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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Apr 10. 2023

나는 학부모 총회를 패스했다!


3월 22일 오후 2시 30분.


학부모 총회가 있는 날.


25년 교직 경력 중 유일하게 심플한 학부모 신분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학부모 총회.


지난 주까지만 해도,

가려고 했다.


이것도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터이니 가보자 했다.


그런데 패스했다.




 오후 4시 10분.


 몽실이를 찾으러 학교 후문으로 가니, 학교 안에서 학부모들이 우르르 무리지어 나오고 있다. 마침 학부모 총회가 끝나서 교문을 나서는 중인가 보다.


  "저는 80년 생인데, 몇 년생이세요?"


  "저는 83이요."


  스쳐지나가는  학부모들의 대화가 어쩔 수 없이 들린다.   엄마들은 저렇게 친해지나 보다.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학부모 총회룩", "연진의의 학부모 총회 의상" 등등


 학부모 총회 원래 취지보다는  마치 명품백이나 값비싼 옷차림이 문제라는 뉘앙스의 기사가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내 자녀의 담임선생님을 처음 대면하는 자리인데 어찌 옷차림에 신경쓰이지 않겠는가!

 나또한 총회에 참석했다면,  단정한 옷차림에 대한 부담이 없지는 않았을 거 같다.


 몽실이 학교 학부모님들도 갖춘 듯한 옷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여 학교를 나서고 있었다.

들떠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의 학부모도 있고,

무표정도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몽실이를 기다리는 동안 벤치에 앉아 그들의 모습을 살피고 있다.




학부모 총회.

요즘은 "학교 교육과정설명회"라는 명칭이 더 맞지싶다.

1년 동안 이뤄질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 담임교사 소개, 학교폭력예방, 가정폭력 예방, 청렴 교육 등 각종 학부모 교육 등이 교육과정 설명회에서 이뤄진다.


 또한 학교운영위원회를 조직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운영위원 선출을 온라인을 통해 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당일 투표를 하는 일은 물다.


보통 강당에서 모든 학부모를 대상으로 전반적인 설명회를 실시한 후 자녀의 학급으로 돌아가 담임선생님을 대면하게 된다.


  학급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학급 학부모를 대상으로 1년 동안 이뤄질 학급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 교육 소신 등을 밝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학급 학부모 임원 등을 선출하는 학교도 있다.


 이 모든 일련의 활동들이 코로나로 인해 약 3년 동안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아마도 대부분의 학교가 대면으로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가 이뤄진 것은 2023 년부터일 것이다. 3년 만의 행사인 만큼 학교도 학부모도 기대감과 긴장감 속에서 행사를 치루지 않았을까.



이맘 때가 되면 친정언니가 연락했던 일이 생각난다.


총회를 참석해야 하는지 안가도 되는지 결정짓기 어렵다는 것. 꼭 가야하냐고 묻는 그 물음 속에는 '자녀를 위해서 가야한다면 가겠지만, 굳이 안가도 된다면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친정 언니이기에 난 교사 입장이 아니라 동생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줬다.


"안 가도 돼. 그러니 걱정하지 마."


"정말? 정말 안가도 우리 00이에게 피해가지 않아?"


"피해는 무슨? 총회 안 왔다고 담임이 애를 미워하기라도 할 줄 알았어?"


 "아니, 난 그냥. 다 오는데 누구만 안 왔다고 표 날까봐."


  "오시지 못하시는 분들 많고! 안 오신 분들께는 학교에서 설명서 안내장 만들어서 가정에 다 발송하니 그거 참고하면 돼. 그리고 00이를 위해 담임 선생님을 만나 상담하고 싶으면 곧 상담 기간 되니, 그때 차분히 상담 받는게 훨씬 나아. 총회 때는 여러 명이 한꺼번에 오시니까 사실 자녀에 대한 깊은 상담은 할 수 없어. 얼굴 도장만 찍는 건데, 담임인 나도 그때는 누구 어머니셨는지, 누구 어머니가 안 오셨는지 오셨는지도 잘 기억나지도 않아."


"아, 그렇구나!"


"만약 언니가 그날 다른 엄마들과 친구를 맺고 싶다면 총회 와서 부모들을 만나는 것은 좋지만, 언니 성격에 그런 것은 싫잖아?"


 "맞아, 나두 학부모들 만나서 수다 떨고 그런 것은 별로지. 학부모 대표 하라고 할까봐 겁나기도 하고."



 담임을 하면서 난감한 순간이 학부모 총회 때 자녀의 상담을 하려고 시도하시는 학부모가 계실 때이다.


 학부모 총회 날에는 학교 및 학급의 교육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해드리는 날이지, 개개인의 상담을 하는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학부모께서 다 듣는 와중에 "선생님, 우리 00이가 발표를 잘 하나요? 우리 00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나요?" 이런 질문을 하시면 담임은 참 당황스럽다.


 물론 총회까지 어려운 걸음을 한 이유 중의 하나가 내 자녀가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또 담임 선생님을 얼굴을 뵙고 "00이가 참 바르게 행동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며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궁금 중은 1~2주 뒤에 있는 상담 기간에 내밀한 분위기에서 담임과 단 둘이 있을 때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 강당에서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각종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동안 각 학급 담임들은 교실로 돌아가 곧 있을 학급 설명회를 준비하곤 한다. 설명회 준비자료도 점검하고, 의자 배치 등 교실 정리도 하신다. 특히 고학년 담임선생님들은 수업이 끝나자 마자 총회가 실시된 경우가 많아서 학급 설명회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


 그런데, 이 시간에 강당에서 교육을 받지 않으시고, 학급으로 올라오셔서


 "선생님, 저 00이 엄마인데요, 00이 학교 생활에 대해 상담드리러 좀 일찍 교실로 올라왔어요."

하며 분주한 담임의 팔을 잡아끄는 학부모님들도 더러 계신다.


 물론, 간절한 그 마음은 같은 부모로서 이해하지만, 담임 선생님께는 참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일까.


우리 몽실이 담임 선생님, 지난 주부터 알림장에 "개별 상담은 4월 상담 기간에 이뤄진다"는 내용을 계속 써 신다^^;;


학교에서 온 e-알리미 안내장에도 상담은 상담기간에 하라는 문구가 눈에 띄인다.




  총회를 참석하기 위한 목적이,


학교 운영회 위원이나 학급 대표가 되어 적극 학교 운영에 참여하고 싶다거나

우리 학급 엄마들을 만나 정보를 얻고 사교의 폭을 넓혀보고 싶거나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이라면,


총회 참석을 권한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께 눈도장 찍고 싶고,

우리 자녀가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다면,

총회 참석보다는

학부모 상담기간 상담 신청을 권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학부모 총회(학교 교육과정 설명회)를 패스했다!!!




총회를 패스 하고 나서 조금 후회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항상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생활하다 보니, 가끔은 원피스에 족 구두도 그립다. 총회를 핑계대고 한껏 멋도 내고 싶고, 미용실도 다녀오고 싶긴 했다.


그래도, 약 2시간이란 시간을

목적에 맞지 않게 앉아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나를 위해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몽실이의 학교 생활 모습,

집에서와 사뭇 다를 그녀의 이중생활이 몹시 궁금하긴 하지만,

상담 기간 때 여쭤 볼란다.

그때까지 참아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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