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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02. 2023

[오스트리아 빈]빈 소년합창단 야외 공연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노래도 잘하더군 지휘자도 훌륭했어

빈 소년합창단 공연 프로그램


라디오에서 빈 소년합창단 노래가 흘러나오던 어느 날, 봄이 소리가 정말 듣기 좋다고 했다. 빈 소년합창단은 한국에 자주 공연을 오는 편이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 가보자 했는데, 올 2월 내한 공연은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렇게 빈까지 와서 공연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는 벨베데레 궁전 옆 공원에 있는 야외공연장에서 하는 공연(Theater im park am Belvedere)을 예매했다.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공연인 것 같았다. 입장을 하고 보니 우리 같은 관광객은 잘 보이지 않았다. 스탠딩 카페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한 잔씩 들고 있는 사람들은 노인, 부부, 젊은 연인들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나무 꼭대기가 보일 정도로 키가 큰 플라타너스 두 그루 사이에 무대가 있었고, 그 앞에 객석 의자를 줄 맞춰 준비해 두었는데, 특이하게도 직원이 방석과 함께 밀짚모자를 건넸다. 해가 아직 기울지 않은 오후 세 시라서 나무 그늘이 생기기 전이었으니, 자리에 햇볕이 내리쬐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우리 자리를 안내해 준 직원은 오늘 빈자리가 많다며 비어있는 자리에 마음대로 앉으라고 했다. 나는 얼른 그늘진 무대 중앙 앞자리로 옮겼으나, 봄과 여름은 처음 예약한 뒷자리에 둘이 앉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야외 공연이라 그런지, 객석도 무대도 자유로웠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맥주와 와인과 음료수를 마셨고(좌석 번호를 알려주면 카페 직원이 자리로 배달까지 해 줬다), 합창단의 지휘자는 공연 사이사이 곡 해설을 해 주었다.


푸른색 수트가 잘 어울렸던 키 크고 날씬한 지휘자(뭘 그리 자세히도 기억하는가...)가 농담도 곁들였는지 사람들은 자주 웃었지만, 그렇게 긴 독일어는 알아듣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사진 촬영이나 녹화를 막지도 않았다. 덕분에 뒷자리에 앉은 봄과 여름은 여유롭게 마음에 드는 곡을 녹음했다.


소년들은 두 시간 동안 모두 열아홉 곡을 노래했는데,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온 ‘인생의 회전목마’나 모차르트의 ‘작은 밤의 음악’처럼 익숙한 곡도 있어서 반가웠다.

 

빈 소년합창단, 모차르트, 작은 밤의 음악(Eine Kleine Nachtmusik)


마지막 곡의 여운에 취해서 관객들이 끝없는 박수를 보내자, 앙코르곡이 시작되었다. 지휘자는 반주자를 겸했는데, 피아노에 앉은 지휘자가 두 세음을 치자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며 신이 나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도 단번에 알아들었다. 라데츠키 행진곡! 유명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연주곡이다. 푸르른 플라타너스 그늘에 앉아 소년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추어 힘껏  박수를 치던 시간이 꿈같았다.


이 감동을 가을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예매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봤더니, 역시나 어지간한 노력과 행운으로는 힘들었다. 일단 내년1월 1일 공연 예매는 올해 2월에 이미 끝났다. 그것도 수많은 신청자 중에서 추첨으로 선정했단다. 빈 사람들도 불만이 많은지 자주 묻는 질문에 추첨에 떨어진 사람들의 항의에 대한 친절한 답변이 달려 있었다. 돈과 시간이 있어도 가기 힘든 공연이니 유튜브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https://youtu.be/zLiLLCMuiOg?feature=shared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데츠키 행진곡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저녁을 먹다가 추석연휴라디오 특집에서 익숙한 곡을 들었다. 봄과 여름과 나는 한 소절 듣자마자 ‘이거 빈에서 들은 곡이야’ 하고 외쳤다. 젬베 연주와 함께 청아하던 소년들의 노래가 그립다.


아디에무스(Adiemus), 노래 제목은 작곡자 칼 젠킨스가 아프리카 토속 음악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이고 가사 또한 아무 뜻도 없다지만, 우리에게는 빈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아름다운 노래이다.


https://youtu.be/GCsQZSB1gZg?feature=shared

칼 젠킨스, 아디에무스(공식 비디오)


숙소로 돌아오던 트램에서 봄과 여름은 합창단 소년들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키 제일 작은 단원은 열 살도 안 된 것 같지? 그런데 어쩜 목소리가 그렇게 맑은지!
일본에서 온 단원이 있어서 일본 작곡가가 작곡한 '인생의 회전목마'를 프로그램에 넣은 것 같아.
한국 소년도 있는 것 같았어.
젬베 연주하던 단원이 곡 끝나고 어느 쪽으로 나가야 되는지 헷갈려서 젬베 들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으니까 지휘자가 왼쪽으로 살짝 밀어주는 거 봤냐?
가사 까먹어서 배시시 웃으며 뻘쭘하게 서 있던 애기도 있었어.
솔로로 노래하던 단원은 고음을 나보다 더 잘 내더라.


등등



그때는 입 다물고 있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실 엄마는 지휘자가 제일 낫더라(쉿, 아빠한테는 비밀이다).



#나중에  검색을 좀 해 봤다. 빈 소년합창단은 브루크너,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네 반이 있는데, 우리가 본 공연에는 모차르트반이 나왔다.  반 이름에 나오는 네 사람 모두 빈 소년합창단 단원이나 지휘자 혹은 작곡가 출신이다. 모차르트반에는 봄과 여름의 말대로 한국 소년도 있었다. 2020년에 모차르트반에 새로 부임한 지휘자 마누엘 후버는 네 반의 지휘자 중에서 가장 젊다고 한다. 아마 삼십 대 초반인 듯.



사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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