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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Mar 05. 2020

내 고양이, 복 이야기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내 인생의 구원묘

내 고양이, 복이는 어느날 내 인생에 뛰어 들어왔다. 흔히 사랑을 교통사고에 비유하곤 하는데 난 복이와의 만남이 그렇다. 직장동료들과 산책 중이었는데 그때 풀섶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5~600미터쯤 되는 거리를 계속 따라왔고-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복이는 생사를 오갈 만큼 몸이 아팠을텐데 어떻게 그 먼거리를 뛰어서 따라왔나 싶다.- 결국 나와 남편, 그리고 복이는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부터 키울 생각은 없었다. 복이를 만난 다음날 비가 왔는데 그 비를 맞으면 이 작은 고양이가 죽을 것 같았다. 비라도 피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데리고 왔고 감기에 걸린 것 같아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범백에 걸려 있었다. 범백은 새끼고양이에게는 치명적인 병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고 치료해도 살 확률은 반반이라고 했다. 의사가 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하라고 하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본지 얼마나 된 고양이라고. 일주일간의 입원, 3백만원 정도의 병원비를 들인 끝에 복이는 살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복이를 키우게 됐다.


복이를 처음 만났을 때, 병원에서 치료 받을 때,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모습이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던 몸은 통통해졌고, 머리를 너무 부벼대서 걱정일 정도였던 애교있는 성격은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리면 가차없이 물어버리는 사나움으로 변했다. 아무나 보고 좋다고 하던 사교성은 어느새 사라지고 낯선 사람을 보면 화장실로 숨는 겁쟁이가 되었다. 그렇게 복이는 어느날 갑자기 내 인생으로 뛰어 들어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복이의 이름을 지을 때 많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복이를 만났을 때엔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고, 아이가 생기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 작은 고양이가 우리집에 복을 가지고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에 간단히 이름을 복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부를수록 좋은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복이가 들어오면 '복(福)이 들어왔다'가 되고, 하루에 열두번도 더 복(福)을 부르게 되니 참 좋다. 이름 때문인지, 복이가 정말로 복(福)을 가지고 들어온 건지 복이가 오고 5개월만에, 결혼한지 7년만에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고양이를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단 1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일이다. 복이 덕분에 아이가 생겼는데, 아이가 생겨서 복이를 어떻게 할거냐니.(물론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복이가 정말 많은 사고를 치지만 그때마다 '니가 제일 큰 일을 해줬으니 참는다.'며 넘어간다. 물론 어차피 다른 방도도 없다.


복이는 참 손이 많이 간다. 범백은 다 치료가 됐지만 새끼 때 앓았던 허피스가 아직도 남아 있어 늘 갈색눈물을 달고 산다. 그리고 겨울에는 허피스가 심해지기 때문에 항생제를 꼭 먹여야 한다. 약을 먹으면 바로 낫지만 완치는 되지 않아서 추워지면 눈물, 콧물이 계속 흐른다. 눈, 코를 늘 확인하면서 닦아주고 약을 먹여야 하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분리불안이 있어 눈앞에 남편이나 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둘 다 자신의 시야 반경에 없으면 애착인형을 물고 현관문앞에 가서 울고 있다. 아기가 생기고 아기방에 둘 다 들어가 있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복이가 울어서 문을 열고 방안에 있는 것을 확인시켜 줘야 한다.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불에 오줌테러를 한다. 최근에는 육아때문에 많이 못 놀아줬더니 몇 번의 테러가 있었다. 복이 덕분에 이불은 반드시 개서 정리해두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다른 고양이들은 낚시 놀이나 카샤카샤같은 고양이 장난감을 좋아하던데 복이는 오로지 뛰는 것, 숨바꼭질만 좋아한다. 아이를 재우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나오면 방문 앞에서 이제 내 차례라는 듯 복이가 기다리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뛰어서 커튼 뒤로, 의자 밑으로 숨는데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복이 덕분에 매일 틈틈이 운동도 한다.


아기방 앞에서 복이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생명이 또 있을까. 도움되는 거라곤 하나도 없고, 늘 수고만 들게 하는데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해서 다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일까. 복이가 사고를 칠 때마다 영화 아가씨의 마지막 대사였던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내 인생의 구원자(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복이로 인해 늘 더 수고를 하게 되고, 번거로워지지만 복이는 나를 구원해준다.


복이는 나를 웃게 하고,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혼자이지 않게 한다.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서 함께하게 됐는지, 갑자기 당한 사고같은 운명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나와 남편 그리고 아기와도 함께하게 됐는데,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낼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아기와 복이는 어떤 모습,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될까. 손이 많이 가도 괜찮으니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복과 아기, 나, 남편 우리 가족의 앞으로 날들이 기대된다.


복이는 새끼고양이, 캣초딩을 거쳐 이제는 1년이 지난 어엿한 성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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