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전날은 어머니, 형과 셋이서 논산역 주변에 숙소를 잡고 하루를 보냈다. 수능 전날, 대학교 면접 전날 등 내 인생의 꽤 중요한 순간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고사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 하루를 함께 보냈다. 중요한 일정 전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차분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 집안의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매년 12월 31일이면 가족이 다 함께 설악산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설악산 여행은 두 아들들이 직장이 생기며 지키기 힘든 전통이 되었지만 나는 혼자 있더라도 딱히 화려한 새해 전야제를 꿈꾸지는 않는 사람이 되었다. 전통은 마음의 습관이 되어 나는 가족이 함께 움직일 수 없는 때라도 혼자 결전의 장소 주변을 미리 가서 탐색하곤 한다. 내가 그곳의 분위기, 그곳의 공기에 온전히 친밀해질 때까지 말이다.
옛날에 들은 한 농구선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선수는 시합 전날이면 코트에 가서 드리블하며 코트 전체를 천천히 훑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코트 관리자가 저녁 늦도록 코트를 맴도는 그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혹시 모를 바닥의 요철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나의 공이 다른 곳으로 튈지 모르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런 마음으로, 혹시나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가 버릴 불안한 정신을 위해 나 역시 미리 장소를 살핀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필요한 짐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짐이라고 해 봤자 평소 출퇴근할 때 드는 가방 안에 다 들어갈 정도로 간소했다.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논산으로 가는 동안 도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높은 건물들이 점차 낮아지고, 낮은 건물들도 드문드문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평지가 이어지고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풍경까지 이르자 문득 쓸쓸해졌다. 여행이라면 평화롭고 마음 설레는 풍경이었겠으나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남은 날을 계산하며 “꽤 많이 남았는데?”, “너무 짧은데?”를 2~3일 주기로 반복하며 살았었는데, 군대에 가는 것이 진정으로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논산역에는 점심쯤 되어 금방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한 후에는 짐을 바닥에 던져두고 몸 역시 침대에 맡기며 얼마 남지 않은 여유를 즐겼다. 가방에 챙겨 온 평소 좋아하던 시집과 소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책을 읽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그 후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책도 읽는 둥 마는 둥,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짧게 깎은 머리 사진이나 친구들에게 보내고 킬킬대며 있으니 서서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애써 잠재워둔 감정이 다시 일어나듯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밤은 온몸으로 기지개를 켜며 빠르게 자기의 범위를 넓혀갔다. 풍경에서부터 내가 있는 방까지, 나의 마음 깊은 곳까지 뻗어왔다. 나는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속절없다는 표정으로 방 안에 앉아 나의 처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비로소 혼자 있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도 가족도 아니고 그저 나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매일같이 왁자지껄하게 보내던 내가 비로소 마음을 정리하며 사회에 안녕을 고하고,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같은, 하늘에서 방금 뚝 떨어진 아기가 할 법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산책 좀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숙소를 나설 준비를 했다. 어머니는 혹여나 이놈이 괜한 일을 벌일까, 감상에 빠져 우울한 산책을 하고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셨는지 자꾸 걱정스러운 말을 하셨다. 나는 금방 들어올게요. 주변만 돌다가 올 거예요. 같은 안심이 될만한 말들을 늘어놓은 후에야 겨우 밖으로 나왔다. 시내까지 직접 걸어가려고 하니 밝은 낮 차를 타고 갈 때와는 전혀 다른 길이 펼쳐졌다. 길은 내 기억보다 훨씬 구불구불하고 길었다. 휴대전화로 켜놓은 지도에 내 위치를 나타내는 빨간 점은 제자리에만 있는 듯했다. 나는 한때 밝게 빛나며 손님을 모았을 낡은 네온사인들 사이로 걸었다. 이어폰에 음악을 크게 틀고 가로등도 없는 길을 걸었다. 이대로 쭉 걸으면 한 점으로 사라지는 원근법의 일부가 되어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풍경이 될 것만 같았다.
시내는 나오는 게 맞을까 내 거리 감각을 의심할 때쯤 나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폭이 넓은 길에 다다랐다. 이삼십 분을 걸었더니 목이 말랐고 화장실이 급했다. 마침 카페들이 여럿 보여 서울에 있을 때 가장 많이 가던 스타벅스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숨이 턱 막힐 만큼 그리운 커피 향이 콧속으로 스몄다. 갑자기, 정말 미친 듯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 졌다.
평상시 나는 단 커피들만 찾아 마시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내 기분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속이 느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나를 먹이는 어머니 덕에 위장이 꾸준히 가득 차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에게 아메리카노란 특유의 쓰고 신 맛으로 위장 속 음식물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음료이다. 아주 값싼 음료형 면죄부쯤 되겠다. 그리고 어쩌면, 내 머릿속 역시 느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많은 염려, 스스로 느끼는 부담, 걱정 그리고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미련들이 내 머릿속에서 함께 부대끼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사회에서 하는 마지막 주문은 내 마음이 어떻든 간결하게 이루어졌다.
한 시간 남짓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해결책이라곤 없는 각종 막연한 불안들이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부딪혀봐야 알 일이라 생각하며 창문을 보니 이미 바깥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더 있다간 집 찾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페를 나섰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계셨고 형은 한참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의 평범한 저녁 풍경이었다. 내가 들어오자 어머니는 함께 영화를 보자고 하셨다. <주디>라는 영화로, 1939년 개봉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역을 맡은 아역배우 주디 갈란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였다. 나는 그 여배우가 불행한 일생을 살다 간 것을 어디선가 보아서 알고 있었기에 영화가 우울할 것 같으니 다른 것을 보자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런 사정까지는 잘 모르셨는지 아니라며 멋진 여배우 이야기이고 화려하고 예쁠 것이라고 주장하셨다.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든, 그녀의 인생에 대해 아는 내용을 말하든 안 보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는 있었지만, 입대 전 어머니의 제안이니 더 얘기하지 않고 그런가요 말하며 영화를 틀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매우 우울했다.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입대 전날 보고 가기에 썩 괜찮은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괜히 미안했는지 내 눈치를 살피며 영화의 좋은 점에 대해 나에게 설명하셨다. 나 역시 평론가인 양 영화를 분석하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내 자리에 누웠다.
‘생각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닌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설득에 막연한 기대로 본 영화는 오히려 생각을 더 복잡하게 했다. 기분 좋아지라고 추억 만들자고 본 영화였는데 씁쓸한 기분만 남았다. 그러고 보면 입대를 준비하며 하려 했던 것들도 잘 된 것이 별로 없다. 필리핀 여행을 가려했으나 큰 폭풍으로 인해 공항이 무너져 비행기 표를 환불받았다. 이후 그럼 호주에 있는 친구를 보러 가야지 생각했으나 그때는 또 코로나 1차 대유행 시기로 심각한 국제 정세 탓에 항공편이 모두 취소되었다. 코로나 여파는 꾸준히 이어져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다 보지 못하고 입대 전날에 이르렀다. 이처럼 무기력한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문득 조금 전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받아낼 수 있는 즐거움은 얼마나 귀한가! 이제는 한동안 그런 자유도 없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던 지난 몇 달 같은 세월을 18개월 동안 더 보내야 한다. 이런 값싼 감상에 빠져있던 찰나 새로운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고작 그런 것이 자유인가?
나에게 매우 기본적인 요소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상실하자 그동안 그것을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마음껏 여행을 다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느끼고 싶은 감정을 느끼는 것. 내가 입버릇처럼 사랑한다던 자유가 이런 말이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사회에서 자유라 생각하며 누리던 것들을 모두 빼앗기게 된 순간 나는 어쩌면 ‘사회의 자유’라는 꽤 범위가 큰 틀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 착각하며 지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사회에서 벗어난 내 안의 자유, 어디에 있든 유지할 수 있는 나의 자유를 이 순간 찾고 깨닫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제니 시인의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 2010)에는 <녹슨 씨의 녹슨 기타>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시가 있다. 리듬감 있는 단어들로 동화 같은 이야기를 풀어낸 시이다. 녹슨 씨는 기타를 치고 노래하고 싶은 사람인데, 반음 모자란 기타가 부끄러워 기타를 치지도 노래를 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기타는 녹슬고 녹슨 씨는 녹슨 병에 걸려 귀도 녹슬어버린다.
녹슨 병에 걸렸다 녹슨 병에 걸렸다 귀가 녹아내리자 음악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녹슨 씨는 비로소 쳐본 적 없는 녹슨 기타를 치고 자유롭게 노래한다. 자기 노래에 대한 어떤 반응도 들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서야 큰 소리로 노래하며 즐거워할 수 있었던 녹슨 씨.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며 그동안 가진 자유들을 의심하며 내면의 자유를 탐구하기 시작한 나, 미묘하게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껴왔고 잃어버려 아쉬운 자유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같은 자유라면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값싼 면죄부가 되어 나의 다른 가능성, 성장을 위해 고난으로 가는 자발적인 걸음을 방해하는 자유라면 경계해야 할 필요도 있지 않겠는가.
입대 전날은 하루가 참 길었다. 혼자 걸었던 길을 따라 내 생각들이 카펫처럼, 그 위의 먼지처럼 소복이 깔리는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