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 5천원으로 올린 여름 티셔츠가 판매되었다. 종이가방에 티셔츠를 곱게 접어 넣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약속장소인 근처 역까지 나가는 길, 구매자 분께서 약속시간 5분 전에 '정말 죄송한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라고 톡을 보낸 뒤 연락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진짜 급한 일이 있으신가 보다.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조용히 돌아왔을 것 같은데 그날은 아니었다. 아니 그날은 아니었다기보다 요즘의 내가 그런 상황을 그냥 가만히 지나갈 수가 없었다. 저는 이미 역 앞에 다 도착했는데 나오시지 못하는 걸 갑자기 말씀 주시면 어떡하냐, 미리 말씀 주셨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참을 답장으로 쏟아내고 상대방이 내 답을 봤는지 안 봤는지도 모른 채 채팅방 나가기를 눌렀다.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너무했나 싶은 생각도 동시에 들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장맛비가 개이고 손에 다들 우산 하나씩은 들고 걷던 날, 묵직하고 단단한 까만색 장우산을 든 아주머니께서 딸과 함께 길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큰 우산을 위로 이리저리 치켜들며 이쪽저쪽 방향을 가리키는데 아무 생각 없이 옆을 지나던 남편이 그 우산에 맞을 뻔했다. 물론 다행히 남편 눈앞에서 우산의 움직임이 멈춰져 다치진 않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사람이 다친다는 인식도 없이 이리저리 우산을 휙 휙 허공에 긋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을 번갈아 매섭게 노려보며 아주머니께 한 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막 들던 찰나, 남편이 '안 다쳤으면 됐지 난 그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는데. 요즘 yoon이 여유가 없네'라고 말하며 걸음을 빠르게 해서 그 자리를 피하게 했다. 나도 예전 같았으면 남편처럼 생각했을 것 같은데, 진짜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정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건가. 싶었다.
인적성 시험을 보러 부산에서 올라온 남동생이 우리 집에서 한 밤 자고 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작년부터 인적성이나 면접을 보러 자주 올라왔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올라온 김에 며칠 밤씩 묵고 가기도 했다. 한 번씩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을 만나고 새벽 늦게 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매형도 같이 있는 집이니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오라고 내 나름대로는 (한창 놀 나이기도 하고, 시험도 끝났는데 스트레스는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항상 좋게 좋게 말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근처에서 친구 좀 만나고 갈게- 너무 안 늦게 갈게 누나야' 하고는 늦도록 연락이 없었다. '너무 안 늦게'의 기준이 서로 달라서였을까. 12시가 되기 전 빨리 안 오냐고 몇 개의 톡을 보낸 게 화근이었다. '누나 평소에는 안 이랬잖아. 왜 재촉하는데?'라고 하는 동생의 대답에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내 기준의 늦음을 이해시켜야겠다는 욕심에 늦은 새벽까지 말다툼을 하고서야 겨우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버스 3초 먼저 타고 내리겠다고 늘 순서를 무시하고 마구 밀려드는 사람들, 미술관에서 소리 나는 카메라로 찍지 말랬는데 작품을 보고 있는 내 귀 옆에 대고 굳이 셔터소리를 내는 사람, 어느 동네 사냐고 끝까지 집요하게 물어보는 요리교실 아주머니... (뭔가 소소하게 감정이 건드려졌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요즘은 정말 대부분이 별로로 보인다. 사람이라는 동물 자체가 원래 좀 별로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잘 양보했고,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별로 크게 거슬리지 않았던 일들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거대한 발작버튼이 되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일들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예전에도 가족, 친구, 불특정다수의 행동들이 불편하기도 했던 것 같다. 다만 그 상황에서 싫은 내색이나 표현을 잘 못했고, 감정과 행동에 대한 큰 기준이 없으니 불편하더라도 타인의 기준에 맞추고 수용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최소한의 정중한 거절, 해야 할 말 조차 하지 못했던 예전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정확한 기준이 생겨서 인 것 같기도 하고, 내 마음만은 건강하게 표현하겠다고 마음먹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나의 변화과정이 싫지는 않지만, 그렇게 표현하고 나서도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미안한 걸 보면 아무래도 요즘 내가 취하는 표현 방법들은 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감정을 건강하게 잘 표현하겠다는 것, 사람들에게 호구처럼 대해지지 말자는 것이 나의 날 감정 그대로를 드러내고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진심으로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타인에게 (가끔 가면을 쓰기도 했던) 격려, 동의, 칭찬, 공감과 같은 좋은 감정 표현은 많이 해봤지만, 거절, 불편과 같은 싫은 감정표현은 거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지금 나는 싫은 감정 표현의 수위조절이 안 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어떤 순간에도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크게 기분이 나쁘지 않을 때도 '저 기분 별로예요'라는 표정을 짓고 있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날선 말을 굳이 하거나 버럭해서 나도 타인도 상처받게 만들거나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 난 뒤엔 미안해서 잠을 못 자는 날도 있었다.) 싫은 감정이나 거절의 표현도 단호하고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은데, 해 본 적이 없으니 서투르다. 아직 나에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예시 문장이 많이 없는 것 같다.
나의 이런 변화는 남편이 가장 많이 경험하고 있다. 항상 배려심 있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내 모습이 좋아서 나와의 결혼을 선택했다던 남편 (예뻐서 결혼했다며 아니었냐?) 은 요즘 내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휴직 중인데 여유가 왜 이렇게 없냐. 이럴 거면 다시 회사 돌아가라. 나 혹시 속아서 결혼한 거냐'라고 농담으로 묻기도 한다. (하.. 농담이 아닐지도) 남편에겐 내가 변화하고 싶은 모습이 되기 위해 건강하게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지만 빡침의 수위조절 없이 수시로 사람과 세상에 열받아하는 요즘의 나를 보면 남편으로선 걱정이 되겠다 싶기도 하다.
별로인 마음, 불편한 마음이 들 때 '내가 주변을 너무 이상화했던 건 아닐까. 나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면서 타인에게 지나친 완벽함을 요구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니까. 내 마음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내 마음만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나에게 일어나는 일과 주변 관계에 대해 내 마음의 수용 범위가 더 커지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지금의 감정을 서투르지 않게 단호하고 세련되고 자연스럽고 다정하게 (참 형용사가 많이 붙는군..) 표현하는 것은 계속 연습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 표현하고 나서의 내 마음도 편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