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나 입대는 처음이지

훈련소의 날시(詩): 들어가며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들어가며


1. 누구나 입대는 처음이지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 일정을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두 가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매일 부모님 지갑에서 동전 몇 개를 훔쳐 방과 후에 오락실에 갔었다. 보충수업이 있었다느니 하는 거짓말을 잘도 지어내며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잦아지다 보니 부모님께 금방 꼬리가 잡혔다. 어머니가 이를 담임선생님께 알렸고 등교 후 몇 시까지 교장실로 오라 하는 통보를 받았을 때가 첫 번째 기억이다. 두 번째 역시 초등학생 때로, 학교 짱이라 불리는 다른 반 학생과 괜한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달리기나 잘했지 저체중에 키도 작은 내가 질 것이 뻔한 주먹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주변 여자아이들의 눈을 의식하며 어찌해보겠다고 학교 짱과 방과 후 놀이터를 예약해놓고는 남은 수업 시간을 지옥처럼 보냈었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손톱 끝을 뜯고 있었지만, 이제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된 기억들이다.


이후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 없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처세술이 늘며 이런 사건의 빈도나 타격이 점점 줄어간 것 같다. 그러나 나의 행동의 결과로써 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무리 성숙해진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언젠가 추억이 되기는 할까 의심스러운 일정이 있으니 바로 입영 일정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성인이 됨과 동시에 걱정하고 준비해야 할 것을 나는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실감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일도 해보다가 ‘더는 미룰 수 없다. 너의 연애 나의 입대.’따위의 농담 같은 생각으로 입대를 신청했고, 병무청은 너무나 열심히 일한 나머지 나의 입영 일자를 한 달 뒤로 통보해주였다.


입영 일자가 확정되면 그날 이전까지의 삶은 시한부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인들을 만나면 만날 때마다 이유 없이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군대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더 적극적으로 위로와 격려를 갈구했으면 좋았을 걸 싶다. 뭘 시작해도 성취하기까지는 남은 시간이 빠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은 드라마나 보고 게임이나 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빠듯하다면서 영화는 또 몇십 편을 찾아보았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버킷리스트 > 같은 영화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어떤 바보 같은 짓이라도 다 해보려 하던데 군대 죽으러 간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이 있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진정한 시한부 인생이라면 내 평판을 기꺼이 망치고 순수한 자유를 찾아 나서겠지만, 이건 굳이 정의하자면 그냥 잠시만 안녕이다. 그 때문에 오히려 객기는 부릴 수 없다. 그러나 마음가짐으로만 치자면 사형선고를 받고 기다리는 마음에 가깝다. 자신을 돌아보고 지은 죄를 뉘우치며, 평소 한 적 없는 선행을 베풀고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최대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이 나를 각인시키고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서 편지 한 통 써 주길 휴가를 나왔을 때 만나라도 주기를 남몰래 기도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군대를 어찌할 수 없는 공백기라고 생각한다. 군 생활을 마치고 온 지금 느끼기로는 아무것도 없는 공백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이제 막 군대에 가는 사람에게, 당시의 나에게도 군대는 인생길에 휑하니 뚫린 공백 같았다. 그러나 완전한 공백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뿅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요, 냉동인간이 되어 2년 남짓을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도 아니니 내 인생길에 무언가 자국이라도 남기는 할 터이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고 무기력해질 필요 없다.


성경을 보면 BC1580년경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 지금의 이집트인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탈출한다.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탈출 과정에서 생기는 사소한 불편들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하기 시작한다. 억압받던 노예의 시기를 기억 속에서 미화하여 차라리 애굽에 남을 것을 그랬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믿음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40년의 광야 생활을 벌로 내린다. 그 벌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한 후 정착할 땅에 이르기까지 멀지도 않은 거리를 40년간 방랑하며 가게 된다. 이 광야의 시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백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40년의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살펴보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믿음이 강한 지도자들이 꾸준히 새로 세워졌고, 율법과 제사의 틀이 갖추어졌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허락하는 고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호수아 23장 3절에서 5절까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4.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모세의 뒤를 이어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말이다. 헛되게 고난 속에 보냈다고 생각한 40년 동안에 여호수아를 비롯한 여러 후대가 자라났고 믿음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그들은 약속된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게 된다.


어떤 시기가 단순히 공백기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이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이라면 더욱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버티는 데에만 모든 힘을 쏟게 된다. 그러나 내가 그려놓은 길에 나타난 내가 느끼는 공백기, 이는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나 스스로 공백이라고 해석하는 그 시간 중에도 다양한 일이 나에게 벌어진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제목을 붙여 자의적으로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다. 절대자도 아니고, 자신에게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람도 아니다. 무자비해 보이는 절망의 시기 역시 나 혼자 그렇게 느끼고 지레 겁먹는 것일 수도 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험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내 인생이 언제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질지는 누구도,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화가도 아니고 그림에 조예가 깊지도 않지만, 화가들이 유채화를 그리며 흰 여백을 표현할 때 그저 비워두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흰 바탕에 그린다고 해서 흰 구름, 흰 꽃잎의 자리를 비워 두지는 않는다. 붓의 굵기, 한 번의 터치에 걸리는 시간, 붓 끝에 찍어낸 흰 물감의 양으로 화가만의 흰 질감과 느낌이 드러난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런 음도 없이 지나가는 구간이 있다고 해서 의미 없는 구간이라 생각할 사람은 없다. 공백은 바로 이전의 혹은 직후의 감상을 이어가기 위한 장치가 되어 곡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지금 당장은 비어버린 시간이 텅 빈 공백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 기간을 나름으로 채워간다면 인생이라는 작품에 더 풍부한 질감과 의미가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모든 일이 이어져 엮이는 인생 속에서 군대라는 경험이 당신의 새로운 시작, 혹은 잠깐의 휴식, 혹은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울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나 입대는 처음이지만, 언젠가는 모두 멋지게 병역을 마치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 내가 그러했고 여러분 역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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