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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디푸스 Jul 06. 2019

전쟁 같은 점심시간

  우리 회사 점심시간은 부서별로 다르다. 사내 식당에 전 직원이 들어갈 수 없어서 30분 간격으로 두 그룹으로 나눠서 점심을 먹는다. 식사 시간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큰 혼잡은 막을 수 있지만, 배식을 받기까지 줄을 서서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한다. 배식에 손이 많이 가는 메뉴가 나오는 날에는 기다리는 시간은 좀 더 늘어난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긴 시간을 기다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보통 1~2분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 1~2분은 매우 소중하고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어느 날부턴가 한두 명씩 점심시간 전에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2분 전에 몇몇이 출발했고 시간이 흐르자 더 많은 사람이 미리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니 3~4분 전에 출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점심시간 시작할 즈음 주변을 둘러보면 사무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식사하러 가고 비어있는 자리가 더 많다. 모두가 점심시간 시작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던 때에는 남들보다 식당이 일찍 도착할 때도 있고 늦게 도착할 때도 있었다. 일찍 도착하면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늦게 도착하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일찍 출발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정상적인 시간에 출발하면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어야 한다. 식사하고 있으면 미리 출발해서 식사하던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점심시간을 보내러 간다. 상대적으로 규칙을 어긴 사람은 이익을 보고 규칙을 지킨 사람은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은 규칙을 어긴 사람들에 대해서 비난을 하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그럴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고 이런 사소한 일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곤 본인들도 일찍 출발하기 시작한다. 만약에 이런 행동들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하면 융통성 없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어떻게 모든 것을 time table대로 움직이느냐”

“업무시간 이전에 출근도 하고 퇴근 시간 이후에도 일도 하고 실제로 규정된 업무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점심시간 1~2분 일찍 시작하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되었느냐”

“모두가 같은 시간에 출발하면 오히려 식당이 더 붐비는 것 아니냐, 오히려 1~2분 일찍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식당이 덜 혼잡한 것이 아니냐”

“그럼 너는 점심시간에 맞춰서 식사해라. 넌 얼마나 식사 시간을 잘 지켜보는지 지켜보겠다”

“점심시간이 짧은데 시간을 아껴야 하는 것 아니냐”

등등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원칙을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소리는 융통성이다. 융통성 좋은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많은 원칙이 있지만, 원칙들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융통성도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원칙을 지킨 사람이 손해를 보는 상황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위에선 우리 회사 식사 시간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었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우리 사회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세상, 원칙을 지킨 사람들이 이득을 보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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