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며 배운 가장 유용한 삶의 기술은 아마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라고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사건은 오랜만에 전 회사 동료를 만나 공원에서 낮부터 가벼운 맥주를 마시고 있던 데서 시작한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얼마전에 당신이 살고 있는 건물을 매매했으며, 약 삼개월 뒤 계약 만료 시 보증금을 1억 올려주면 좋겠다.
라고 말했다.
아, 네, 생각해보고 연락 드릴게요.
사건이 시작되었다.
-
그로부터 약 일개월 전, 회사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당시 나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연락을 상당히 많이 받는 일을 하고 있어서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받았다. 이런 것일 줄은 상상도 못하고. 어떤 아저씨였다. 본인이 곧 건물 매매할 사람의 아버지인데, 집을 살 예정이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전화도 '네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하고 끊었다.
부동산을 통해서 연락이 온 것도 아니었고 집을 산다는 장본인도 아닌데다 나의 임대인은 집을 팔거라는 등의 사전 정보를 나에게 준 적이 전혀 없었기에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잊었다. 그리고 다시는 전화가 안왔다. 그러다 한달 뒤 보증금을 1억 올리겠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
보증금 1억이 어떤 돈이냐 하면, 내가 살던 집의 기존 보증금이 1.4억, 그러니까 약 70% 인상이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인상 범위는 5%, 5%는 적다쳐도 70%는 다른 세상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갱신청구권을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