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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Sep 20. 2023

[오스트리아 빈]왼쪽은 Links 오른쪽은 Rechts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 다닐 때 독일어 공부 열심히 할 걸


빈에 도착하자마자 쇼핑부터 해치우고 나니 여행이 다 끝난 듯했지만 우리에게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셋째 날 오전은 시차 적응이 안 된다며 느긋하게 게으름을 부리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마음이 바빠졌다. 수영복도 사야 하고 화장품도 사야 해서(응? 어제 쇼핑 다 한 거 아니었어?) 시내에 나갔다가, 급하게 숙소로 돌아와 마트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먹고 옷을 갈아입고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장을 찾는 건 쉬웠다.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곳이 바로 콘체르트하우스였으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 연인들, 그리고 한국 사람, 한국 사람...(못 당한다 한국 사람. 공연장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한국말에 깜짝 놀랐다.)


티켓을 교환해야 하는 줄 알고 인쇄해 간 종이를 보여주었더니 그게 티켓이라 그냥 들어가도 된다고 했고, 핸드백을 맡겨야 하는 줄 알고 내밀었더니 작은 가방은 들고 가란다. 3유로 아껴서 기분이 좋았다.


공연 시작 5분 전, 내 뒷자리에 앉은 부부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문밖으로 나갔다. 옆에 서있던 다른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고. 아이고 자리를 잘못 찾은 모양이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내 눈앞에 표를 내밀었다. 어! 5열에 10번 자리다. 나랑 똑같은걸? 예매할 때 뭔가 실수가 있었나? 직원 불러야 하나?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내 표에는 L로 시작하는 단어가, 할머니의 표에는 R로 시작하는 단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계단을 올라올 때 표를 봐준 직원이 나더러 영어로 레프트 어쩌고 한 것 같았다. 아뿔싸!!! 나 역시 뒷자리 부부와 같은 실수를 한 것이다.


얼른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후다닥 일어나서 복도를 뛰었다. 앞서 가던 두 사람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서두르자. 우리 같은 실수 했다, 그지?


왼쪽 5열 10번 자리는 비어 있었다. 6열 두 자리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고. 아마도 공연은 곧 시작되는데 아무도 오지 않으니 자리를 옮겨 앉았으리라. 부부가 그들에게 표를 보여주니 머쓱해하며 옆으로 가서 앉았다.


무사히 제자리를 찾은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지휘자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들어왔고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제 공연 시작이다.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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