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의 삼각 관계화
나르시시스트는 종종 제삼자를 끌어들여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가 그러더라”, “누구누구가 그러는데 네가 이랬다며?” 하는 식이다. 들으면 기분 상하고 신경이 쓰일 말들이지만 이들은 굳이 전한다. 정확히 말하면 과장하고 왜곡해서 전하거나 때론 없는 말을 만들어낸다. 반대편에도 같은 행동을 해서 양쪽은 사이가 서먹해지거나 멀어진다. 이런 걸 삼각 관계화라고 한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이 삼각 관계화를 아주 교묘히 이용한다.
하루는 팀장이 내게 말했다. “팀원들 사이에서 너랑 일하기 힘들다는 말이 들려.” 난 놀라 어떤 걸 말하는지 물었지만 팀장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뭘 어떻게 했길래. 잘난 척한다는 얘기도 들리고”라는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말만 했다. 난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정확히 누가 어떤 상황을 두고 그런 말을 했는지. 하지만 팀장 입장도 곤란할 것 같았다. 직접 거론하면 고자질하는 격이 될 테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난 내가 했던 말, 행동을 돌아보며 어떤 부분이 잘난 척처럼 보였을까 유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준도 없고 정답도 없었다. 팀원들 눈치도 보였다. 무슨 말을 해도 “또 잘난 척처럼 들리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었다.
나르시시스트는 삼각 관계화를 통해 양쪽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때론 싸움까지 일으킨다. 그러곤 자신은 중간에서 느긋하게 싸움을 관망한다. 이쪽에 가선 이쪽 편을 들고 저쪽에 가선 저쪽 편을 들며 공감하고 배려하는 척한다. 양쪽에서 지지를 얻으며 우월감을 느낀다. 이는 곧 권력이 되고 통제로 이어진다. “저쪽에서 이러더라”라는 한 마디로 상대방의 감정을 쥐락펴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팀장이 그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팀장은 다른 팀원들에게는 “좀 답답한 면이 있다던데?”라며 마치 내가 한 말인 것처럼 전했다고 했다. 물론 난 하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 우린 서로 서먹했고 중간에서 팀장은 마치 자기가 중재자 역할이라도 하려는 듯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을 몰랐으면 나름 노력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A의 전남편은 A에게 걸핏하면 이런 말을 했다. “○○이 그러는데. 나 보고 너랑 어떻게 사냬.” “엄마가 그러는데. 넌 너무 남편을 무시하는 것 같대.” “저번에 동생이 그러더라. 형수님이 너무 냉랭하다고.” 처음엔 A도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자신이 정말 그런가 의심도 들었다. 어떤 행동에서 그렇게 느꼈을까 곱씹으며 지난 상황들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불리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런 말들을 꺼냈기 때문이다.
결국 A는 확인하고 싶어졌다. 너무 괘씸했던 A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한번 물어봐야겠다. 내가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드는지.” 그러자 남편은 화들짝 놀라며 A를 말렸고, 곧장 화제를 돌렸다. 그 순간 A는 확신했다. 이건 단지 사람을 흔드는 수법이었다는 걸.
특히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거짓 정보를 전하면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다. 자기도 곤혹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중간에서 자기가 더 힘들다고도 한다. 또는 혼란스러워하거나 상처받은 상대방을 위로하거나 “기분 나쁘지”라며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여기에 사람들이 쉽게 속는다.
삼각 관계화는 이 외에도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현재 애인 앞에서 “그 사람은 너무 날 통제하려 해서 답답했어” “걘 너무 까다로웠어”라며 전 애인을 계속 거론한다. 이는 현재 애인에게 동정을 불러일으키고 더불어 ‘그러니 넌 그러지 마’라는 암묵적 지시가 된다.
반대로 마치 새로운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말해서 상대방을 긴장하게 하고 자신에게 더 신경 쓰라는 암시를 준다. 혹은 제삼자와의 관계를 자주 언급함으로써 질투를 유발하기도 한다.
또는 누군가를 과하게 추켜세우며 은근히 비교해서 상대방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애쓰게 만든다.
나르시시스트는 내면에 깊은 불안과 불안정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여러 사람의 관심과 인정을 동시에 받을 때 특히 자신이 그 중심에 있을 때 자신에게 가치와 매력이 있다고 느낀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게 삼각 관계화다.
나르시시스트가 하는 말에 너무 쉽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누가 그러더라”는 말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제삼자의 말로 포장해 전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잘 알기에, 그걸 이용하는 것이다.
설령 실제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그걸 굳이 내게 전달한 이유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말 나를 생각했다면, 그런 식으로 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남의 말에 두지 말자. 근거 없는 말에 흔들릴수록 그들의 조종에 더 깊이 말려들게 된다. 결국, 내가 나를 믿는 것이 그 말들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정 신경이 쓰인다면 직접 확인해도 된다. A처럼 핸드폰을 꺼내 “한번 물어봐야겠다”라고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사람에겐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