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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Mar 10. 2020

오늘밤 손톱은 몹시 훌륭하군요.

그림책 <고양이 손톱과 밤>을 읽고

어릴 때부터 고양이가 좋았다. 잘 기억 나지 않는 아기때 고양이를 끌어안았다가 얼굴이 할켜서 아직도 희미하게 흉터가 남아있지만 그래도 난 고양이가 무섭지 않고 좋았다. 고양이를 직접 키우기도 하고, 동네를 다니면서 고양이들 사료를 챙겨주는 캣맘 노릇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집 안에서 고양이 하나를 키우고, 집 밖 데크에서 고양이 여섯을 거둬 먹인다. 나와 고양이는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나 말고 고양이와 운명으로 연결된  할아버지가 또 있다. 일본에서 고양이를 가장 잘 그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화가 마치다 나오코이다. 8살 아저씨 고양이 '시라키'를 입양해 같이 살면서 그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을 냈다. 모든 그림과 글에서 '시라키'에 대한 사랑이 온 마음으로 전해지는데 그 책이 바로 <고양이 손톱과 밤>이다. 


고양이가 그루밍할 때의 자세이다.


고양이를 가장 잘 그리는 화가라는 명성답게 이 책의 고양이 그림은 사실적이며 아름답고 그야말로 훌륭하다. 고양이 털 한 올, 혓바닥의 돌기, 수염의 방향, 표정의 작은 차이까지 고양이의 모든 것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애정이 없다면 절대 알 수 없는 고양이의 행동, 자세, 표정, 습성들을 포착한 그림은 감탄만 자아낼 뿐이다. 자다 일어난 심드렁한 표정, 그루밍할 때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세, 어그적 어그적 걸어가는 뒷모습, 높은 곳을 올라가고 내려올 때의 모습은 우리집 고양이를 보고 그렸나 생각할 정도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자신의 고양이와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림만 봐도 작가의 고양이 '시라키'가 얼마나 사랑을 받는지가 느껴진다.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 봤으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쳐다봤으면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는걸까. '시라키'가 운이 좋은 고양인 것은 분명하다. 


그림이 이렇게 훌륭하기도 쉽지 않은데 글 역시 그렇다. 그림과 글 둘 다 훌륭한, 그 어려운 일을 이 책은 해내고 있다. 글은 짧은데 그 속에 미스테리, 반전, 드라마가 다 들어있다. 짧은 동화책에 그게 말이 되냐고 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진짜다. 정말 이 짧은 동화에 이 장르들이 다 담겨 있다. 주인공 고양이가 "슬슬 때가 된건지도 몰라. 틀림없어. 오늘밤이야." 라고 하면 긴장감이 생긴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고양이, 고양이, 수많은 고양이들이 "마침내 이 날이 왔군요."라고 하니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된다. 그리고 고양이들이 일제히 앞발을 들고 일어나 "오늘 밤 손톱은 몹시 훌륭하군요."라고 하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반전. 그리고 담담한 결말까지. 몇 개의 짧은 문장들로 이렇게 풍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니. 동화책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 줄을 처음 알았다. 동화책이 시보다 더 시적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고양이들이 일제히 앞발을 들고 일어나 등을 쭉 펴고 있다.


매체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크게 두 가지 모습이다. 귀엽거나 불쌍하거나. 어디에서도 두가지 이외의 고양이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고양이 입장에서 불쌍함 보다는 귀여움에 속하는 것이 훨씬 낫겠지만 고양이는  "난 너희들한테 귀여워해달라고 존재하는 건 아니거든."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동화 속 고양이는 귀여움에도 불쌍함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단지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고양이들은 일제히 앞발을 들고 일어났고", "등을 쭉 편 채 한들한들 몸을 흔들면서 밤하늘의 손톱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귀엽지도 불쌍하지도 않은, 등을 쭉 편, 담담한 고양이가 주인공인 동화라는 것이 어디에도 없는 이 동화의 또다른 특별함이다. 


좋은 동화가 참 많다. 하지만 아름다운 동화는 많지 않다. 나는 감히 <고양이 손톱과 밤>이 아름다운 동화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지극한 사랑을 받는 이 동화의 주인공 '시라키'와 이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작가가, 그들의 관계가 부럽다. 고양이들이 오늘밤에 어디를 가는 건지, 손톱은 도대체 뭔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른, 아이 모두에게 많이 추천했고 한번도 실패한 적 없다. 어른도, 아이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사람도 누구도 관계없다.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동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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