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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Sep 22. 2023

[오스트리아 빈]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엄마는 독일어 읽을 줄 안다니까


그날은 봄과 여름이 나와 따로 움직였다. 봄과 여름은 미술관에 가고 싶다고 했고, 공짜 벌침을 맞은 나는 숙소에서 쉬고 싶었다.


오후 세 시 빈 소년합창단 공연에 맞춰서 벨베데레 궁전 정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궁전이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햇살은 따가웠고, 그늘에 있는 벤치는 몇 개 없었기에, 내 옆 빈자리에 독일 부부가 와서 앉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들이 펴서 읽고 있는 관광 안내 책자에는 독일어가 쓰여 있었으니까.


기다려도 봄과 여름이 오지 않아서 휴대폰을 들고 벨베데레 궁전 정원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가을에게 보냈다. 함께 오지 못한 가을을 생각하면서 동영상을 자주 찍었다. 사진도 좋지만 동영상으로 보여주면 현장의 느낌이 더 생생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 부부, 궁전과 정원을 보는 척하면서 자꾸만 나를 힐끔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럴 때 나에게는 파*고가 있지. 그들이 하는 말을 한국어로 번역하라고 시켰더니 예상대로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 여자 왜 자꾸 영상을 찍지?
유튜버인가?
하여튼 동양인들은 어쩌고저쩌고


벤치에서 일어나 봄과 여름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 이들을 어떻게 응징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미리 한마디 했다가 싸움 나면 2:1로 내가 불리하니까, 때를 기다렸다.


다시 파*고를 사용했다.

‘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를 한국어로 쓰고, 독일어로 바꾸었다. 벤치에서 일어나기 직전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남자에게 그 문장을 보여주었더니,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서 글씨를 못 읽는 척하는 게 아닌가. 마치 자기는 독일어를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흥! 내가 다 봤다니까. 누굴 바보로 아나. 당신이 읽고 있던 책은 분명히 독일어로 쓰여 있었어.


봄과 여름에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인종차별 발언을 한 독일 부부 한 방 먹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살짝 존경스러웠지?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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