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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 Jul 26. 2023

꽃꽂이 수업을 통해 배운 것들

휴직 19주 차 기록




'아니- 왜 죄다 평일 낮 수업 밖에 없지?'


휴직 기간 중 정말 누리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지자체나 관할 체육센터가 개설하는 각종 강좌나 클래스를 듣는 것이었다. 요리, 꽃꽂이, 공예, 클래식 기타, 요가.. 등 각 지자체의 비용 지원 덕에 생각보다 합리적인 (무료 수업도 많고 원데이클래스 보다도 훨씬 저렴한) 수강료로 다양한 강의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 외에도 지자체가 지역대학과 연계한 인문학이나 심리학 강의, 보건소와 연계한 비대면 출산교실, 건강한 식습관 관련 강좌들도 수시로 개설되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클래스들이 평일 낮 중심으로 개설되다 보니 (회사원은 여기서도 소외인 건지) 회사에 아침부터 밤까지 매어있던 나로선 (강의를 듣자고 금 같은 반차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좋은 클래스들을 접할 길이 없어 아쉬웠다.


가만히 늘어져 있는 편 보단 끊임없이 사부작거리며 사는 쪽에 가깝지만, 생각해 보면 이렇다 할 취미가 없다. 영화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매체에는 별로 흥미가 없기에 기껏해야 책 읽기나 '남편과' 산책 가기 정도 (혼자 말고 남편과 함께 이야기하는 산책이다.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소스라칠 듯..). 그동안 시간을 내어 배우고자 하는 곳으로 찾아가거나, 꾸준한 관심을 쏟을 정도의 즐거운 활동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취미의 사전적인 의미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지만, 즐겨야 하는 취미마저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지루한 느낌이 살짝이라도 들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듣고 싶었던 강의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다방면에 관심이 있는 내가 여러 가지 수업을 골라 보는 것, 주저하지 않고 틈틈이 도전하려고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철학과 심리학으로 구성된 15주 차의 인문학 강좌는 사실 조금 지루했지만 다시 대학교 교양수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4회에 걸친 요리교실은 재료비의 한계가 있던지라 한 조에 3~4명씩 짝을 지어 활동하다 보니 요리 초보인 나에게 칼자루가 쥐어지는 일은 잘 없었지만 완성된 요리를 통에 담아 오며 금요일 저녁밥을 해결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7월엔 구청에 소속된 평생학습센터로부터 꽃꽂이 수업이 주 1회씩 2번 개설되었다. 꽃을 좋아해서 오래전부터 꽃꽂이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사설 플라워샵에서 수강하려니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한 번도 꽃꽂이를 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여기서 수업을 들어보고 관심이 생기거나 재능이 보이면 좀 더 심화과정으로 알아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수강신청을 했다.


맨 뒷자리에 앉았던 첫 시간은 꽃다발 만들기 수업이었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엄청 많은 양의 꽃이 물에 담겨 있었다. 선생님께서 수업 시작 전에 꽃들에 달린 잎들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 컨디셔닝 작업이 필요하니, 잎을 남기지 말고 다 떼어내라고 하셨다. (꽃 선물을 받을 때나 줄 때는 몰랐는데, 그러고 보니 지저분한 잎이 없었던 것 같기도) 잎이나 가시를 하나씩 툭툭 떼어내며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살짝 차분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컨디셔닝이 끝나고 열두 가지 종류의 꽃을 종류별로 착착 다시 물에 담가놓았다. 선생님께서 손질된 꽃 중에 중심꽃을 하나 왼손에 잡고 한쪽 방향으로 돌려가며 꽃을 배열하라고 하셨다. 한 방향으로 쭉 뒤로 덧대다 보니 줄기가 나선형처럼 모양이 잡혔다. (이게 맞나 싶다) 줄기 배열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위에 꽃들이 진짜 맨 처음 마구잡이로 꽂혀있던 모양보다 더 삐뚤하고 이상했다. 시간은 촉박하고 아무리 첫 수업이라고 해도 난 절대 선생님처럼 안되는데 앞쪽을 보니 나를 제외한 10여 명의 수강생분들은 뭔가 꽃이 자리가 착착 잡혀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가) 결국 중심꽃을 몇 번이나 바꾸고 모양을 수차례 변형하다 욕심만큼 안 되는 실력에 화가 나서 그냥 들풀처럼 꽃을 무더기로 잡고 테이프로 둘둘 말아버렸다.  


'아 완전 거지 같네. 건드릴 수록 더 못하네. 못하니까 화가 난다 증말!'


마지못해 완성한 꽃을 들고 식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난생처음 해 본 꽃꽂이인데 어린아이도 아니고 내 기대 아니 내 욕심만큼 안 된 게 정말 이렇게까지 화가 날 일인가 싶었다. 물론 취미 생활도 최소 열 번 이상 시도해야 실력이 좋아진다지만, 스스로를 자책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간 해왔던 요리도, 악기 연주도, 메이크업도 소질이 그다지 없다. 취미생활로서의 즐거움이라는 게 영 생겨날 수 없는 구조다. 왜 나는 늘 잘하고 싶을까. 왜 기대가 끊이지 않을까. 잘 말고 그냥 하면 안 되는 걸까.


왠지 그 아무렇게나 말아버린 꽃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의 내가 종종 나를 대하는 방식 같았다.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고, 근거 없는 기대를 혼자 만들었다가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다시 기대했던 나를 미워하고,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꽃을 들고 오는 내내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는 내 모습이 참 별로였다. 어떤 순간이든 나 자신에게 따뜻하게 말해주겠다고 오랜 시간 훈련 해 놓고는 또 이렇게 한 번씩 불쑥 스스로에게 함부로 해 버리는 것이었다. 함부로 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면에게 말을 건넸다.


'못 해도 그만인 꽃꽂이 수업이지만, 열심히 배워서 잘하고 싶었구나. 스스로가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에는 못 미쳤네. 그래서 화가 났네. 화 날 수도 있지. 그 모습이 별로였구나. 기대가 크다는 것은 매사에 진심을 다 하는 사람이라는 것 아닐까. 다음 시간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해보자. 못하면 어때. 못하는 게 당연하지. 하루 만에 잘하면 회사 때려치우고 꽃집 차려야지'




합리화로 무장한 두 번째 시간은 화병꽃이 수업이었다. 지난주처럼 다른 수강생들의 꽃을 보며 내 결과물과 비교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맨 앞자리로 갔다. 지난 시간처럼 내 기대만큼 결과물이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작은 일이라도 잘 해내고 싶은 내 마음을 인정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내 실력에 대한 큰 기대가 없으니 지난주와 같은 꽃꽂이 수업인데도 마음가짐이 달랐다. 컨디셔닝이 끝난 꽃 길이도 조절해 보고, 색상도 여러 가지로 배열해 보고, 백년초도 양 끝에 꽂아보았다. 지난주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또 한숨이 나오려던 찰나,


"yoon님, 꽃 예쁘게 잘 디자인하셨는데요? 어떤 컨셉으로 했는지 한번 앞에서 이야기해 주세요"

"저요? 제 것 엄청 이상한데요?"

"아니에요. 개성있고 예뻐요. 잘했어요-"  


기대하지 않았고, 비교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꽃꽂이를 칭찬해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 정비를 통해 좋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작은 일에서도 내면을 잘 돌보며 가고 있다. 나와 잘 지내는 것. 말로만이 아닌 응원을 느낄 수 있는 실천 하나하나를 더해가려 한다.


독서나 산책 외엔 뚜렷한 나의 취미가 없나 싶지만 (브런치 글쓰기도 즐거움 보단 잘 써내고 싶음이 우선이라 취미는 아닌 듯하다), 취미가 꼭 명사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떤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차를 마시면서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이랑 연애할 때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하고, 책에서 본 글귀를 흰 종이에 옮겨 적는 것도 좋아한다. 이게 내 취미다.


휴직을 하면 생겨나는 여유의 힘으로 정말 인격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 규칙적이고 계획적으로 하나씩 착착해나가며 멋진 취미도 하나씩 만들며 살아낼 줄 알았다. 물론 내 마음에 쏙 드는 날도 있어서 '이제 나 스스로한테 좀 친절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완전 성실한데? 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유머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와 같은 말을 건네기도 하다가, 반면 내 못난 모습이 참 선명하게 보이는 날도 있다. '이렇게 게을렀나. 이렇게 먹는 게 제어가 안되나. 이렇게 속이 좁았나.' 회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스스로의 좋고 싫은 모습들. 여러모로 자기 객관화가 참 잘되는 요즘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나를 받아줄 곳은 광화문 보고서 공장 밖엔 없는 것 같다. 나의 한계를 충분히 느끼고 맞이하는 미래의 복직은 또 다른 마음가짐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하.. 아무래도 회사를 열심히 다닐 수 밖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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