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억이라는 돈을 측정하는 한가지 방법
"일억이 생기면 뭘 하고 싶어?"
최근에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억이 생긴다면 내가 현실적으로 당장 할 일은 대출금을 갚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으니, 나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먼저 돌아가본다. 일억의 가치란 무엇일까? 일억은 나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525,600분, 뮤지컬 렌트의 유명한 곡 Seasons of Love에서는 일년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표현하며, 어떻게 일년을 측정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1억을 측정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쉽게, 돈을 짜장면으로 치환했다. 짜장면이었던 이유는 아마 매일 600만 그릇씩 팔리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외식 메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유행은 좀 지났다. 짜장면 가격이 이미 1만원 수준으로 오른 뒤에 우리는 더 이상이 표현을 흔하게 쓰지 않는다.
요즘 흔한 비유의 대상은 커피일 것이다. 커피 한잔의 평균 가격 4천원이라고 했을 때 1억은 커피 2만5천 잔이다. 한국인들이 평균적으로 커피를 하루에 1.8잔 마신다고 한다는데** 그럼 13,888.8일동안, 즉 38년간 마실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나는 커피를 하루에 평균 2.5잔 마시기 때문에 1억으로 27년간동안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렇다면 커피가 주는 효용 가치는 어떠한가. 최근에 본 재밌는 트윗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는 일할때 마시는 커피는 가짜 커피이며, 진짜 커피는 일할 때 제외하고 마시는 커피라고 정의했고, 그 트윗은 인터넷에서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는 확실히 가짜임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니까 아마, 1.8잔 중 1잔은 가짜 커피일 것이다. 가짜 커피는 우리를 일하게 한다는 엄청난 효용을 가지고 있다. ‘일하게 한다(출근해서 그 시간을 회사에서 버티게 한다)’ 즉, ‘돈을 번다’ 이기에, 이 가짜 커피의 효능은 월급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 것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월급은 318만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38백만원이다.
자, 이제 62백만원이 남았다. 진짜 커피의 효용을 생각해 보자. 진짜 커피의 가치는 어떻게 따져볼 수 있을까. 커피의 향과 맛을 음미하는 데서 오는 행복,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서 오는 행복, 좋은 카페에 앉아있다는 행복,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행복, 커피를 마실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서 오는 행복까지. 당신이 느끼는 진짜 커피의 가치는 62백만원보다 큰가?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래서 나는 일억이 생기면 약 38년간, 하루에 커피를 2.5잔씩 마시며 행복을 조금씩 음미하기로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당신은 올 한해를 어떤 것으로 측정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