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나에게 필요한 위로

훈련소의 날시(詩): 22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22일 차


24. 나에게 필요한 위로


타지에서 혼자 아프면 서럽다. 나는 이 말이 진리의 영역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서러운지는 타지에 발을 들이고 아파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돌봐줄 사람이 없다. 몸이 아프면 일상이 하나부터 열까지 귀찮고 힘겹다. 눈앞에 차려줘야 겨우 밥숟갈이라도 드는 게 아픈 사람이다. 타지에서는 그렇게 해 줄 사람이 곁에 없으니 일상은 귀찮고 힘겨운 것이 돼서 뒷전으로 밀려난다. 때문에 금방 나을 병도 더 오래간다. 또, 혼자 타지에 발을 들인 사람에게는 항상 떠나야 했던 이유가 있다.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이유와 주로 동일하다. 그렇게 타지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공간이 된다.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픔을 쉬이 고백할 수 없는 곳이 된다. 홀로서기란 그런 것이 아닐 텐데 아픔을 숨기고 참는 것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더 오래가던 병은 하루하루 이어져 일상이 된다. 영혼은 고향에 두고, 나의 몸 역시 하나의 타지가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손목이 자주 아팠다. 손목이 시큰시큰한 것은 기본이고 엄지손가락이 자주 저렸다. 저림이 심한 날은 불타는 듯 통증이 와서 손을 축 늘어뜨리고 있어야 했다. 2016년 여름, 손목 통증에 자다가도 깨는 날이 잦아지자 병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상을 들은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고 나의 팔과 손목, 손바닥에 긴 침을 꽂아 근전도 검사라는 걸 했다. 침을 꽂을 때마다 기계는 시끄럽게 지지직거렸고 모니터에는 알 수 없는 파동이 생겨났다. 나는 내 병이 저 그래프 속에 숨어있는 것처럼 시선을 화면에 고정하고 있었다.

의사는 손목터널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십 대 초반에 흔치 않은 증상이라 했다. 김장이나 가사로 고생하신 50대분들께 주로 나타나는 증후군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고생과 노화가 뒤섞인 병명을 들으며 나는 이게 내가 가져도 괜찮은 병명 일지부터 고민했다. 그리고 당시 읽던 소설가 한강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손목이 불타는 듯한 통증에 이제 평생 글을 못 쓸 줄 알았다는 수술 후기였다. 위대한 작가와 같은 통증을 공유한다는 것에 적당한 기쁨마저 느꼈다. 병명을 알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다음 방문에서는 염증을 줄이는 주사를 맞았다. 그 후로는 농구나 턱걸이같이 손목을 쓰는 운동을 격하게 하지 않는 이상 크게 아플 일이 없었다. 4개 단계 중 첫 번째 정도이기 때문에 잘 관리하면 된다는 의사의 말대로 내가 잘 관리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손목 통증은 처음 발현된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껏 나의 고민거리들 중 하나였는데, 나름대로 잘 해결된 것이다.


그 후로 5년간 잊고 지내던 끔찍한 통증이 찾아온 것은 훈련소에서 지낸 지 2주쯤 되었을 때였다. 입소하기 전에 예방차원에서 받아온 신경통 약과 소염진통제도 듣지 않았다. 주먹을 꽉 쥐고 있기가 힘들었고 이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탈 때마다 손목이 불에 덴 듯했다. 밥도 몇 숟갈 뜨다 힘에 부쳐 몇 번 손목을 털고 다시 먹기를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밥맛마저 떨어졌다. 진료를 받을까 생각했지만 매일같이 있는 훈련 일정에 불참하면 주말에 보충교육을 받아야 했기에 내키지 않았다.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프면 말하라는 조교들의 말에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참기도 했다.


죽지는 않아도 문제는 생기겠다 싶었던 3주 차가 되어서야 의무대에 처음 방문했다. 의무대 군의관 역시 내 나이에 맞지 않는 병명에 어리둥절해하다가 사회에서 받은 진단 내용을 보고 조금 더 큰 의료시설인 지구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다. 약으로 통증이 안 잡히면 주사를 맞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5년 전에 맞았던 그 주사였다. 주사를 맞으면 앞으로 5년은 또 괜찮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로부터 6일 뒤인 오늘 지구병원을 찾았다.


지구병원은 말 그대로 병원이었다. 병원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깔끔했다. 훈련소에서 다친 인원들이 한 중대는 될법하게 많았다. 진료를 보는 모든 군 병원이 그렇듯 군의관의 수가 환자 대비 확연히 적어 대기줄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일하는 분들은 출퇴근하는 직장의 개념인지 사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드물게 눈에 띄었다. 입대 후 처음 보는 사회의 옷차림을 구경하다 금방 지루해져 책장에서 얇은 소설책들을 꺼내 읽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으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거추장스러운 짐이 된 기분에 주눅이 들었다. 진료실에서는 군의관이 일당백의 전투력으로 환자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약제실 앞에서는 환자를 찾는 소리와 복약지도를 하는 약제병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훈련소 동기들은 지금쯤 연습용 수류탄 훈련을 하기 위해 훈련장으로 힘들게 이동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수류탄은 필수 과목이 아니라서 손목이 안 좋은 나는 열외 되었지만 연습용 수류탄 훈련은 함께 했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 편히 있을 정도로 뻔뻔하지 못한 나는 괜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자리를 옮겨 다녔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문 앞에서 행정 직원이 이름과 군번, 진료 목적을 물었고 칸막이 너머에 컴퓨터에 시선을 집중한 젊은 군의관에게 나를 안내했다. 나는 우선 간단한 테스트를 했다. 손등을 마주대고 손목을 꺾어 버티는 동작은 그동안 수없이 해온 것이라 익숙했다. 하기 전부터 어디가 어떻게 아파오는지 설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군의관은 결과를 들으며 역시나 신기해했다. 세 번째 보는 반응이라 익숙했다. 잠시 뒤에는 손목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고 군의관은 “훈련받기 불편하겠네.”한마디 하며 진단서를 작성했다. 일단 조금 더 센 약을 줘 볼 테니 먹어보라 하고, 주사를 놓을지는 약효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길게 먹어야 효과가 있는 약이니 훈련소 이후에 의무학교로 이동하면 다시 진료를 봐야 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진단서에는 “상기 환자 양측 손목 터널 증후군이 있다. 주사 치료 필요하다.” 는 요지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비록 기대했던 주사는 맞지 못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내가 아프고 생활에 불편이 있다는 것을 공적으로 인정해주는 서류였다.


‘거 봐, 아프대잖아.’ 가벼워진 마음으로 부대에 복귀하며 진단서 한 장이 내게 위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파도 참아가며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순간들과 진단서 없이는 인정해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던 조교들의 얼굴이 같이 떠올랐다. 훈련소에는 어떻게든 훈련을 빠지려고 거짓되거나 과장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대응은 이해가 갔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서러운 마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여러모로 눈치 보이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용기 내어 말하지 않아도 보여줄 수 있는 게 생겼다. 오늘 받은 진단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찾아온 일종의 위로였다.

나는 처음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 진단을 받았을 때를 다시 떠올렸다. 의사는 어떤 증상들이 있을 수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면서 나는 ‘맞아요. 그런 불편이 있습니다.’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설명만으로 마음이 편해졌었다.

살다가 보면/넘어지지 않을 곳에서/넘어질 때가 있다. (…)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대가 있다. (…) 살다가 보면

이근배 시인의 시 <살다가 보면>(『살다가 보면』, 시인생각, 2013)은 심심한 말투로 읽는 이를 위로한다. 위로를 위해서 꺼낸 말도 아니라는 듯 혼잣말을 이어간다. “힘내라.”, “잘하고 있다.” 같은 말은 없고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다.”는 말이 반복된다. 나는 오히려 이것이 가장 큰 위로라고 생각했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객관적인 사실을 짚어주고 동의해주는 위로였다.

시는 다 읽고 난 후에도 내 안에서 계속되었다. 때로 먼 곳에 혼자 와서 아플 때가 있지. 아파도 해야 할 일이 있어 말하지 못할 때가 있지. 살다가 보면, 그런 날이 있지. 가장 큰 위로는 그 사람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너 힘든 상황에 있구나.” 한 마디 해주는 것이 당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였다.


낯선 환경에서 아픔은 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픔이 관심으로 이어지고, 회복의 순간에는 돌보아준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깊어지는 경험은 타지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타지는 아픔과 위로의 문법이 고향과 다른 곳이다. 타지의 위로는 받아들여짐에서 온다. 너무 당연한 말들, 그러나 나에게만 당연할 뿐 세상은 관심 없을 거라 생각한 나의 말들이 타인의 입에서 나올 때 나는 위로받았다. 홀로 뚝 떨어진 훈련소에서, 그 당연한 말들이 나의 바깥에서 되풀이될 때 나는 비로소 새로 살아갈 힘을 얻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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