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네가 대신 나갈래?

불안을 마주하는 두 가지 방식

by 김자옥

사실 퇴사를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5년 혹은 10년을 더 일하면 뭐가 달라질까. 그 이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달라질 게 없었다. 아무것도. 약간의 연봉 인상을 제외하면. 그때도 마감에 시달리며 시린 눈을 깜빡이고 있겠지. 어쩌면 그때쯤이면 나가라는 사인이 언제나 올까, 하루하루 불안해하며 회사 눈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윤 부장이 딱 그랬다. 회사에서 경영난 얘기가 불거져 나올 때면 윤 부장은 말하곤 했다. “혹시 감원이라도 하면 내가 일 순위이지 않겠냐. 또 모르지. 지금도 쟤 언제 나가나 하고 있을지도.” 그럴 때마다 팀원들은 “에이 무슨 소리예요”라고 하긴 했지만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이라고.


윤 부장은 강 팀장보다도 나이가 몇 살인가 많았다. 팀장을 제외하면 다들 비슷한 또래라 서로 가볍게 선배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윤 부장만큼은 ‘윤 부장님’이라고 불렀다. 왜 윤 부장이 팀장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입사 초기 가졌지만 금방 납득이 됐다. 능력이 특출 난 것도, 눈치를 잘 보는 것도, 그렇다고 책임감이 강한 것도 아닌 윤 부장은 오래된 직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본인이 일 순위일 거라는 우려도 그냥 나온 건 아니다.


윤 부장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회사는 매해 ‘올해는 특히 어렵다’는 말을 해왔지만, 그 해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전기를 아껴라’ ‘비품을 낭비하지 마라’는 자잘한 공지가 일주일마다 돌았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감원 얘기까지 나왔다.


처음 감원 얘기가 나왔을 때 떠오르는 얼굴이 몇 있었다. 몸값 높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오히려 없는 게 일하는 데 보탬이 되는 높은 자리의 몇 명이. 그런 사람들만 내보내도 전기 아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회사는 엉뚱하게도 실무자, 그중에서도 제일 만만한 이를테면 비교적 나이가 많거나 반대로 아주 어린 사람을 타깃으로 정했다. 그러곤 이런저런 억지스러운 이유를 찾아 붙였다. 거기에 윤 부장이 포함됐다.


눈치가 기본인 강 팀장이지만 이번만은 나설 줄 알았다. 어느 모로 보나 부당했고 비슷한 피고용자 처지 아닌가. 강 팀장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김 부장이라도 나설 줄 알았다. “이건 아니죠. 제가 대표님에게 직접 얘기해 볼게요”라며 매사 거침이 없던 김 부장 아니던가. 그런데 웬걸. 강 팀장은 오히려 회사 측에 붙어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였고 그렇게 정의롭던 김 부장은 이번만큼은 조용했다. 김 부장의 신복 같은 박 선배까지 입을 굳게 다물자 팀원은 그러기로 합의라도 본 듯 아무도 그 일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대신 그 어느 때보다 일에 집중했다. 마치 이럴 때 재수 없게 찍히면 안 된다는 듯이.


난 답답함만 차올랐다. ‘이게 말이 돼? 자를 사람 많잖아. 왜 엉뚱한 사람을 잘라. 그리고 왜 다들 조용한데?!’하며 속을 끓였지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가 대표나 이사를 찾아가서 항의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내가 대신 나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기껏 할 수 있는 건 강 팀장이나 김 부장에게 토로해 보는 것뿐이었다.


“팀장님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회사에서 말하는 것도 억지잖아요.”

“그럼 네가 대신 나갈래?”

‘하아. 말을 말자.’


“부장님, 회사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강 팀장님도 그렇고 왜 다들 조용한지 모르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근데 회사가 정한 거라 어쩔 수가 없어.”

언제는 회사가 정한 일이 아니던가. 평소엔 “그런 게 어딨어”라며 회사에 당당하게 맞서던 사람이,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자신도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피고용자임을 깨달은 걸일까. 김 부장은 평소답지 않게 자세를 낮췄다.


다른 사람들처럼 일이나 하자, 했다가도 일이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 윤 부장과 특별히 친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마치 내게 일어난 일처럼 모욕감이 일었다. ‘얼마나 직원들을 만만하게 생각했으면 이래.’



윤 부장의 퇴사가 결정되고 사람들은 선뜻 윤 부장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했다. 의도치 않게 윤 부장은 외톨이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퇴근길에 윤 부장과 마주쳤다. 난 고민했다.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하나. 아무렇지 않은 듯 회사와 관련 없는 잡다한 얘기를 나눠야 하나. 그건 오히려 윤 부장을 가볍게 보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이 얘기를 먼저 꺼낸 건 윤 부장이었다.

“아이, 학교는 잘 다녀? 지금 몇 학년이지?”

서로 관심 없는 얘기를 한참 나누다 난 불쑥 물었다.


“그런데 부장님, 괜찮으세요? 전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 처사가 이해가 안 돼서 제가 다 화가 나요.”

윤 부장은 잠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편한 얼굴이 되었다.

“처음엔 너무 당혹스럽고 억울하고 화도 났는데, 빨리 받아들이기로 했어. 항의하고 버틸 수도 있지만 뭐, 한두 해 본 사이도 아니고 그럼 서로 안 좋잖아. 어차피 몇 년 내라고 예상했던 일이고 조금 빨라졌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부장님 말 대로 한두 해 본 사이도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부장님 이 회사에 거의 20년 다니지 않았어요? 어떻게 사람들이 이래요. 이거 고발도 하려면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치. 근데 뭐 그렇게까지 해. 나도 정이 있는 회사인데.”

“이런 사람들한테 정은 무슨….”

마음이 더 아팠다. 회사 측은 어쩌면 “휴우” 하며 해결돼서 다행이라고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윤 부장은 조용히 나갔다. 강제 감원에 성공한 회사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작은 주의에도 사람들은 바짝 긴장하며 회사의 요구에 충실했다. 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회사가 사람을 너무 쉽게 다루는 것도, 그런 대접에도 불만 하나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이런 데를 계속 다녀야 하나? 사람들이 어쩜 이럴까. 생각이란 게 없나.’
그땐 그저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나중에 알았다.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는 걸. 불안할수록 더 현실을 직시하려는 사람과, 불안해서 눈을 감는 사람으로. 나는 전자였고, 팀원들은 후자였을 뿐이다.

인간은 때로 자유 앞에서 불안을 느낀다. 선택에 따르는 책임, 혹은 잃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 대신 속박을 택한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 안에서 오히려 안도한다. 팀원들이 그랬던 거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이는 외면으로 달래고, 어떤 이는 직면으로 견딜 뿐. 우리는 단지, 불안을 마주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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