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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 Jun 29. 2023

무례한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면

휴직 15주 차 기록




상담을 시작한 지 올해로 8년 차. 매주 한 번 다니던 상담은 어느새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상담의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나아짐의 척도라고 생각하기에, 상담 선생님께서 'yoon님, 이제 상담 간격을 좀 늘려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 하시는 말씀이 내심 기쁘고 반가웠다.


그 간 참 많은 주제로 상담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돌이켜보면 선생님 말씀은 다 맞고 다 알겠고 내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인정하는데, 막상 실제의 내가 그렇게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120분, 드라마는 16부작, 아무리 큰 시련도 어려움도 주인공이 가진 문제는 그 시간 안에 해결되는 것 같은데 내 상태는 늘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 '아니 다 알겠는데 그렇게 안 살아진다니까요. 나도 답답하다고요' 징징대는 횟수는 이전보다 확실히 줄었지만 아직도 이렇게 혼잣말을 툭 내뱉을 때가 있다. (살찌는 거랑 누워있는 거 빼곤 쉬운 게 없다 증말)


아들러 심리학이 잘 나와있는,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며 책 모서리를 참 많이도 접었다. (나는 다시 보고 싶은 문장이 있는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으면서 읽는다.) 내 기억에 책이 준 교훈은, '과거는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며, 언제라도 새롭게 결심하고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 한 문장을 살아내는 것이 어려워 긴 시간 상담받으러 다니는 게 나란 사람이긴 하다만.


휴직을 하고는 좋은 점만 가득할 거라 생각했지만, (물론 실제로도 좋은 점이 많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 감정을 마주할 시간이 참 많아졌고, 그 넘쳐나는 여유 사이로 과거의 일들이 불쑥 찾아와 끊임없이 마음을 건드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례했던 순간들, 그 보다 더 무례했던 사람들. 그 무례한 사람들에게 마저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고 싶어 대충 괜찮은 척했던 기억들. 당장의 불편함이 싫어 상대의 무례함을 온전히 수용하거나 극단적으로 회피했었던 날들.  당시 해결해 놓고 오지 못했던 소소한 분노들은 지금처럼 고요하고 잔잔한 순간을 맞이할 때 더 극대화되기도 했다.


1. 신입사원 연수시절, 엄마가 사 주셨던 새 구두를 잠시만 빌려신겠다고 신고 나갔다가 굽을 다 망가트리고 왔던 동기 (이후에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지만, 가서 묻지도 못했음)

2. 입사 첫 배치 이후 맞이한 발렌타인데이, 정성스럽게 포장해 간 초콜릿을 건네자 마자 본인 사물함 안에 던지며 다신 이런 거 하지 말라며 짜증 냈던 여자 상사 (너무 무서워서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음)

3. 회사생활 7년 차 때 만난 팀장의 온갖 무시와 멸시 섞인 눈빛, 표정. 아무것도 마음에 안 든다는 말투, 단톡 (퇴사충동 100%.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음. 매 년 한 두 명씩 패는데 그 해엔 내가 제물이었던 것 같음)

4. "ooo(남편직업), 그거 아무나 다 되는 거자나. 요즘 전망도 별로 없고"라고 술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선배 (본인은 이 말 한 거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음)

5. 회사 동료와의 약속시간 2시간 전, 아기가 아파 못 만날 것 같다고 약속을 취소하더니 몇시간 뒤 SNS에 남편과 맥주마시러 나왔다고 버젓이 사진를 올린 동료(기분 별로였음)


(이 외에도 생각하면 발작버튼이 눌려지는 순간이 많지만 쓰고 보니 다 회사사람 ㅋㅋ) 저런 상황에서 감정의 동요 없이 따져 묻거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어디 쉬웠겠냐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그 무례한 사람들에게조차 미움받을까봐 최소한의 할 말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너무 힘없고 나약했다. 저런 사람들의 특징이 꼭 사람을 골라가며 무례한 행동들을 한다는 것인데, 무례하게 대해도 되는 사람, 무례하게 행동해도 결국 숙이고 들어올 사람이라는 본인들만의 범주에 내가 들어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내 나름의 배려와 친절들은 형태를 바꾸어 그들에겐 만만한 사람으로 비추어 졌던 것 같다.


다시 저런 유사한 사람들과 무례한 순간들을 만난다면 이렇게 해야지. 그리고 이 글을 쓰고 나면 그 때의 무례함은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1. (구두를 들고 가서) "굽이 왜 이렇게 된 거냐. 망가트려놓고 말도 안 하고 신발장에 넣어놓으니 당황스럽다" 사과를 받아내기 힘들다면 내가 느낀 감정이라도 전달

2. "입사하고 첫 발렌타인데이라 다른 동기들도 부서에 준비한다길래 가져왔는데, 불편하셨나 보네요. 다음부턴 안 하겠습니다."라고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

3. "죄송합니다" 하지 않기 (생각해 보니 진짜 1도 안 죄송함). 화장실 세 번째 칸 가서 울지 않기. 내가 이 상사의 업무 스타일에 안 맞는 것일 뿐,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계속 생각하기 (실제로 그게 맞기도 함). 마음의 금을 긋기.

(+) 휴직하던 날 짐을 옮기면서 그때 그 팀장을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다. 눈인사만 까딱하고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불러 세우더니 '이 짐 뭐야? (저 난임휴직합니다. 짤막한 대답). yoon차장, 혹시 나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 너무 많이 줘서 아기 안 생긴 건 아니지. 내가 그땐 너무 미안했어. 나도 그때 왜 그렇게 ㅈㄹ을 했는지 모르겠다. 미안했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미안하다 한 마디로 그때 그 모든 행동을 덮으려는 것도 참 그분 다운 대처였다. 본인의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려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과도 내가 안 받으면 그만. 근데 미안할 일을 왜 하셨어요?

4. "그러게요. 아무나 다 되는 건데 저는 못 했어요. 근데 우리 회사가 더 전망 없는 것 같기도 한데"라고 말에 뼈를 섞어 던지기

5. (인스타를 캡쳐하고) "아기 아프다더니 나갈 수 있었나 보네. 약속까지 취소하길래 크게 아픈줄 알고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라고 단호하고 찔리게 톡 보내기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무례한 인간(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다)들은 너무 많다. 이제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에게 '그냥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나이가 들면 둥글둥글해진다지만 나는 더 각 잡힌 네모가 되기로 했다. 굳이 맞지 않는 사람, 무례한 사람, 불편한 사람에게까지 애쓰며 맞추며 살지 않고, 맞는 사람에게 더 잘 맞추고 싶다. 물론 단호해지려면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적당히 불편한 사람이 되어야 함부로 대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래 성격대로 사는 것도 그 나름의 장점들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잔잔한 분노가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은 분명 단점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친절하고, 좋은 게 좋고, 나아가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과거의 나에게도 자문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절도 나를 지키지 않는 상황에선 소용없는 게 아니었냐고. 내가 그리는 (그래서 실제로 노력하고 있는) 이상적인 성격에도 단점도 있을 테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떳떳하다는 확실한 장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편안해지기 위해 적당한 불편함을 선택하기로.


열을 내며 열심히 썼지만, 사실 이런 생각조차 나지 않게 구김 하나 없이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게 진짜 마음. 언젠간 그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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