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올라 있었다. 밀라노에 가기 위해.
싼 표를 끊느라 이스탄불 공항에서 16시간 경유라는 극한 스케쥴을 선택했다. 27키로짜리 이민가방을 닮은 캐리어는 부쳤고, 나는 기내용 10키로짜리 캐리어와 가벼운 배낭을 가지고 빠듯한 이코노미 석에 앉았다. 비행이 한참 지루해질 무렵, 좌석에 붙은 작은 티비를 뒤적거리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가 있었다. 오 디즈니, 별 생각 없이 가볍게 보기 시작한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터트릴 줄은 일단 그때 나는 몰랐다.
내 꿈은 내내 경영자였다. 대학에서 경영을 공부할 때도, 취업의 첫 발을 내딛었을 때도. 기획팀에 입사하여 학교에서 배웠던 관리회계를 실제로 해보고, 분석 보고서도 쓰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얼른 승진해야지, 얼른 임원이 되어야지, 회사를 경영해야지 했다.
단 한번도 MBA가 아닌 다른 대학 이후 과정은 내 인생 계획에 한번도 적혀본적 없었는데.
여느때와 같은 통화였다. 나는 엄마에게 예술을 하고 싶다 말하고, 엄마는 너는 재능이 없다 딱 잘라 말하던. 그럼 나는 웃어버리는 것이 우리 대화의 루틴 아닌 루틴이었다. 그날은 나도 모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그리고 재능이 좀 없으면 어때 내가 하고 싶은데, 라는 말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회사를 관둘 준비를 했다.
다니고 있던 학원 시간을 두배로 늘리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회사를 가거나 아니면 책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유학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유학을 이렇게 갑자기, 서른이 다 되어가는 때. 밀라노의 신생 학교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지하철 역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지금 여기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선명하게 들었다.
그렇게 반년을 더 넘게 준비하고, 퇴직금과 전세금을 학비와 생활비로 어떻게 맞바꿀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두드린 후 비행기에 올라있었는데. 족장의 딸로 태어나 섬의 규율과 질서대로 살아가던 모아나가 돗단배 위에서 No one knows how far I'll go를 노래할 때, 숨겨놨던 두려움이 얼굴을 내밀고 나는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대기업이라는 울타리, 오년 동안 모았던 전세금, 달랑 이 두 개를 걸었으면서 마치 인생을 다 건냥 무서웠다.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염불처럼 “10년 넘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고작 일이년 딴 일 일한다고 망할 인생이면 그 10년이 전부 틀려먹은 거지” 하고 자신있게 말했지만 그 10년이 모두 틀려먹은거였을까봐 비명을 지르는 세포들을 들켰다.
그리고 발가벗겨진 후에야, 그 두려움을 인정하고 나서야 진심을 다해 믿을 수 있었다.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너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