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하늘 길 따라

훈련소의 날시(詩): 21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21일 차


23. 하늘 길 따라


련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꼽으라면 단연 하늘 풍경이다. 굳이 훈련소가 아니더라도 군 생활하는 동안만큼 일생에 하늘을 자주 보게 되는 때가 없다. 유일하게 매일 변하는 풍경이 하늘인 탓도 있을 것이다. 계절을 품을 만큼 참을성 있는 시선의 소유자라면 모를까, 매일 똑같은 풍경 속에서 변화를 느낄만한 곳은 하늘밖에 없었다.


나는 군생활중에 무릎 연골이 찢어져 수술을 했다. 사회에 있을 때부터 나의 왼쪽 무릎은 불안정했고 염증도 쉽게 생겼다. 각종 훈련을 하다 보니 더 안 좋아진 것 같아 진료를 받은 결과 ‘반월상 연골 열상’이라는 병명을 받았다.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의도치 않게 전국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수술을 한 곳은 성남의 국군 수도병원이었고 두 달간의 입원 후 재활을 위해 옮겨간 곳은 국군 강릉병원이었다. 훈련소가 있는 논산에서부터 의무학교가 있는 대전으로, 자대가 있는 포천을 끝이라 생각했다가 성남, 강릉까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군생활을 했다. 군부대 시설은 어떤 경우에도 늘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있었다. 국군 강릉병원은 심지어 해수욕장으로부터 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나름 오션뷰를 기대하며 갔던 그곳에서도 나는 하늘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초등학생 때 하루에 하늘을 몇 번이나 보는지 묻는 TV광고가 있었다. 이 질문은 요즘에도 “하루에 세 번 이상 하늘을 보면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말과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같다. 서울에 살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일은 실제로 많지 않았다. 지평선 혹은 수평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풍경에 하늘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높아도 쉽게 그 끝에 시선이 가 닿는 나무들과 달리 빌딩과 아파트 숲에서는 목을 힘껏 뒤로 꺾어야만 그 끝이 보였다. 하늘은 그제야 마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빌딩 끝에 겨우 걸친 모양이라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았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어 도시의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당시 광고 문구에는 설문조사의 내용이 같이 실려있었는데, 하루에 한 번도 하늘을 보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의 나는 하늘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올려다봐야만 할까 하는 삐딱한 의문을 품었었다.

그런 의문과는 별개로 어릴 때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하늘로 가득 차있다. 서울대공원의 풍경이 그것인데, 공원 내부의 풍경은 아니고 공원에 가는 길에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지하철을 타고 대공원 역에 도착하면 익숙한 지하의 풍경이 펼쳐진다. 짐 걱정 없이 편히 공원을 관람하도록 다른 역보다 유달리 많은 코인라커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출구에 가까워지면 편의점과 즉석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보인다. 바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는 팝콘치킨을 파는 가게가 있다. 올라가기 전 냄새를 맡으며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꼭 한 컵을 사서 올라가곤 했다. 역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에스컬레이터로 한 번 계단으로 한 번 올라가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나타난다. 둥그렇게 놓인 계단의 경계 위로 하늘이 가득 차있는 풍경이다. 그때는 풀도 나무도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길은 땅 위로 올라간다기보다 하늘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듯한 기분을 준다. 공원을 걸으며 꽃과 나무를 구경하는 기쁨과 동물원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을 코끼리를 구경하며 얻을 평화로움의 예고편이다. 내가 묶였던 곳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난 듯 자유로운 마음을 갖게 하는 풍경이다. 중학교 때 단거리 마라톤 코스로 매해 공원을 찾았을 때도, 어머니와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왔을 때도, 여자 친구와 동물원을 구경하러 왔을 때도 늘 지하철을 타고 와 이곳의 풍경을 만끽했다.


훈련소에서 하늘을 보는 시간은 주로 샤워장이나 취사장에 갈 때였다. 샤워하러 갈 시각인 오후 7시쯤에 보는 하늘이 가장 아름다웠다. 서쪽으로는 짙은 주홍빛이 저무는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했고 동쪽으로는 검푸른 빛에서 옅은 파랑까지 하루의 모든 색이 담겨 있었다. 하늘을 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마치 내가 아름다운 유리 돔 안에 들어온 듯했다. 새들도 도심에서처럼 여기저기 길이 막혀 멈추지 않고 창공으로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이런 하늘 아래 있으니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모두 해체된 듯했다. 하늘을 볼 때 나는 올림픽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있었다. 그날의 설렘과 평화도 함께 느껴졌다. 또 나는 군대에 오기 전 여행한 마르세유의 섬 위에 있었다. 타국에 홀로 사는 친구와 나눴던 우정이 하늘길을 타고 전해졌다. 제주도의 산굼부리 위에 있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눴던 대화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일방적인 흐름에 쓸려가던 내가 지나온 삶의 순간들로 잠깐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었다. 하늘길은 공간도 넘고 시간도 넘어 내 마음으로 이어졌다. 추억들이 마음속으로 하나 둘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손택수 시인의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에 실린 시 <하늘 골목>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넓기만 한 하늘도 이 가난한 마을에 이르러서는
처마와 처마 속에 끼어 좁장한 골목처럼 풀어져
구불거리곤 하였으니
골목따라 오는 별을 헤아리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간들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있는 가난한 마을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모습이다. 어린 화자에게는 빌딩 같았을 담벼락에 가려 하늘 역시 골목처럼 구불거렸다. 그러나 그 길은 별들이 오기도 하고 어머니가 오기도 한 길이니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길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시간을 거슬러 시인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움을 담은 한 편의 시가 되었다.


훈련소의 하늘은 한없이 뻗은 평지에 드문드문 세워진 수풀 기둥들에 기대어 펼쳐져 있었다. 식물들로 틀이 잡힌 액자에 끼워진 그림 같은 하늘이었다. 액자에는 과거의 추억들과 내가 사랑하는 장면들이 오가기도 했다. 나의 삶이 하늘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와, 시인에게는 한 편의 시를 주었듯, 우울했던 나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게 했다. 이곳을 그리워할 날도 올 거라고, 어느 날 올려다볼 하늘에서 이곳을 지나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었다. 오래 올려다볼수룩 하늘을 보아야 하는 이유는 선명해졌다. 이어져왔고 이어져갈 흐름 위에 언제나 하늘 풍경이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