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다시 만남을 기대하며

훈련소의 날시(詩): 23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23일 차


25. 다시 만남을 기대하며


우연한 만남에는 꼭 ‘세상 참 좁다.’라는 감상이 함께한다. 잠깐의 놀람 이후에 인사를 나누고 나면 조건반사처럼 세상 좁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나 역시 좀 더 독창적인 표현은 없는지 고민하기도 전에 이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 손목 통증 완화를 위한 2주 치 약을 받으러 갔다가 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인데 약제병으로 입대해서 지구병원에 배치가 된 것이다. 약제장교로 입대한다느니 대학원을 갔다느니 소문만 듣고 지내다가 졸업한 지 일 년 반 만에 처음 얼굴을 보았다. 서로 깜짝 놀라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같은 스터디도 아니었고 동아리도 함께 하는 것이 없어 접점은 적었지만, 한 두 번 술자리에서 대화하며 참 선하다고 느꼈던 형이었다. 근황은 크게 나눌 것이 없었다. 훈련병 신세인 나는 일병 약장을 가슴에 붙인 형을 부러워했고 형은 나도 아직 한참 남았다며 웃었다. 형은 동기들과 나눠먹으라며 몰래 과자들을 챙겨주고 읽을만한 책도 선물해주었다. 나눠준 과자는 주말 종교 행사 때가 아니면 맛도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생활관에서 인기를 좀 얻을 수 있었다. 받은 선물과 인기도 기뻤지만 나는 오늘의 만남을 구실로 언젠가 형에게 연락할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뻤다.


나이가 들면서 익숙해진 것들 중 하나를 꼽자면 만남과 이별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회자정리의 말이 사자성어에서 삶의 진실로 옮아가는 순간들이 있어왔다. 둘을 하나의 이어진 흐름 속에 생각하게 된 것이다. 좋은 만남이든 나쁜 만남이든 이별의 순간은 찾아왔다. 나의 경우 대화하는 동안 상대가 궁금해지고 즐거웠다면 좋은 만남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반대로 내가 피하고 싶은 요소를 많이 갖춘 사람이라면 나쁜 만남이라 생각한다. 나쁜 만남에서는 내가 의도적으로 관계를 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이별이라기보다는 도망에 가까웠지만, 다행히도 그런 경우는 얼마 없었다. 대부분이 좋은 만남이었고 좋은 만남 이후의 이별은 흔히 말하는 자연스러운 이별이었다. 이별은 그 순간을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음에 또 보자.”같은 말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스마트폰이 있고 인터넷이 있고 비행기가 하루에 몇 백대씩 날아다니는 시대에 옛날 같은 생이별은 있기는 힘들겠고, 다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만남의 끝에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이별, 나는 이것을 좋은 이별이라고 부르고 싶다. 좋은 이별은 나에게 혹시나 우연처럼 다가올 재회의 순간을 기다리게 하는 이별이다. 좋은 이별은 우리가 다시 만나 그간의 일들과 옛 추억들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하게 한다. 가끔씩 좋은 이별을 함께한 사람들의 안부를 떠올려보는 것은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어쩌다 그들의 근황을 멀리 서라도 듣게 되면 매우 반갑다. 요리사가 되어 방송에도 한 번 나왔다는 초등학교 동창, 중학교 때부터 하던 락밴드를 여전히 하고 있는 옛 친구, 진짜로 팔씨름 선수가 되어버린 나와 체육대회 팔씨름 결승전을 치렀던 고등학교 동창,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직장으로 흩어져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나를 즐겁게 한다. 요즘은 SNS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들의 근황을 볼 수 있게 되어 더욱 반갑다. 그들에게 연락을 해볼까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각자 삶의 영역이 너무 달라진 이 시점에서 단회성 만남이 우리의 좋은 이별을 망칠까 두려워 주저한 적이 많다. 만남이 좋았던 만큼 이별 역시도 좋게 남겨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으로서 경험한 이별의 가장 흔한 이유는 취업 또는 이직이었다. 대학을 다니며 4년간 한 강의실에서 부대끼던 친구들이 각자 어딘가로 흩어진 것이 첫 번째 이별이었다. 졸업식 때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은 후로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두 번째는 나 역시 취업을 하고 이직을 하며 헤어진 직장 동료들이었다. 마음도 잘 맞고 열정이 가득했던 분들이라 함께 하면 즐거웠지만 퇴사 축하(?) 파티 이후로는 서서히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각자 적응해야 하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의 인간관계도 벅찰 것을 알기에 이런 이별들은 아쉽지만 어찌할 수 없다. 가끔 기쁜 날에 어쩌면 정말 슬픈 날에나 안부를 전하며 보게 될 것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이별을 겪고, 그들의 안부를 때때로 궁금해하다가, 오늘처럼 우연히 마주치는 날은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이 기쁨은 만남과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성숙하게 살아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런 태도에 대하여 생각할 때 고은 시인의 시 <안부>(『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 2011)는 나에게 좋은 지침이 되었다.


잘 있겠지 탈 없겠지 라는 안부가 사람의 한계일 수밖에
여기도 별 탈 없다네


시 <안부>는 ‘김완화에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김완화 씨는 고은 시인의 친구인 것 같았다. 시를 읽으며 짐작하기로 김완화 씨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단지 못 본 지 오래된 친구인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의 첫 두 문장에서 느낄 수 있듯 이별 이후에 우리가 인연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잘 있겠지 탈 없겠지’라는 안부를 떠올리는 정도가 가장 큰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일 것은 ‘여기도 별 탈 없다네’라는 나의 안부 정도일 것이다. 전지전능할 수 없는 사람의 한계이다.

함께 먹고 함께 자는 훈련소의 동기들과도 2주 뒤면 헤어질 준비를 해야 했다. 나이가 많으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너무 힘들었던 훈련기간 동안 동기들이 참 많은 힘이 되었다. 고마운 이름들을 일기에 써두고, 특히 고마운 이들은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수필에도 담고 있다.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있을지 궁금하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신하는 나의 말대로 그들이 목표하는 바들을 멋지게 이루고 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고은 시인처럼 그들에게 나의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기도 별 탈 없다네.’ 언젠가 듣게 될 그들의 근황 같은 것이 그들을 추억하는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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