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by 요유
새 집으로 이사했다.



2025년 9월 30일, 무척 비쌌던 사립 기숙사에서 지내던 날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마쳤어요. 점점 더 국제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는 도시의 특성(?) 때문에 박사생들은 더 이상 합리적인 금액의 기숙사를 이용할 수 없었고 (살고 있던 박사생들을 쫓아낼 정도), 한국에서 집을 구해야 했던 저는 (많이) 비싸지만 안전한 사립 기숙사에서 독일 살이를 시작해야만 했어요. 웬만한 서울의 월세를 뛰어넘는 한 달 렌트. 공용 공간 운동 공간(gym)을 제외하고는 제 공간인 스튜디오와 사무실 출퇴근을 하는 저에게는 너무나도 비싸고 부담되는 금액이었답니다. 매 달 돈을 낼때마다 별 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속은 상하더군요. 그리고 주변 지인들과 동료들이 제가 내는 렌트 금액을 듣고 충격을 받을 때 마다, 저는 점점 더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되더라고요. It is what it is, but... 아오.


그래서 계약이 가능해진 시기가 다가오자마자 미리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알아봤는데, 이건 뭐, 한국 오피스텔 시스템이 다른 어디에도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하얗게 텅텅 비어있는 공간을 하나부터 열까지 채워야 한다는 걸 들을 때 마다 왠지 모르게 일본에서 집구하던 생각이 나더군요. (한국의 서울, 비싸긴 하지만 1인 가구에게 있어서는 진짜 편리한건 맞답니다.) 그거 아세요? 심지어 여기는 주방도 떼어가요. 주방이라고 해서 가보면 벽만 남아있답니다. 그냥 텅 빈 공간. 제가 싱크대와 모든 걸 다 사야해요..핳. 감사하게도 뷰잉 잡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지만, 여기는 이게 걸리고 저기는 저게 걸리고, 조건들이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독일 버전의 플랫 셰어인 WG를 생각해봐야 하나 고민하던 중, 찾게 WG! 뷰잉을 가서 이야기해보니 일단 집이 너무 마음에 드는거에요. 무엇보다 플랫메이트가 단 한 명! (독일은 대부분 3명 정도가 한 플랫을 공유하는것 같아요, 진짜 많으면 6명도 있더군요.) 아주 초큼 고민해보고 바로 계약, 그리고 얼마 전 이사를 완료한거에요.


솔직히, 이사 쉽지 않더라고요. 친구들이 도와준다고 했을때 그냥 덥석 도와달라고 할걸 그랬나 싶을 정도? "해외에 나와서 혼자 살면, 이 정도는 마, 혼자 씩씩하게 해야지!" 하고 했더니, 제 양팔에는 멍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고군분투한 영광의 훈장이랄까) 그래도 이사를 마치고 새로운 공간에서 일어난 아침은 정말 개운하고 행복하더군요. 잔잔하게 느껴지는 안정감. 분명히 낯선 공간인데, "이게 내 집이야"라는 감각이 무척 편안했어요. 웬만한 오피스텔 전체 공간보다 큰 공간을 제 방으로 쓰려니, 이런 사치가 없다 싶기도 해요. 침대부터 옷장, 책상 등등 정말 하얀 도화지처럼 (진짜 하얀색이에요) 텅 빈 방이었다 보니 하나씩 꾸미는게 꽤나 재밌어요. 들어오기 전에 일단 자긴 해야 하니, 침대 프레임, 소파, 매트리스, 옷장, 책상 등등 이케아에서 주문해서 하나씩 조립하고 배치해서, 이사 전에 1차 완성. 그리고 이삿날 커튼이랑 작은 선반들 등등 이것저것 부차적인 것들 조립하고 나니 2차 완성.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가구들을 조립한건 처음이에요, (아랫층 미안했어욤). 이제는 방을 어떤 느낌으로 꾸며나갈까 고민하는 단계랍니다.


서울에서 지낼 때에는 이렇게 까지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실내 디자인을 즐기진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실내 디자인의 참맛을 알게된 느낌이에요. 제 손으로 하나씩 만들고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제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것, 꽤 재밌더라고요. 특히, 오랜 세월을 지나온 공간이라 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케아 가구들을 한가득 싣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이랄까요. 제가 살게된 건물은 1870년대에 지어진 곳인데요. 한 쪽 면을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제 방 창문들의 바깥면은 나무 조각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건 '일반적인' 창문으로 바꿀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 이 건물들이 자리잡은 이 거리가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흠, 멋진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아침에는 창문 옆으로 배치한 소파에 앉아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창밖을 봐요. 엄청난 장관은 아니지만, 제 눈에는 낯설고 아름답거든요. 살짝 핀터레스트 재질이랄까. (그리고 맞은 편 건물에 엄청 귀여운 고양이가 있어서, 가끔 서로 인사를..)


사실 여기저기 탐험하며 이 도시에 적응하던 기간, 6개월 뒤 또는 1년 뒤 제 모습을 그려볼때 마다 생각했던 것이 하나 있어요. "나도 이런 오래된 건물에서 살면서, 저렇게 수많은 열쇠들을 찰랑거리며, 일상을 멋지게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네, 현실이 되었습니다. (열쇠들은 생각보다 무겁..) 그리고 이제는 진짜로, 이 도시의 일원이 된것 같아요. 참 별 거 아닌데, 그쵸. 그런데 생각해보면, 집은 우리 모두에게 진짜 소중한 공간이잖아요. 그리고 이 중요한 공간을 제 색깔로 제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게 정말 멋진것 같아요. 처음엔 초큼 스트레스였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제가 그리던 모습을 갖춰나가는 집을 보며 이 과정을 너무나도 즐기고 있습니다. 꽤 재밌어요.


나에게 낯선 것들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건, 참 멋진 감각을 선물해줘요. 낯선 것들이 익숙한 것들이 되면서 새로운 것들을 알게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되거든요. 그리고 꽤나 자주, 새롭게 알게 된 자신의 모습은 'a pleasant surprise' 인것 같아요. "나에게 이런 면이?", "해냈구나 짜식. 멋지드아." 아직은 낯선 것들과 크고 작은 부침을 통해 삶의 경계를 넓혀나가는 자신, 그리고 그런 스스로를 때때로 대견해할줄 아는 자신. 별 거 아니지만 진짜 멋진것 같아요, 그쵸? 제 눈에는 이게 진짜 '멋진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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