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on.T - 불 꺼진 방 안에서
오랜만에 감성을 건드림 당했다. 평소에는 힘이 탈탈 털려서 축 늘어진 상태로 감성이란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면, 지금은 편안히 바다를 보며 앉아있는데 감성이란 사람이 멋대로 내 옆에 앉아 말을 거는 느낌이다. 해도 지지 않았고 내 눈앞엔 백지의 노트북뿐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백지를 타이핑으로 글을 만들어 채워나갈 수 있는 건 오롯이 처음 듣는 이 노래가 주는 감성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자이언티의 음악을 좋아했다. 내가 자이언티 음악을 처음 접했던 2015년도부터 따라 부르기에 너무 힘든 유니크한 음색이지만 듣기엔 너무나도 편안했던 목소리와 곡의 분위기는 초등학생이었던 본인의 귀를 사로잡았다. 처음 들었던 노래는 [꺼내먹어요]라는 곡이었다. 발라드를 접하지 않았었던 나이기에 이게 무슨 느낌인지도 잘 몰랐었다.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듯이 부드러워지는 게 저 노래의 가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어떤 심정으로 불렀는지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해 보기 시작한 게. 내 기억상으로는 저 친구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었던 것 같지만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자이언티를 알고 난 이후로는 계속해서 그 감정이 뭔지 생각해내야만 했다. 궁금한 건 혼자서라도 찾아서 정의를 내려야 하는 스타일인 본인에게 알 수 없는 그 감정들은 너무나도 답답한 감정들이었다. 집에 가서도 그 친구 생각이 났고, 학교에서 바라보면 마냥 좋았다.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도, 하교 후에 운동을 해도, 내 머리엔 오로지 그 친구의 생각뿐이었다.
지독하게 짝사랑을 했었다. 어느 것 하나에 집중을 못하다가, 그 애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는 모순적인 상황이 생기다가, 결국 집에 와서는 하루종일 사용한 에너지의 총량을 견디지를 못하고 축 늘어져 잠드는 게 일상이 됐을 무렵에 난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멘트로 메신저를 통해 고백을 해버렸다. 그때가 정확하게 기억난다. 외갓집 컴퓨터로 카트라이더를 하면서 이어폰으로는 적당히 감성진 노래와 함께 차였음을 실감하며 이불을 차대던 어린 시절을.
불 꺼진 방 안에서 라는 제목처럼 지금의 나도 불 꺼진 방 안에 홀로 앉아있다. 어느샌가 해는 져버렸고 창밖엔 어둠만이 짙게 내리깔렸다. 창백히 빛나는 노트북의 화면은 벌써 줄글로 가득히 채워져 있다. 어릴 적 경험을 아주 유치하게 써놓고 감성적인 척하는 게 슬슬 보기 힘들지만 이 또한 지금의 감정과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다. 평소 같으면 하지도 않을 짓을 오늘은 조금 하고 싶다. 가끔은 조금 감성적이어도 되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