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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Sep 21. 2023

[오스트리아 빈]엄마는 독일어를 읽을 수 있다

가끔 듣기도 되고 무슨 뜻인지도 안다


솔직히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에는 이 나라 사람들이 독일어를 쓴다는 것도 몰랐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마일리지 항공권 석 장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여행을 결정했으니까.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Wien Hauptbahnhof(빈 하웁트반호프-빈 중앙역)'로 갈 때, 여름이 더듬더듬 독일어를 읽는 모습을 보면서, 왜 저렇게 힘들게 읽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독일어를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배웠다. 그러나 아직도 기억나는 건 ‘a b c d e f g(아 베 체 데 에 에프 게)……’로 시작하는 독일어 알파벳과 ‘Ich liebe dich(이히 리베 디히-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와 ‘der des dem den, die der den die(데얼 데스 뎀 덴, 디 데얼 덴 디)’ 어쩌구저쩌구 하던 정관사의 변화형뿐이다.


독일어 선생님은 키가 작고 배가 나온 아저씨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학교 졸업생 선배와 결혼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아이들은 모두 다 독일어 시간을 싫어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그 날 배울 문장들을 연습장 두 장에 빡빡하게 채워 내야 했기 때문이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내 독일어 실력은 오른쪽과 왼쪽도 구별 못하는 우스운 수준이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어느 순간 툭하고 튀어 나온 기억들이 아이들과 나를 놀라게 했다.


음악회에 갔던 날,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왔다. 남자 여자 그림 표시도 없이 Herren(헤렌)과 Damen(다멘) 글씨만 적힌 화장실 문 앞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여자 화장실을 찾아 갔다. 나보다 먼저 화장실에 다녀왔던 봄은 화장실 앞에서 당황하며 서 있다가 다른 할머니를 따라 겨우 찾아갔다는데. 나도 모르게 ‘헤렌’과 ‘다멘’을 읽고서, 헤렌은 신사, 다멘은 숙녀임을 떠올렸던 것이다.


트램을 타고 가면 다음 정차할 곳을 방송하는데, 어느 날은 ‘Brauhaus(브라우하우스-양조장)'라길래


다음 내릴 곳은 양조장이 있던 곳인가 봐.

라고 말해서 봄과 여름을 놀래키기도 했다.


Westbahnhof(베스트반호프)는 서역이야.

라며 아는 척 하다가


그건 나도 알아. 누가 봐도 영어 West(웨스트-서쪽)하고 글자 모양이 같은걸.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어쨌든 독일 자동차 BMW를 비엠더블유가 아니라 ‘베엠베’로 읽고, 독일 기차 ICE를 아이스가 아니라 ‘이체’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건 다 배 나오고 빡빡이 숙제를 시켰던 독일어 선생님 덕분이니까,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그분에게 잠시 감사했다.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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