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훈련소의 날시(詩): 26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26일 차


28.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훈련소에 입소한지도 4주가 다 되어가던 6월 초는 덥고, 습하고, 편하면서도 불편하고, 어느 때보다 바빴다. 마지막주차인 5주 차에 있을 각개전투와 행군을 앞두고 모든 교육이 마무리되는 시기였다. 각개전투와 행군은 훈련소의 꽃이라고 불렸다. 1년간 에너지를 축적하고 생식의 목적만을 위해 달려온 초목들처럼, 지금껏 받아온 훈련을 모두 적용하여 하나의 성과로 만드는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한 교수님은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지식을 모두 통합하는 종합예술이라고 설명했었다. 5주 차의 훈련들은 일종의 종합예술이었다. 그러나 4주 차의 훈련병들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준으로 자라 있지 않았다. 훈련병의 부족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4주 차는 군사훈련 지식들이 대방출되는 시기였다. 죽음을 앞둔 무림 고수가 제자들에게 비기를 전수하듯 교육은 다급하게 진행되었다. 코로나 탓에 교육 일정들이 지연된 것인지, 항상 이런 일정인지는 물론 알 수 없었다. 포복, 야간전투 교육, 경계작전 교육 등이 한참 밀려 낮이고 밤이고 훈련이 이어졌다.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하는 기분이었고 훈련병들은 많이 지쳤다.


문제가 생긴 것은 4주 차의 마지막 날, 금요일이었다. 경계작전 교육이 있던 날이었다. 경계작전 교육이란 부대 출입 초소인 위병소 혹은 순찰 중에 거동이 수상한 사람(거수자라고 줄여서 부른다.)을 발견했을 때의 대응 요령을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거수자를 비무장 상태로 만들고 포박하여 저지하는 과정에는 신경 쓸 세부 요소들이 많았다.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 절차를 익히기가 어려웠다. 교육은 뜨거운 햇볕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연병장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연병장의 흙먼지가 얼굴에 달라붙어 땀을 닦으면 까끌까끌한 느낌이 났다. 교육 내용도 만만치 않아 아예 넋을 놓아버리는 훈련병들도 눈에 띄었다.


조교들의 교육이 끝나고는 역할 실습시간이 주어졌다. 2인 1조로 한 사람이 정찰병 역을 하고 다른 사람이 거수자 역할을 맡았다. 차례를 돌아가며 실습을 했고 141번과 그의 짝 차례가 되었다. 나는 둘의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몇 가지를 지적했다. 141번은 자기들은 제대로 했으며 내가 말한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한참 말로만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다른 말을 하는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조차 헷갈렸다. 나는 순간 짜증이 나 141번에게 바닥에 거수자 역을 맡겨 엎드리게 하고 내가 아는 순서로 그를 포박하며 순서를 설명했다. 짜증이 난 상태라 연습임에도 힘이 들어가고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당시 분위기조차 제대로 읽고 있지 못했다. 실습이 끝나고 141번이 몸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말없이 일어나는 동안 142번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형 너무 열내지 마요.”나는 화들짝 놀라 그제야 분위기를 살폈다. 분위기가 싸했다. 141번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훈련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나이 많은 내가 화를 내며 141번을 강압적으로 대한 모습이었다. 이게 아닌데 싶었다.


교육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쉬는 동안 나는 당시의 상황을 복기했다.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긴 했지만 해서는 안될 행동이었다. 141번을 감정적으로 대했고 태도는 분명히 폭력적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차분히 생각했고 잘난 나의 성격 탓임을 깨달았다. 나의 판단력과 지적 능력을 과신해서 내가 맞다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화를 낸 것이다. 사실 누가 맞는 말을 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141번이 맞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단지 내가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에 입을 꾹 닫아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토론을 하지도 않았고 결론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설령 내 기억이 맞았더라도 오히려 차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했어야지 짜증을 내서는 안됐다. 당시 상황은 촌각을 다투는 일도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닌 그저 교육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스스로의 성격적 장단점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객관적인 검증을 위해 가까운 지인들과도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내 성격의 장점은 낙천성이다. 막연히 잘 되리라는 희망을 품는 종류는 아니고, 내가 고민한다고 달라질 것 없는 일에는 편하게 신경을 끊는 류의 낙천성이다. 이 성격을 장점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명철한 판단력과 개인 역량을 키워야 했다. 문제에 직면하기에 앞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할 일을 정확히 구분해야 했고 못할 일에 신경을 꺼도 괜찮을 만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야 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성격은 조금씩 강화되며 예기치 못한 단점들도 끌고 왔다. 나를 너무 과신하게 된 것이었다. 상대의 의견이 나의 의견보다 월등하다는 납득이 되지 않으면 고집스럽게 내 의견을 주장했다.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을 마주하면 쉽게 감정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141번의 말이 나의 성격적 단점을 건드린 것 같았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배움도 적다는 141번에 대한 나의 무의식적 판단 역시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훈련 당시를 떠올리며 육체적 피로나 스트레스가 내 단점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앞으로 조심할 것을 다짐했지만 내가 141번에게 준 상처와 내가 나에게 느낀 실망, 충격에 비하면 형편없는 해결책이었다. 근본적인 변화는 내가 안으로 파고들며 혼자 나를 분석하는 일을 멈추고 바깥에 시선을 돌릴 때 올 수 있음을 그때는 잘 몰랐다.


함민복 시인의 시 <반성>(『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문학동네, 2019)은 제목부터 나에게 필요한 시였다. 시인은 강아지를 쓰다듬는 화자의 반성과 다짐을 짤막한 시에 담았다.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여기에는 주변 요소들을 모두 제하고 동등하게 마주한 마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특수한 경우야 항상 있겠지만 온 몸으로 뛰노는 강아지가 사람보다 깨끗할 일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화자도 강아지를 만지고 늘 손을 씻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신이 지저분하다는 듯 손을 씻는 화자를 보며 화가 났을 수도, 몸이 지저분해 쓰다듬는 손을 더럽힌 자기를 자책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강아지들은 다들 착하니까. 화자는 그런 강아지의 마음을 깨닫는다. ‘너를 쓰다듬을 준비를 할게.’, ‘쓰다듬어도 될까?’ 상냥히 묻듯 먼저 자기 손을 씻기로 다짐한다. 강아지도 깨끗하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느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었다. 마음으로 마주하면 우리는 언제나 동등해진다. 상대에게도 나만큼이나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와 상대는 동등하게 한 마디씩 주고받아야 한다. 자기에게만 몰입하다가는 타인의 존재를 쉽게 잊는다. 다시 그 존재를 떠올리고 비슷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임을 기억할 때 나의 단점들은 보완될 수 있다. 미봉책이 아닌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우리에게는 어울림이 필요하다. 낯선 상황을 제공하고 함께 이겨내는 경험을 나눌 타인이 필요하다. 나는 그날 저녁 141번에게 사과했다. 진심이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괜찮아요 형. 다 이해해요.”라고 말했다. 나의 성격을 위태하게 받쳐오던 장점과 단점이라는 두 개의 축 사이로 타인의 존재라는 새로운 축이 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 매몰되어 있다가 문득 깨닫는 일을 반복하지 않게, 타인의 자리를 미리 여유롭게 준비해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늘 해오던 일의 순서를 뒤집어 시적인 반성과 다짐이 오래 남기를 바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