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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22. 2023

[오스트리아 빈]엄마는 내비게이션?

그럼 뭐해? 업데이트가 안 되는데


나는 방향과 거리를 잘 안다.


길을 설명할 때도 이렇게 설명한다.


거기 빵집에서 북쪽으로 십 미터쯤 가면 횡단보도가 있어.
길을 건너 서쪽으로 쭉 올라와서 두 번째 사거리 오른쪽이 그 식당이야.


봄과 여름은 엄마의 뇌에 나침반 있는 거 아니냐고 놀린다.


그러나 이제야 밝히는 거지만, 이건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다 배우는 내용이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거쳐 서쪽에서 진다. 낮 열두 시에는 해가 남쪽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 사실만 기억하면 방향을 알기는 쉽다.(여름: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다)


먼저 지금 시각과 해가 어느 쪽에 있는지 확인한다. 오전이라면 해가 있는 곳은 동쪽과 남쪽 사이겠고, 오후라면 남쪽과 서쪽 사이겠지. 한낮에 해가 있는 방향은 남쪽이고 내가 해를 향해 서 있을 때 왼쪽은 동쪽, 오른쪽은 서쪽이다. 남쪽의 반대쪽은 당연히 북쪽!(봄: 그게 뭐야 무서워)



길이도 마찬가지다. 길이 어림하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 시간에 배운다. 엄지손가락 손톱은 약 1센티미터, 어린이의 한 뼘은 약 12-15센티미터(어른의 한 뼘은 약 20센티미터), 사람이 두 팔을 쫙 편 길이는 자기 키와 비슷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두 팔을 펴서 학교 칠판의 가로 세로 길이를 어림한다. 좀 더 긴 길이? 학교 운동장은 100미터 정도? 요즘은 100미터가 안 되는 경우도 제법 있겠다.


빈 71번 트램


하지만...


빈에서 수영복을 사겠다고 시내에 가던 날, 내가 앞장서서 트램에 탔다. 그런데 익숙한 오페라극장 앞에서 트램을 바꿔 타고나서는 트램이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았다.


여름아! 우리 트램 반대 방향으로 탄 것 같아
엄마 어떻게 해요? 언니는 뒷 칸에 있는데.
로밍을 해 와서 정말 다행이야. 내가 전화할게.
봄아 우리 트램 잘못 탔어. 이번에 내리자.
알았어요.


여름과 나는 열림 버튼을 얼른 누르고 트램에서 내렸지만, 봄은 트램에서 내리지 못했다.


먼저 내린 우리가 트램 문 밖에서 봄을 바라보며 열림 버튼을  열심히 눌렀지만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트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으며 우리는 한 정거장을 열심히 걸어가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봄과 다시 만났다.


엄마 글자 좀 읽으세요.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는 보고 타야 할 것 아니에요? 동서남북 잘 알면 뭐해요? 트램을 반대로 탔는데!


여름의 잔소리에 나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사진-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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