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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Jul 26. 2022

행복한 아기



이별을 말할 때는 귓속말로 합시다
행복이 아기인 듯 품 안에 품었던 것처럼
비극도 온전히 품어줍시다

알고 있지요 비극은 이미 품 안에
지금 행복만큼 눈물 나는 일은 없을 테지요

이별을 말할 때는 귓속말로 합시다
어려도 알 것은 다 안다고 하니
잠든 아기 듣지 못하게

미아처럼 방황하겠죠 우리가 아기를 버린다면
아기가 우리를 버린다면
그러니 우리는 얼마간 번갈아가며
아기의 볼을 쓰다듬고
가로로 흉을 남기며 자라는 기적처럼
아기의 무릎도 주물러 줍시다
어차피 나이 들면 떠날 거예요

밥을 차리고 함께 먹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오면
거실에 혼자 켜진 TV처럼
소란한 정적만이 남아있을 겁니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날 밤에 혼자 울테지요
더는 맞지 않게 된 옷들도 버리지 않고
옷장 한편에 개어 담겠지요

이별을 말할 때는, 이별을 말할 때는
나조차 의심하도록 바람처럼 속삭입시다
아기의 귓바퀴에 무성한 솜털처럼
아무도 놀라지 않게
지옥은 없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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