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을 해도 틀린 사람이 되는 순간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느끼는 벽

by 김자옥

PESM(정신적 과잉 활동인)을 알고 나서 과거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하나둘 설명을 얻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어린 나와 동생을 데리고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왔다. 농사를 짓던 아빠는 지금의 중장비 업계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고난의 시간을 겪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 시골에서 아무것도 없이 올라올 때는 어느 정도 각오한 바였겠지만 엄마는 아빠를 향해 자주 푸념을 늘어놓았다.

"당신이 기술만 있었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은데”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이제 와서 어쩌라는 거야. 아빠인들 그걸 모를까. 지금 제일 답답한 건 아빠일 텐데.’

어린 나도 아는 걸 엄마는 왜 모르는지,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하는 말인지, 답답해도 참고 배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여러 물음이 생겼다.


엄마의 한탄이 또 시작되던 어느 날, 참아왔던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엄마는 기술이 있어? 왜 아빠한테만 그래?”

엄마는 순간 당황한 듯 멈칫했다. 하지만 곧 날카로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뭘 안다고 어른 말에 끼어들어. 이 집에서 나 힘든 거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남편이나 자식이나…"

엄마는 근처에서 일자리를 구해 단순노무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엄마도 특별한 기술이 없긴 마찬가지였다는 것일 뿐. 그날 이후로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맞는 말’을 해도 틀린 사람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친척 모임에서도 비슷했다.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 때면 보는 친척들은 매번 “공부는 잘해?”같은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곤 내 대답과 상관없이 본인들이 하고 싶은 훈계를 늘어놓았다.

‘어차피 안 들을 걸 왜 물어보지?’


분위기 상 이 말은 삼켰다. 하지만 매번 다 먹지도 않는 음식을 하느라 고생하는 걸 보면, 게다가 여자들은 하루 종일 주방에, 남자들은 TV 앞에 앉아 있는 걸 보면 너무 이상했다. 이 이상한 상황을 아무도 이상히 여기지 않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난 참지 못했다.

“이걸 꼭 이렇게 해야 해?” “왜 여자들만 일해?”

어느 누구도 내 말에 호응하는 이는 없었다. 호응은커녕 그저 철딱서니 없는 혹은 버릇없는 애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 하나가 있는 것 같다고 느낀 건. 분명히 같은 걸 보지만 내 눈에만 보이고 나만 느끼는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순간순간 떠오르는 물음을 삼키는 법을 배웠다. '왜?'라는 질문이 늘 목구멍 끝에 걸렸지만 그걸 꺼내면 난 이상한 애가 될 거고, 분위기는 어색해질 게 분명했다.



집 밖은 다를 줄 알았다. 적어도 회사는 논리적으로 돌아가겠지. 그러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 새로운 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직원들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회사는 말했다. 이건 직원들을 위한 제도라고. 성과가 월등히 좋은 사람에게 더 후한 보너스가 지급될 거라고. 직원들 사이의 긴장감은 누그러졌다. 몇몇은 기대나 의욕을 품는 것도 같았다.


내 머릿속엔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보너스는 미끼일 뿐 단지 일을 더 시키려는 속내가 느껴졌다. 가까운 몇몇에게 얘기해 봤지만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그런 건가?” 아니면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 보너스 받으면 좋은 거 아냐?”

몇 달 후, 일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갔다. 회사는 툭하면 보너스 운운하며 업무량을 높였다.


회사에서 이런 일은 자주 있었다. 팀장은 매번 ‘회사 입장’을 말했지만, 어쩐지 ‘자기 입장’ 같았다. 마지막 면담에서 그는 말했다. “다들 너랑 일하기 힘들대.” 그 말에 순간 당황했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정말일까? 아니면 나를 흔들기 위한 의도된 말일까?


나는 단지 남들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본 게 아니라, 남들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느낀' 사람이었다. 나에겐 모순이 너무 크게 들렸고, 불의가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나에게는 수십 개의 의문과 감정으로 쪼개졌다. 그게 PESM의 세계였다.


나중에 난 또 다른 개념 하나를 알게 되었다. 관계에서 건강하지 않은 측면을 어린 나이부터 감지하는 아이를 ‘트루스 텔러(Truth Teller)’라고 한다고 했다.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돌았다. 아, 그랬구나. 나는 그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트루스 텔러가 성인이 되면 세상에 흐르는 부조리와 위험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인지한다. 그러곤 그 상황을 멀찍이 떨어져서 볼 줄 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결과로, 주변에서는 반기지 않는다.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냉소적이라거나, 혼자만 잘났다며 견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팀장의 억지에 하나하나 반박하던 내게 팀장은 뜬금없이 말했다. "넌 너 혼자만 잘난 줄 알지?" 당시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었지만 이제야 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PESM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사람이라면, 트루스 텔러는 본 것을 참지 못하고 '말하는' 사람이다. 난 둘 다에 해당했다. 돌이켜보면, 세상을 예민하게 감지한다는 건 나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었다. 엄마의 말투, 아빠의 표정, 식탁 위의 공기. 그 어느 하나도 함부로 지나칠 수 없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분위기가 급변했다. 타고난 감각이 환경 속에서 더 연마됐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않아도 괜찮은 걸, 나는 봐야만 했던 거다.


이제야 조금은 이해한다. 다르게 본다는 건, 단지 관찰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만큼 더 많이 느끼고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아파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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