.



와. 잠깐 인내의 시간이 지난 후 다행히 몇몇 검정 숯의 한쪽 귀퉁이부터 발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숯의 좋고 나쁨이라던가 좋은 불에 관한 지식은 없었지만, 그럭저럭 바비큐를 할 만한 불이라 생각되었다. 지난주 처가 식구들과 인천대공원 캠핑장에서 맛있게 먹은 기억에 다시 한번 고른 갈빗살을 먼저 꺼냈다. 불판에 너무 들러붙지 않게 요리조리 떼어내고 뒤집고 하다 보니 어느새 고기가 익어갔다. 아이가 먹기 좋게 자른 고기와 아내와 내가 먹을 고기로 구분하여 아이 것은 좀 더 익혔다. 이미 아이는 어묵 꼬치 하나를 빼내어 햇반과 즐기고 있었다. 아내에게 한 점 주니 맛있다 하였다. 신난 나도 입에 넣었는데 웬걸. 과장 좀 보태자면 요리왕 비룡이란 예전 만화에 나오듯이 “오오오오!”란 감탄사가 나올만했다. 지극한 행복(至福)이 이런 게 아닐까. 약간의 니글거림에 고소한 고기는 부드러운 질감으로 씹혔다.


출처: https://youtu.be/cUQ7qplkxKU?si=jO0_-w4_r2Vr1u_E


안타깝게도(?) 아이는 몇 점 먹지 않아 전부 우리 차지가 되었다. 아이 입맛엔 짜고 단 어묵이 더 맞은가 보다. 쌈에 고기를 넣고 밥과 마늘, 쌈장과 부추무침을 얹어 싸 먹어도 또한 맛이 있었다. 가을이 시작되는 서늘한 산의 저녁, 야외 따뜻한 숯불로 먹는 고기. 이 맛에 캠핑을 하고 바비큐를 하는구나. 소고기와는 달랐지만 돼지 가브리살 역시 조금 더 기름지고 고소한 맛을 선사했다. 정신없이 먹는 사이 순식간에 두 종류의 고기와 부추무침이 사라졌다. 숯은 여전히 활활 타고 있었지만, 당장은 배가 가득 찼다. 아이도 어묵과 햇반을 많이 먹었는지 숟가락을 놓았다.


우리는 배도 꺼뜨릴 겸 크진 않았지만 여기저기 조명과 장식으로 예쁘게 꾸며진 캠핑장을 둘러보았다. 우리 텐트가 있는 쪽으론 큰 텐트가 예닐곱 개 나란히 설치가 되어 있었다. 앞쪽으론 텐트와 펜션 건물의 중간 정도라 표현할 수 있는 작은 숙소 여러 채가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텐트 안쪽으로 계곡을 따라 텐트가 더 있었지만 손님이 없어서인지 조명이 꺼져 있었다. 컴컴한 곳은 패스하고 빈둥빈둥 여유롭게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아이는 손에 닿을 듯 내려앉은 초록 파랑 노랑 조명을 만지고 싶어 했다. 번쩍 들어 올렸지만 닿지는 않았다. 색감 좋은 사진도 찍었다. 입구 쪽에는 작은 미끄럼틀도 있었다. 손이 추워지는 줄고 모르고 아이는 여러 번 계단을 올라 미끄럼틀을 탔다.



다시 우리 텐트로 돌아오니 어디서 왔는지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빤히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아마 산고양이로 방문객들이 던져주는 고기나 과자 등을 먹고 크는 녀석인 것 같았다. 함부로 먹이를 주기가 껄끄러워 무시했는데, 아이가 상추 잎을 뜯어먹으라고 주어 아내와 나는 한바탕 웃었다.


아. 완벽히 망했다. 삼겹살은 고급 스킬이 필요했다. 그냥 숯에 구우니 그을음이 한가득 묻었다. 산책을 다녀올 동안 숯불은 이미 많이 죽어있어 고기도 쉬이 익지 않았다. 갈빗살과 가브리살을 맛있게 먹어서였을까. 삼겹살의 실패는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곧바로 캠핑에 조예가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SOS를 쳐 회생 방법을 문의했으나 뭐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린 아내와 나만 몇 점을 나눠 먹고 버리기로 정하였다. 그때 오신 사장님께 산고양이 이야기를 좀 들었는데, 먹이 주는 건 크게 문제가 안되나 고양이들이 급속히 번식을 하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우린 안심하고 내내 우릴 지켜보던 어린 고양이에게 고기 몇 점을 던져 주었다. 앉아있는 주변에 던지자 역시나 바로 찾아 먹고 다시 더 달라고 빤히 쳐다보는 게 신기하고 귀여웠다. 그래도 그을음이 꽤 있는지라 너무 많이 던지진 않았다.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 팬더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아내와 나는 베트남 달랏행으로 예매한 비행기표를 취소할까 깊이 고심한 적이 있다. 그때 취소하지 않고 조금 무리해서 달랏과 낫짱을 다녀온 걸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다녀올 때까지 우리나라의 일일 코로나 확진자 수는 10-20명 수준이었다. 다시 한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확진자 수가 수백 명이 넘어갔다. 운이 좋았다.


이번 캠핑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빈대 경보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머물던 캠핑장의 침구류도 그렇게 위생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으나 그래도 빈대가 나온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뉴스를 접한 후에는 캠핑도, 호텔이나 펜션도 꺼려지는 법이다. 이번에도 우린 운이 좋았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또 한 번 캠핑을 할 생각도 있었으나 빈대 뉴스로 인해 포기했다. 캠핑장비를 구입하기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이런 식의 캠핑은 내년 봄쯤에는 다시 한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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