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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길동 Nov 19. 2022

당신과 인생 한 바퀴

내 안에 아내 있다 10


모처럼만에  아내와 동네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같이 걷기로 약속한 지가 족히 수년은 된 것 같다. 서로 게으름을 펴다가 전격적으로 실행에 합의했다.     


5월의 저녁 기온은 걷기에 딱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바람도 살랑 불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좋은 느낌을 그동안 왜 선택 안 했을까?' 가볍게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하루를 밝혔던 해 조명은 꺼졌지만, 우리 부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배경처럼 보였다. 평소 터덕터덕 아파트 단지를 나설 때 하고는 달랐다. 같이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헤어지지 않고 같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참 특별한 관계이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속도를 맞추어 걷고 있었다.          


말 그대로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니 곳곳에서 신호등을 만나게 된다. 빠른 걸음을 걷다가 신호등을 만나면 흐름이 잠시 멈추어진다. 우리의 결혼 생활도 그랬던 것 같다. 때때로 빨간 불 앞에서 서서, '더는 못 가는 것 아닌가?'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곧 파란불이 들어오고 우리는 함께 걸어 여기까지 왔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빨간 불이 켜져도 조바심 내지 않고 인생의 다음 단계를 기대하며 잠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걷는 내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내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아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함께 걸으면서 할 말이 전혀 없다면, 같이 걷는 것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걸으면서 얘기하는 것도 좋고, 얘기하면서 걷는 것도 참 좋다.          


걷다 보면 가끔 스마트폰을 하게 된다. 오는 전화도 받게 되고, 전화 걸 일도 생긴다. 그때는 잠시 혼자가 된 느낌이다. 부부에게는 각자의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돌이켜볼 때, 서로의 시간을 인정해주고 내용과 사정은 자세히 몰라도 그냥 지지해주고 기다려 주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아이들 얘기가 나왔다. 최근 서운한 일, 괘씸한 일, 맘에 안 드는 행동까지 서로 경쟁하듯 얘기를 꺼냈다. 미운 감정으로 시작한 얘기는 곧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부모에게 자식은 그런 존재인가 보다. 한 시간 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저기 우리 집이 보인다.     


오월의 저녁은 좋은 사람과 함께 걷기에 참 좋은 때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훈풍 부는 오월 저녁만 같지는 않을 것이다. 더운 날도 추운 날도 있을 것이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함께 걸어가자. 그러면 모든 날이 좋은 날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당신과 인생 한 바퀴를 걸어가고 있다.     


당신과 함께 걸어온 사람 

(2019년 5월 결혼기념일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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