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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디푸스 Jul 22. 2019

소통은 스피치가 아닙니다

소통은 날 잡고 하는 게 아니에요

  어느 기업이나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 어떤 것보다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회사들도 많다. 1순위는 아니더라도 가장 중요한 3가지 정도 안에는 들어간다. 다들 그렇게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사내 소통을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을까? 실제로 소통은 잘 되고 있을까? 그리고 소통이라는 것을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오래전 일이다. 그 당시 팀의 규모가 점점 커져서 팀원이 100명 가까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팀원들 간에 그리고 팀들 간의 소통을 중요시 여기고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았다. 그래서 나온 정책 중 하나가 '소통의 장'이었다. 주 1회였는지 격주 단위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한 시간 정도 실시되었다. 업무에 치여서 팀원들 간에 소통할 기회가 없으니 시간을 내서 한자리에 모여 서로 소통을 하라는 취지였다. 그렇게 소통의 장이 시작되었는데 팀장님이 나와서 발언을 시작했다. '요즘 왜 이리 불량이 많으냐, 공부 좀 해라, 노력을 안 하는 것 같다. 납기는 왜 이리 안 지켜지고 있느냐' 등의 내용으로 3~40분간 진행되었다. 그리곤 팀원들에게 요구사항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팀원들에게 '소통의 장'은 '잔소리의 장', '욕먹는 시간', '팀장님의 요구사항 접수 시간'이었다.  그 당시 팀장님에게 소통이란 팀장의 생각을 팀원들에게 전달하고 주입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소통의 시작은 경청이라고 배웠는데 그 경청은 팀원들에게만 요구되었다. 소통은 쌍방향이라고 배웠는데 그에게는 일방향 의견 전달이었다. 


  대화의 목적에 따라서 구성원들 간의 발언권의 시간의 분배는 달라질 수 있지만 단순히 발언권의 시간을 동등하게 분배한다고 본다면 1시간의 대화에 2명일 경우 말하는 시간 30분, 듣는 시간 30분이 공평하다. 그리고 3 명이라면 말하는 시간 20분, 듣는 시간 40분이 공평하다. 6명이면 말하는 시간 10분, 듣는 시간 50분이다. 참여 인원이 늘어날수록 말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듣는 시간은 늘어나게 된다. 물론 모두가 발언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의 발언에 동의하는 것으로 본인의 발언을 대체할 수도 있고 발언 시간을 꼭 동등하게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산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 팀장에게 있어서는 참여 인원이 얼마든 간에 발언 시간 50%, 듣는 시간 50%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발언 시간이 듣는 시간보다 많아야 한다. 그렇게 전체 시간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사용해 버렸다. 


  팀장의 발언이 끝나고 나면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소통해봅시다. 한 명씩 소통해 보세요."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말을 싫어한다. 소통은 평소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 이제부터 소통해보자'라고 하면서 한 시간 동안 소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로 면담이 있다. 그 당시 각 파트의 장들은 파트원들의 면담일지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그럴 때 보통 파트장들의 유형은 세 가지 정도로 나오는데 첫째는 파트원들을 한 명씩 불러서 "요즘 애로사항 뭐 있는지 말해보세요."라거나 각자의 애로사항을 메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하는 유형이다. "자, 이제 소통해봅시다."와 비슷하다. 두 번째는 평소에 주고받은 대화에서 파트원들의 애로사항들을 파악해서 면담일지를 적어서 제출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평소 파트원들에게 관심도 많고 파트원들도 평소에 편하게 파트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다. 세 번째는 평소 대화도 하지 않고 따로 면담도 하지 않고 임의대로 멋대로 적어서 내는 유형이다. 나는 두 번째 유형을 선호한다. 


'소통'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오빠, 우리 얘기 좀 해."는 무슨 의미지?


  팀들 간의 소통을 위해서 나온 정책은 한 달에 한 번 연관 부서들 간의 회식이었다. 회식을 각 부서끼리만 하니 연관 부서가 서로 회식을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라는 취지였다. 그렇게 술자리에서 서로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부서에게 원하는 사항들을 말하기 시작했더니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고 싸움이 일어났다. 안 하니만 못한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이 정책은 두 달여만에 폐지되었다. 우리 모두 성숙하지 못했다. 소통을 잘하지도 못했다. TV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토론만 봐도 얼마나 각자의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의 의견은 얼마나 듣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소통이나 토론의 스킬은 굉장히 부족한 것 같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입사 면접 때 토론 면접을 보는 회사들이 많았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두 팀으로 나눠서 토론을 하고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자면 토론이 상당히 잘(?) 이루어진다. 각자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상대방의 주장도 경청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며 자기 진영의 논리만을 주장하지 않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결론을 도출한다. 면접을 잘 보기 위한 일종의 쇼이고 소꿉놀이 같다. 그들에겐 결론 도출이 어떻게 되는 중요하지 않다. '난 이렇게 나의 주장도 할 줄 알고 상대방의 주장도 경청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면접관에게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좋고 올바른 결론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혹은 나의 그룹이 원하는 결론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든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한다. 관철시키면 영웅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역적이 된다. 토론의 목적 자체가 잘못된 것들이 많다. 면접 때 상대방의 의견도 경청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회사에서 어떤 모습들을 보이고 있을까?


  최근 몇 년 간 담당 임원이 바뀌면서 세 명째 임원과 함께 하고 있는데 소통의 있어서 각자의 특징이 있다. 첫 번째 임원은 사람들의 모든 말에 대해서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지 '모두 까기'를 시전 한다. 폭언은 덤으로 따라온다. 두 번째 임원은 사람들의 말을 고개도 끄덕여 가며 잘 경청(?)한다. 그리곤 말한다.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세 번째는 사람들이 말을 못 하게 한다. 혼자만 이야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윈 필요 없다. 의견 제시는 곧 '반기'이고 '도전'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곤 논점 말을 쉴 새 없이 한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다. 투머치토커 박찬호 전선수와 이야기를 나눠도 박찬호 전선수의 귀에서 피가 나지 않을까 싶다. 이 중에 최악은 세 번째다. 다른 두 임원은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이 분은 소통 자체가 원천 봉쇄되었다. 



  아니, 내 말 좀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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