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에서 왜 낙이 있어야 하냐고 묻는 사람

by 김자옥

회사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었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모두가 따르는 규칙. 입사하고 얼마가 지났을 때다. 번역 중 헷갈리는 내용이 있었다.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 누가 가장 잘 알까 고민하다 B팀 최 부장을 택했다. 팀장도 기술 분야는 잘 몰랐고 상의해도 어차피 팀장은 어딘가에 묻고 내게 답해주었다. 한 다리를 걸쳐 전달받을 바에 직접 묻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았다.


최 부장과는 가벼운 인사 말고는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살짝 어렵게 느껴졌지만 사적인 얘기도 아니고 업무 얘기인데 못할 건 없지 않나 싶었다. 최 부장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그리고 내 문의를 꽤 반기는 것 같았다. ‘여태껏 이런 사람이 없었는데. 기특하네’하는 눈빛이었달까.


얼마 후, 내가 올린 결재 서류를 보며 팀장이 말했다.

“이건 확인이 필요할 거 같은데 좀 기다려봐. 내가 확인해 볼 테니까.”

“아, 그렇지 않아도 그거 최 부장님에게 직접 확인했습니다.”


잠시 주변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응? 네가 직접?’ ‘쟤 뭐야?’하는 분위기였다. 팀장은 “아, 그래?”하며 어쩐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잘못한 건가? 좀 이해가 안 됐다. 오히려 칭찬받을 일 아닌가 싶었다. 알아서 처리한 건데.


이유는 나중에 승진 누락 이슈에서 알게 됐다. 승진에서 누락했을 때 나는 직접 인사과에 문의해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 항의를 표했다. 당시엔 몰랐는데 이 일은 팀에서 꽤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팀장을 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 선배가 날 불러 이렇게 일일이 따지면 곤란하다는 뉘앙스로 말한 데에도 어느 정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자기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팀장이 나서 줬다는 얘기를 박 선배는 슬쩍 던졌다. 그땐 ‘뭔 소리야?’하고 지나쳤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너무 나대는 거 아냐?’하는 얘기였다.


그때까지 업무 관련이든 개인적인 얘기든 모든 문제는 팀장을 통하고 있었다. 팀장이 팀원들의 소리를 대신 내주고 있었다. 난 이해되지 않았다. 내 문제를 왜 대신 얘기하고 멋대로 타협을 보지? 내 아이디어고 내가 열심히 고민한 건데 왜 자기가 고민한 것처럼 본인이 나서? 나는 없어지고 자기만 드러나는 거 아닌가?


어쩐지 팀장은 그걸 노린 것도 같았다. 겉으론 ‘할 수 없지 내가 나서주는 수밖에’하는 듯했지만 실은 팀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너희는 거기까지만 있어. 다음은 내가 나설 테니까’하는 느낌이었다.


팀 내 암묵적으로 있던 규칙은 나로 인해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엔 날 이상하게 보던 팀원들도 점점 '맞아. 그래도 되는 건데' 하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온 듯, 일일이 팀장을 거치던 일도 직접 해결하기 시작했다. 난 내심 뿌듯했다. '그러게. 진작 이렇게 하면 좋았을 걸.'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기도 했다. 왜 다들 당연하다는 듯 팀장을 거쳤던 걸까. 아무도 이상하다고 못 느낀 걸까.


자기 일이 줄었는데도 어쩐지 팀장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출근하던 사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사람처럼 어딘가 허전해 보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를 견제하는 느낌이었다.



우연히 본 영상에서 한 임원 출신이 말했다. '상사에게 역할을 줘라.' 직장인이 제일 크게 하는 실수가 상사에게 안 묻고 자기가 다 알아서 하는 거라고 했다. 부하 직원이 묻지 않고 혼자 척척해 나가면 상사는 자신의 역할이 없어진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위협처럼 다가온다고.


순간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납득됐다. 상사도 사람이니 "이거 제가 잘 몰라서요. 한번 확인 좀 해주세요"하며 자주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부하 직원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이치이지 않을까.


그제야 깨달았다. 팀장이 날 보는 시선이 어딘가 까끌거렸던 이유를. 난 그의 역할을 없앴던 거다. 조금은 얄팍한 수였는지는 몰라도 나름으로는 자기 위상을 세워주는 장치였을 텐데 그걸 내가 허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표도 비슷했다. 회사는 새해 첫날이면 간단한 시무식 겸 대표 인사 말씀이 있었다. 대체로 미리 작성한 글을 읽었는데 듣고 있자면 지루했다. 새해 인사말씀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내 일처럼 일해라’ ‘고객 중심에서 생각해라’ 같은 틀에 박힌 잔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만큼 집중해서 듣는 이도 별로 없었다.


난 생각했다. ‘읽을 거면 그냥 공지를 하지.’ 난 옆자리 영서에게 물었다. “시무식을 꼭 해야 하나? 어차피 아무도 안 듣는데.” 영서는 대답 대신 피식 웃어 보였다. 마치 내가 농담이라도 하는 듯. 난 진심이었다.

대표도 팀장처럼 시무식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들 비록 열심히 듣지는 않았어도 하나의 연극 같은 행사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나만 거기서 부대끼며 삐걱거렸을 뿐.



하나의 말은 하나의 뜻만 담지는 않는다. 팀장의 “내가 확인해 줄게”라는 말속엔 여러 의미가 있었다.
‘넌 가만히 있어’부터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거야’까지. 대표의 “내 일처럼 일해라”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 말은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라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시키는 말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게임에 비유하며, 언어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행동 방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흔히 하는 실수가 그 방식을 관찰하기보다, 왜 그런 규칙을 따르는지, 단어의 ‘진짜 뜻’은 뭔지 같은 이론적인 답을 찾으려 하는 거라고 했다.


내가 그랬다. 회사라는 게임판에서 혼자 규칙을 어기며 “이건 왜 이렇게 하죠?” 하고 묻는 사람이었다. 마치 윷놀이에서 “왜 낙이 있어야 해? 밖이든 안이든 윷은 똑같잖아? 나가면 윷이 아닌가?” 하고 따지는 사람처럼.


살다 보면 굳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모두가 합의한 게임 규칙 같은. 하지만 난 그게 잘 안 됐다. 자꾸만 ‘이건 왜 이렇게 하지?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하며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멈추지 않았다. 내 눈엔 비합리적인 게 너무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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