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인기척이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나 방문을 다 열어 보았더니 아내가 침대에 누워 무심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 강아지 한 마리 키워야겠다.”
툭 던진 말에 아내는 반응이 없었다.
“강아지는 사람이 집에 오면 꼬리 흔들면서 반겨주잖아.”
메시지를 분명히 던졌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절대 강자에 대한 나의 도발은 무위로 끝났다. 그런데 무심코 던진 말은 방아쇠가 됐고, 결국 우리는 방아쇠를 당겼다.
저녁 늦게 집에 온 딸이 최근 힘든 일이 많은 것 같아 하소연을 들어주다가 위로하는 차원에서 “우리 강아지 키울까?”라고 했다. 딸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아지를 키우자고 말하는 것은 우리 집에서 금기사항이다. 왜냐하면 식구 중에 누구 한 사람도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나 아이들은 강아지를 보기만 하면 도망치다시피 길을 돌아간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와 어머니도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강아지를 키우자는 것은 그냥 한 말이다.
“정말 그래 볼까?”
예상치 않은 딸의 반응에 이번엔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강한 불만을 표해왔던 우리 가족들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심리적 혼란이 정리되기 전에 딸의 하소연은 방향을 틀어 강아지 이야기로 넘어갔고, 쭉쭉 진도를 나가 ‘어떤 강아지를 키우면 좋을까?'에 도착했다. 딸은 호기심 천국 같은 표정 짓더니,자리에서 일어나 곤히 자고 있는 엄마를 흔들었다.
“엄마, 우리 강아지 키울까?"
딸의 뜬금없는 말에 아내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갑자기 뭐야,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한바탕 돌풍이 지나가고서야 집안이 고요해졌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미친 거 아니야? 강아지를 키운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토요일 아침, 아내의 샤우팅으로 강아지 입양 이슈는 종결되는 줄 알았다.
아내는 한참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식구들이 모여있는 거실로 나오더니 "우리 강아지 한번 키워 볼까?" 했다. 식구들의 눈이 동시에 동그래 졌다.
이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강아지를 핸드폰으로 보여 주며 각자의 입장을 내어 놓았다. 딸은 토이푸들 좋다고 주장했고, 아들은 시츄가 좋다고 했다. 색깔에 대한 의견도 각각 달랐다. 강아지 종별 장단점을 비교하며 세미나를 방불케 하는 토론이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크림색 토이푸들로 의견이 모아졌다.
오후 늦게 우리는 집에서 가깝고 제법 규모가 큰 애견샵으로 갔다. 아쉽게도 우리가 원하는 토이푸들이 바로 직전에 분양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대신에 애견샵 직원은 비숑을 권했다. 아기 비숑이 우리 주위를 맴맴 돌면서 발발거렸다. 강아지도 무서워했던 아내였지만 너무 귀엽고 자신에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딸은 여전히 토이푸들에 마음이 있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의사결정을 하기로 했다.
강아지를 직접 접해 보아서 인지 마음이 더 절실해졌다. 그래도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몇 군데 애견샵을 더 다녀 보기로 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급한 마음으로 분당에 있는 애견샵으로 갔다. 깔끔한 환경이었고, 마침 우리가 찾는 2개월반쯤 된 크림색 토이푸들이 있었다. 너무 귀엽고 얌전한 모습이 우리 가족의 마음에 들어왔다. 샵 매니저도 좋은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두 군데를 더 살펴보기로 했다.
마침 바로 근처에 애견샵이 있었다. 하지만 두 군데 모두 애견샵 환경과 여러 면에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 결국 첫 번째 애견샵으로 돌아왔다. 어디엔가 홀린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당장 집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경험도 지식도 없는 입장에서 너무 급하게 행동하는 꼴이었지만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먹이, 물통, 배변패드, 울타리 등, 당장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매니저에게 강아지 육아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 강아지를 작은 캔넬에 넣어 자동차에 실었다. 오래전 산부인과 병원에서 첫아이를 태우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던 때가 생각났다.
강아지와 함께 집에 돌아온 가족들은 흥분된 마음으로 울타리를 치고 새로운 식구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던 아내는 가장 적극적이었고 강아지가 놀랠까 봐 조심조심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 집 강아지 코코 이야기가 시작됐다.
집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아 툭 던진 한마디 ”우리 강아지 키워야겠다. “는 나비효과기 되어 하루 만에 식구 수를 늘렸다. 내일 일은 모른다지만,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